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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읍 평장리 경주김씨 예남사(汭南祠)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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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08  10: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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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1. 연혁
 본 사우는 1935년(乙亥) 향중유론(鄕中儒論)에 의해 청강(淸江) 김세좌, 석청(石靑) 김희련, 송천(松川) 김응규, 오우당(五友堂) 김응원, 열사(烈士) 김유길 선생 등 경주김씨 5位 선조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고자 후손 삼우당(三友堂) 김병용(61세 1889~1947) 주도로 장흥군 군장로 700-11 평장리 김안마을 박산(博山) 아래에 설단하고 단향(壇享)으로 제향하였다. 이후 1974년(甲寅) 3월 장흥유생 의산(義山) 안홍천(죽산人 1895~1994)의 협력과 후손 김성옥(62세 1907~1981), 김덕선(62세 1910~1985), 김병태(61세 1916~?), 김봉섭(61세 1925~1990) 등의 주도 및 종원들의 헌성 참여로 맞배집 신실을 건립하였다.

   
   
 

청강 김세좌 선생을 주벽으로 하고 이하의 선생을 소목(昭穆)으로 위패를 봉안하여 매년 음 9월 15일 지역유림의 주관으로 제향한다. 이곳은 평장리 금안(金安)마을에 속한다. 옛날에는 토구동(菟裘洞)이라 불렀으며, 조선후기에는 도고동(道高洞)이라 불렀다. 지금은 “금안(金安)”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원래는 마을 뒷산이 말(馬) 안장 형국(形局)이라 하여 땅이름 김(金)자와 안장안(鞍)자를 써서 “김안(金鞍)” 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 지역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오우당(五友堂) 김응원은 백형(伯兄) 송천(松川) 김응규와 함께 왜적으로부터 장흥 땅을 지켜냈던 각왜동(卻倭洞) 현장이 인근에 위치하면서 강진군 군동면 장산리 장항마을과 경계가 된다.

2. 배향인물
■김세좌(경주人 46세 1410~1482) 선생 : 자는 일평(一平), 호는 청강(淸江)이며, 신실의 한 중앙에 주벽으로 모셔져 있다.

   
 

현조 정숙공 김인경의 6대손이고, 조부(祖父)는 이의판서를 지낸 두계(杜溪) 김충유 이다. 1426년(丙午) 17세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1429년(乙酉) 문과급제 하여 홍문관(弘文館)에 들어가 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응교(應敎) 등을 지냈다. 묘소는 장흥읍 평장리 박산이다.

■김희련(경주人 49세 1510~1573) 선생 : 자는 정중(精中), 호는 석청(石靑)이며, 증조(曾祖)는 청강(淸江) 김세좌 이다.
신잠(申潛)의 문인으로 1534년(甲午) 진사시에 입격하고 1543년(癸卯) 문과급제 하였다. 이후 호조좌랑를 거쳐 흥양, 창평, 곡산, 정읍, 삭영, 덕원 등 6개 고을의 평사교리(評事校理)를 지내고 학문이 뛰어나 문집을 남겼다. 묘소는 용산면 운주리 선영(先塋)아래이다.

■김응규(경주人 50세 1542~1620) 선생 : 자는 이재(而在), 호는 송천(松川)이며, 석청(石靑) 김희연의 장자이다.
충과 효를 겸비하여 선비들의 모범이 되었다. 특히 1597년 정유재란에서 아우인 오우당(五友堂) 김응원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물리쳤다. 조정에서는 이를 높이 평가하여 훈련판관(訓鍊判官)을 제수하였다. 묘소는 용산면 운주리 선영(先塋)아래이다.

■김응원(경주人 50세 1569~1638) 선생 : 자는 이구(而久), 호는 오우당(五友堂)이며, 석청(石靑) 김희연의 삼자이다.

   
 

1585년(乙酉)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1591년(辛卯)년 모친(母親) 괴산최씨의 중병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별세하자 3년 동안 시묘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강진 구강포에서 올라온 왜병을 백형(伯兄) 응규와 함께 의병 일천여명을 모아 장흥성 남쪽 토구동에 주둔케 하고 밤에는 수천 꽁지깃 횃불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흔드니 왜병은 이를 수만 군 병력으로 오인하고 도주하여 장흥 땅 일대가 평안하였다. 이러한 행적이 부사에 의해 조정에 전달되어 침랑(寢郞) 벼슬을 내리고 토구동 비탈바위에 “각왜동(卻倭洞)”이라 새겨 영예를 높여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제수하였다. 도고동에 정사(精舍)를 지어 松, 竹, 梅, 菊을 심고 스스로 자기와 더불어 五友라 하였다. 1624년(甲子) 이괄의 난에 창의 장흥도유사로 의병과 군량미를 모으는데 功을 세웠다. 묘소는 용산면 운주리 선영(先塋)아래이다.

