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초계변씨와 장흥과의 관련은 조선 단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변효경(卞孝敬 10세, ?~1456)으로부터 시작된다. 公은 조선 태조 때 한성윤(漢城尹)을 지낸 변남룡과 정부인 충주지씨, 정부인 파주염씨 사이에서 일곱 형제 중, 여섯째로 충청도 직산현(지금의 충남 천안시 직산) 태생으로 생년은 미상이다. 1414년(甲午 태종14) 식년 생원시 3등 44위로 입격하고 1419년(己亥 세종1) 증광시 동진사 1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그 후 1440년 승문원지사를 거쳐 1443년 봉칙사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1445년 사간원 사간을 지내고 1452년 인수부윤에 제수되었다. 1453년 정조사부사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1454년 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 1455년 판영흥대도호부사에 제수되고 좌익원종공신에 훈록되었다. 配는 정부인 여산송씨다. 원래 묘는 처음 직산현 송정에 있었으나 실전하여 명증(明證)을 얻어 안양면 모령리 산 62번지 목단嶝 야산에 이장하였다. 公은 초계변씨 이조참판공파 파조(派祖)가 된다.

이후 초계변씨 후예들과 장흥의 인연은 동복현감을 지낸 입향조 변온(卞溫 13세, 1474~1554)이 지금의 안양면 비동리 동촌마을에 입촌으로 시작되었다.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 뒤에 위치한 사자산(666m)이 임금(제암산) 뒤 자리에 한일(一)자 형태로 병풍이 길게 펼쳐진 형상을 하고 있다. 예로부터 운림(雲林)과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식수와 땔감이 넉넉하며, 주변에 전답이 넓어 이곳에 입촌하였다고 전한다. 후예 변국간(16세 1527~1591)은 전라도 병마절도사 등 7곳의 병ㆍ수사를 역임하고 전라좌수사 재임 때 선정을 베풀어 여수시 진남관에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져 있다. 특히 후손들은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순절하였다. 초계변씨 형제, 조카들의 참전은 난세의 영웅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조모, 모가 초계변씨로 외척들이 통제사를 적극 도와 국난 극복에 앞장섰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흔적은 안양면 수양리 357-2번지, (구)안양서초등학교 앞밭에 13충훈 유허비가 선대 터전인 사자산 아래 동촌마을을 바라보고 세워져 있다. 비문에는 16세 변국간, 17세 변홍원, 변홍제, 변홍주, 변홍건, 변홍달, 변홍적, 변홍선, 변홍량, 18세 변공의, 변덕일, 변덕장, 변덕황 등 13인의 임진왜란 참여 등 국란 공적을 기술하였다. 여기에 18세 변정수, 19세 변립을 포함하여 국난극복 15충훈이라 칭한다. 13충훈 유허비는 1968년(戊申) 3월 변익수 주도로 이조참판공파종중에서 세웠다. 또한 충남 금산군 진산면 금곡사(金谷祠)에는 임진왜란 때 도원수를 지낸 권율 장군의 이치대첩 공훈을 기리고자  세운 "원수권공이치대첩비"에 공훈자로 변국간, 변홍건, 변홍주, 변홍량, 변덕황, 변홍달 등 6인이 기록되어 있어 충절의 행적이 확인된다. 현재 장흥군 안양면 수양리에는 이조참판 반효경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인근 풍암리 목단마을 야산에는 묘역, 묘각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소개한다.

1. 묘역(墓域)
장흥군 안양면 풍암리 산 62번지에 이조참판 변효경 등 7기의 묘가 위치한 묘역이 있다.

상위에는 ① 이조참판을 지낸 파조(派祖) 변효경(卞孝敬)의 묘가 위치한다. 묘 앞에 세워진 비석 전서(前書)는 吏曹參判草溪卞公孝敬之墓 配 貞夫人礪山宋氏祔라 새겼다.

1990년(庚午) 7월 10일 고전수집전문위원 흥성人(흥덕) 장한수(1934~2006) 근찬(謹撰)하다. 진주人 정만식(1939~2006) 근서(謹書)하다. 도유사 17대손 변익수(1917~1993)가 참여하여 세웠다.

중위 우측 위쪽 ② 좌측에는 변효경의 아들로 안악군수(安岳郡守)를 지낸 변강(11세 卞鋼 ?~?)과 ③ 우측에는 손자이자 우윤(右尹)을 지낸 변옥(12세 卞玉 ?~?)과 配 정부인 경주이씨의 합장(合葬)의 묘가 위치한다. ④ 중앙 아래에는 증손으로 동복현감을 지낸 장흥 입향조 변온(13세 卞溫)의 묘가 위치한다.

묘 앞에 세워진 묘갈명(墓碣銘) 전서(前書)는 贈嘉善大夫吏曹參判行同福縣監淸軒草溪卞公之墓라 새겼다. 1907년(丁未) 10월 후학 행주人 송사(松沙) 기우만(1846~1916) 선생 근찬(謹撰)하다. 1958년(戊戌) 1월 이조참판공종중에서 근수(謹竪)하다. ⑤ 우측 10보(步) 거리에는 配 정부인 광산김씨의 묘가 있다.

하위에는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功을 세워 선무공신에 책록된 ⑥ 8대손 변공의(卞公毅) 장군의 묘가 위치한다.

