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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에 누군가가 섬계(剡溪)를 찾아 왔으렸더니장희구 박사(264회)/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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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24  10: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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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雪(신설)/회재 이언적
첫눈에 오늘 아침 땅 가득 덮었으니
황홀하게 수정궁에 앉히어 놓았구나,
누군가 찾아오려나, 나 혼자서 마주하네.
新雪今朝忽滿地    況然坐我水精宮
신설금조홀만지    황연좌아수정궁
柴門誰作剡溪訪    獨對前山歲暮松
시문수작섬계방    독대전산세모송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을 보내고 난 후 한 학자가 첫눈을 본다. 솜덩이, 솜이불, 온통 흰 세상이라고 표현할 법한 첫눈을 보고 시인은 누군가가 황홀한 수정궁에 자기를 앉혀 놓았다는 시상을 전개한다. 범상한 시심은 아니라고 보아진다. 누군가가 분명 시인의 사립문을 찾아와 큰 선물을 주었을 법했으련만 막상 나가보니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사립문 앞에 커다란 소나무 뿐 수정궁 지어준 신선(?)은 진정 보이지 않았음으로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사립문에 누군가가 섬계[剡溪]를 찾아 왔으렸더니(新雪)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사헌부 지평ㆍ장령ㆍ밀양부사 등을 두루 거쳐 1530년(중종 25) 사간원 사간에 임명되었다. 김안로의 재등용을 반대하다가 오히려 관직에서 쫓겨나 귀향한 후 만년엔 자옥산에 독락당을 짓고 학문에만 열중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첫눈 내린 오늘 아침 땅을 가득하게 덮었으니 / 누군가가 황홀하게 수정궁에 나를 앉혀 놓았구나 // 사립문에 누군가가 섬계(剡溪) 찾아 왔으렸더니 / 앞산에 소나무를 나 혼자서 마주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첫눈이 내렸는데]로 번역된다. 흰 눈이 밤새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면 황토빛 땅은 은세계가 된다. 그래서 시인은 황홀하게 자신을 수정궁에 앉혀 놓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세 번째 구(句)는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인 왕휘지(王徽之)에 얽힌 고사다.
시인은 왕휘지가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자신이 거주하던 산음에서 먼 섬계(剡溪)에 살고 있던 친구인 동진의 문인화가 대규가 그리워서 배를 타고 그를 찾아갔음을 상상했다. 그러나 밤새 배를 저어 친구의 집 앞에 이르자 배를 돌려 돌아왔다. “원래 흥을 타서 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감이니(乘興而來 盡興而反) 어찌 꼭 친구를 볼 필요 있으랴”. 눈 내리는 겨울밤 자기를 찾아와 줄 생각을 하는 고상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4구는 추사의 세한도(歲寒圖)가 연상된다.
한 해가 다 저물고 햇살이 적어지면서 수목들은 나목이 되어간다. 여름철 잎이 풍성할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시린 겨울이 되니 잎이 모두 낙엽이 되어 떨어진 뒤 눈밭에 홀로 서 있는 처지가 되니 찾는 이가 없었다는 덕담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첫눈 내려 가득하니 수정궁에 앉혔구나, 사립문에 섬계 찾아 소나무를 혼자 맞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新雪: 첫눈. 今朝: 오늘 아침. 忽: 홀연히. 滿地: 땅을 가득 덮다. 況然: 활홀하다. 坐我: 나를 앉히다. 水精宮: 수정궁. // 柴門: 사립문. 誰作: 누군가가 오다. 剡溪訪: 섬계를 찾아오다. 獨對: 혼자 대하다. 前山: 앞 산. 歲暮松: 겨울 소나무. 외로운 소나무.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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