■김유길(경주人 51세 ?~1636) : 公의 별호는 열사(烈士)로 관직은 부장(部將)이다.
송천(松川) 김응규의 현손, 오우당(五友堂) 김응원의 당질(堂姪)이다. 1636년(丙子) 청나라가 침략한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전투에 부장(部將)으로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 예남사 제향 축문 -
早擢內臺黼黻王猷 晩退江湖 冠冕士流(조탁내대 보불왕유 만퇴강호 관면사류)
光前裕後 世篤忠孝 高山景行 久愈欽慕(광전유후 세독충효 고산경행 구유흠모)
일찍히 등과하여 조정안으로 들어가 임금의 지근 가까이에서 임금님을 도우셨고 뒤늦게 퇴임하여 강호 재야에 내려와 선비의 도리를 다함은 최상의 으뜸이셨다.
선조들을 빛내주셨고 후손들께는 모범을 보이셨으며 충과 효를 이 세상에 충실히 실천하셨구려 그 행실은 높고 높은 산과 같았으니 오래도록 사모하고 흠모할 것입니다.

3. 강당 등 기타 부속시설
 강당은 1947년(丁亥) 윤(閏) 2월 17일 상량하여 4칸으로 건립하였다.

   
   
 

이곳은 경주김씨 두계공파 장흥종중의 주요 회의 장소이며, 매년 음 10월 10일에는 1396년경 남원에서 이주하여 장흥 평장에 터를 잡아 정착한 입향조 45세 진사공 김광우(1372~1440) 등 이하의 선조 60位 시제를 모신다. 매년 음 3월 5일에는 51세 부장공 김정길(?~1604) 등 55세 간 선조 52位 시제를 모신다. 전면 중앙 처마에 걸려 있는 액호 편액은 고당(顧堂) 김규태(서흥人 1902~1966) 선생이 썼다.

예남사 입구에는 청강(淸江) 김세좌 선생의 단비명(壇碑銘)이 위치한다. 전자(篆字)는 奉烈大夫弘文館應敎淸江金公壇碑銘이라 새겼다.

   
 

전서(前書)는 奉烈大夫弘文館應敎淸江金公壇碑銘 幷序라 새겼다. 重光大淵獻剝之上澣旁裔(1971년 8월 상순 방손) 월성인(月城人) 입헌(立軒) 김종가(金鍾嘉 1889~1979) 근찬(謹撰)하다. 유사(有事) 성옥, 승옥, 영석, 재현, 덕선, 복룡, 영근, 경철, 병태, 영지, 종근 등 후손들이 참여하여 두계공파 장흥종중에서 삼가 세웠다. 예남사(汭南祠)는 사당 3칸 1동, 내삼문 1동, 강당 4칸 1동, 관리직사 1동, 청강(淸江) 김세좌 단비명 1기, 헌성비 1기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4. 김응원(金應遠) 각왜비(卻倭碑)
- 소재지 : 장흥군 장흥읍 평장리 602-1번지
- 문화재 지정 : 2018년 8월 2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8호

   
 

본 비석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김응원(1569~1638)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883년(고종20) 김원주가 글을 지어 1915년(乙卯) 경주김씨 두계공파 장흥종중에서 평장리 금안에 삼가 세웠다. 김응원 의병장은 백형 김응규와 함께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아 금안마을 뒷산인 도고동(道高洞)에서 훈련을 하였는데 왜구들이 쳐들어오자 수백 개의 등(燈)을 도고동 뒷산에 매달고 마을사람들을 매복하게 하였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일제히 큰 함성을 지르게 하여 많은 수의 의병이 매복해 잇는 것처럼 꾸미자 왜군은 퇴각하였다고 전한다. 각왜비는 정면, 측면, 각 1칸의 비각 안에 있고, 토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비신(碑身)은 125cm, 너비는 44cm로 비갓을 갖추고 있다.

전서(前書)는 有明朝鮮國成均生員行參奉慶州金公倭碑라 새겼다. 후면과 옆면에 비문이 있다. 崇禎甲申後四癸未三月十五日(1883년 3월 15일) 7대손 원주 근지(謹識)하다.

이밖에 장흥 땅을 지켰던 승전지 흔적은 김안마을 뒤 야산 150m 지점에 “각왜동(卻倭洞)”이라는 암각문이 있다.

   
 

오우당 김공 행장은 1762년(壬午) 5월 상순 관산 후학 진사 영이재(詠而齋) 위문덕(1704~1784) 선생 근장(謹狀)하다. 경기전령 참봉 진사 오우당 묘갈명은 1897년(丁酉) 9월 하순 연재(淵齋) 송병선(1836~1905) 선생이 서(序)하다. 또한 1747년(丁卯) 장흥읍지 정묘지, 1868년(戊辰) 장흥도호부 읍지, 1938년(戊寅) 장흥 무인지, 1991년(辛未) 경주김씨 두계공파 대동보, 1992년(壬申) 광주·전남 오란(五亂) 충의사록 등에는 오우당 김응원 선생의 忠孝, 忠義, 忠節의 내용이 기록되어 전한다.

경주김씨 두계공파(杜溪公派) 장흥종중의 재원(財源)은 논 80두락, 임야 20정 가량이다. 후손들의 주요 세거지는 장흥군 장흥읍 평장·덕제, 회진면 신상, 강진군 군동면 중산·시목마을 이다.

자문 : 청파(淸波) 김명옥(62세 1938년생, 관산읍 고마리 장환마을 거주, 제36대 성균관 유도회 장흥군지부회장), 경산(慶山) 김두석(63세 1939년생, 장흥읍 덕제리 거주, 제37대 장흥향교 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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