묘표(墓表) 전서(前書)는 嘉義大夫五衛將草溪卞公諱公毅之墓 配 貞夫人水原白氏祔라 새겼다. ⑦ 좌측 5보(步) 거리에는 配 정부인 수원백씨의 묘가 있다. 1983년(癸亥) 음 4월 10일 참판공 18대손 변경섭 근찬(謹撰)하다. 광산人 이병현(?~?, 정읍시 태생) 서(書)하다. 유사(有司) 변상철, 방섭, 채섭, 종섭, 상섭 근수(謹竪)하다.

2. 묘각(墓閣)
묘역 인근 야산 아래 안양면 풍암중산길 53-35에는 이조참판 10세 변효경 등 이하 26세 후손 간 90위를 모신 제실 덕후재(德厚齋)가 위치하고 있다.

1964년(甲辰) 3월 30일 상량하여 4칸 목재 건물로 신축하였다. 처음에는 종중회의 공간과 가을 시제를 준비하는 묘각으로 사용해왔다.

이후 후손들의 도시 중심으로 거주하는 생활환경에 따라 제향문화가 변화되자 강당을 제실구조로 변경하여 매년 11월 둘째 주 토요일 이조참판 변효경 등 이하의 후손 90위 시제를 모신다.

① 덕후재상량문(德厚齋上樑文)은 1964년(甲辰) 청명절 16대손 변길섭 근찬(謹撰)하다.

② 덕후재기(德厚齋記)는 1975년(乙卯) 2월(仲春) 추연(秋淵) 권용현(1899~1988) 선생 기(記)하다.
③ 경제덕후재(敬題德厚齋) 14대손 변익수(안양면 수양리 태생)와 14대손 변근수(1919~1985, 보성군 웅치면 강산마을 태생)가 썼다.
④ 경제덕후재(敬題德厚齋) 15대손 변종술과 16대손 변화섭이 썼다.
⑤ 경제덕후재(敬題德厚齋) 16대손 변광섭과 16대손 변만섭과 변응섭이 썼다.(변길섭, 종술, 화섭, 광섭, 응섭, 만섭은 창원시 양전 태생 후손이다.)

덕후재의 외문(外門) 건립에 대한 내력은 알 수 없으나, 다른 사우에 비교하면 특이하게 문(門)을 쓰지 않고 당(堂)자를 써 귤림당(橘林堂)이란 액호를 걸었다.

1993년(癸酉) 8월 15일(仲秋佳節) 설봉(雪峰) 양성운(楊聖雲 남원人, 보성읍 우산리 태생) 선생이 썼다.
제각 우측에는 ① 草溪卞公 晟圭 光鎔 明祚 爲先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1982년(壬戌)년 3월 흥성人 장한수(1934~2006) 근찬(謹撰)하다. 족인 변상용(?~? 회천 도강 태생) 근서(謹書하다. 유사(有事) 변종립, 상근, 상용, 상호, 윤섭 참여하여 세웠다.

② 盤山草溪卞公益洙慕先紀蹟碑는 1990년(庚午) 9월 9일(重陽節) 광주광역시사편찬상임위원 흥성人 장한수(1934~2006) 지(識)하다. 김해人 김용보(1930 ~2005, 장흥읍 건산리 태생) 서(書)하다. 유사(有司) 변종립, 상환, 상인, 만섭, 상호, 종주, 윤섭 참여하여 세웠다.
③ 先慕獻誠芳名錄은 이조참판 반효경 신도비 건립과 묘역 정화사업에 참여한 후손들의 인명을 새겨 도유사 변익수(1917~1993)가 근지(謹誌), 1990년(庚午) 10월 30일 세웠다. ④ 제각을 들어서는 입구 우측 언덕 위에 草溪卞氏世居碑가 위치한다.

입향조 이조참판 변온이 사자산 아래 동촌마을에 터를 정하여 이후 50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국난극복 15충훈을 비롯한 많은 인물 배출 등을 기술하였다.

1982년(壬戌) 3월 후손 변익수(1917~1993) 근수(謹竪)하다. 진주人 정만식(1939~2006) 근서(謹書)하다. 전서(前書)는 설봉(雪峰) 양성운(楊聖雲 남원人, 보성읍 우산리 태생) 선생이 썼다.

덕후재는 4칸 재당 1동, 외문 1동, 관리사옥 1동, 세거비 1기, 기적비 2기, 헌성방명록 1기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조참판공종중(종손 : 29세 변종주 1933년생, 장흥읍 신남외리 거주) 재원은 임야 2정, 논 15두락 이다. 후손들의 주요 세거지는 장흥군 안양면 수양ㆍ운정ㆍ월암 등 30여 호 거주, 보성군 웅치면 강산, 회천면 도강, 창원시 양전, 경주시 월성 등 이다. 초계변씨의 본향은 경남 합천군 초계면이다.

찾아가는 길은 장흥읍에서 장흥대로를 이용하여 용산면 방향으로 가다보면 안양면 풍암리 원형인터체인지를 지나 100여미터를 지나면 좌측 목단마을을 가는 도로 한쪽에 덕후재(德厚齋) 입로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300여미터 가다보면 건너편 야산 밑에 제각이 눈에 들어와 농로를 이용하면 쉽게 찾는다.

자문 : 학산(鶴山) 변성세(28세 1938년생, 제2대 초계변씨 광주ㆍ전남종친회장, 장흥읍 남동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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