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수필가▲김창석(수필가)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오히려 왜소해진다.
생활주변에서 들려오는 솔깃한 이야기들을 이웃들과 함께 나눔은 미덕을 공유하는 바람직한 소통이랄 수 있다.
어느 여자는 결혼을 했는데 몇 년째 임신이 되지 않아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가까운 사람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깨끗하게 그 집에서 물러나고 말았단다, 괜스레 미적거리 다가는 자기로 인해 가족들을 편 가르고 입소문 등 복잡해 질 것 같아 독하게 마음먹고 이혼을 했다고 한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재혼 자리가 들어오더란다. 상대는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사람으로 아내와는 사별 했으며 슬하에 아이들이 셋이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호감을 느끼고, 또 여자로서는 딱히 혼자 지낼만한 여건이 되거나 자립할 수 있는 전문 직업도 없어 재혼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가 말하기를 결혼은 5~6년 뒤로 하기로 하고 그동안 서로 사귀면서 여행이나 하며 지내자고 하더란다. 영 이상하게 여기는 여자에게 남자가 설명하기를, 지금 결혼해서 살면 당장에야 좋겠지만, 애들이 다 크고 나면 필경 재산문제로 갈등이 생길 것 같으니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미리 미리 조치를 해 두어야 겠다는 것이다.
즉 훗날 애들이나 친척들이 이 여자에게 재산을 보고 시집을 왔느니 또는 빈털터리로 시집와서 호강이나 했느니 하는 소리를 하면, 여자도 사람인 이상 심정이 뒤틀리게 마련이란다.
그러니 주위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게 여자가 처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자에게도 충분히 재산이 있는 것처럼 장치를 해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깊은 취지였다. 그러니 이 여자가 자연스럽게 재산을 증식 시킨 것처럼 보이기 위해 몇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고 하더란다.
여자는 남자의 건의에 수긍하는 바가 있어 따르기로 하였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남자는 여자 앞으로 슬금 슬금 재산을 이전해 주었고, 그것이 상당한 액수가 되었다.  마침내 약속대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시집온 여자에게도 충분한 재산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단다. 그리고 여자 역시 남 보기에 떳떳해 처신하기 편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그녀가 보기 드물게 눈 밝은 남자를 만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수 년 후의 일까지 내다보고 예방할 줄 아는 이 남자가 어디 보통남자인가 해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당장 눈앞에 펼쳐진 것에만 급급해 하며 처신하기 일쑤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뒷늦게 당하는 고통들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작 일이 터진 뒤에야 ‘그럴 줄 몰랐다, 또는 미처 몰랐다’고 내 뱉는 말이 사실 얼마나 안이하고 무책임한 말인가?
이 각박하고 냉혹한 사회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주위를 살펴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사태를 예방하고 미리 미리 손을 써 두어야 겨우 위험을 피해 가는데도 우리는 간혹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사는 것 같다. 그러니 별 탈없이 지나가면 다행이지만 조금이라도 예측에서 벗어나면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쓰러지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다른 앞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
사연인 즉 이혼 위기에 처한 어떤 부인이 있는데 남편이 의사인 이 부인은 어린 딸이 한 명 있고 결혼 초부터 남편과 금전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었다.
비교적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남편은 소득의 상당부분을 자신의 부모와 동생들 뒷바라지에 지출하곤 했는데 부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이에 대해 남편은 아내에게 가족을 굶기는 일이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란다. 그리고는 자기가 벌어 자기가 쓰는 것이나 제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꺼 달라고 누누이 당부를 했단다. 그래도 부인이 견뎌내지 못하고 번번이 남편과 말다툼을 하며 시댁 식구들과 불화를 일으키자 결국 남편은 이혼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 또한 참 기막힌 일이다. 비교적 넉넉한 남편이 자기의 부모 형제를 위해 돈을 쓰겠다는데, 왜 굳이 그것을 말리려다 자신이 밀려날 지경에 이르렀는가 말이다. 우매하다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어느 정도 기본만 확립되면 부부간에 서로의 유쾌한 마음이나 기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행불행은 순간 순간 마음상태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그 눈 밝은 남자와 의사 부인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가까울지 스스로에게 곰곰이 되묻고 싶다. 참고로 한국의 이혼율은 0.32%, 세게 OECD 국가 중 아홉 번째로 상위권에 속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흥군 자료에 의하면 2017년 이후 지난 3년동안 우리군 이혼 가정은 무려 254세대로 나타났다(연평균 85세대)
이 수치는 총 세대수 2만세대의 대비 이혼율 0.4%인 셈인데 단독세대를 제외하고 순수 유배우자 세대 이혼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같은 흐름은 지역민심의 다운, 인구감소 등 지역발전의 마이너스 요인으로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사회의 어느 가정에선가 겪고 있을지도 모를 이와 같은 고통스럽고 측은한 가정사 현상들이 다소나마 치유되고 또 차츰 수그러  드는데 조그만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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