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書(우서)/진일재 성간
말이란 입에서 나오면 여러 번 저촉이요
세상일은 팔 부러져야 경험이 생기는데
황혼 녘 북창 시끄러워 물소리로 알았네.
言辭出口屢觸諱    世事折肱曾飽更
언사출구루촉휘    세사절굉증포경
黃昏風雨鬧北牖    夢作聖居山水聲
황혼풍우료북유    몽작성거산수성

시는 억지로 써진 것은 아니다. 자연이나 사물을 보고 깊은 감회와 느낌이 있을 때 써진다. 시상을 억지로 만든다고 좋은 시상이 떠오른 것은 아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시주머니에서 만지작거려야 알찬 시상으로 얽혀진다. 이규보의 말을 빌자면 시통주머니에 시제와 시상을 차곡차곡 담았을 때 가능하다. 시는 우서偶書가 아니다. 황혼녘의 비바람 소리에 북창이 시끄럽기만 한데, 꿈속에서 보인 성거산의 물소리로 알았다네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세상 일 팔을 부러뜨려야 경험이 생기는구나(偶書)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1427∼1456)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지중추부사 성염조의 아들이며 성임의 동생, 성현의 형이다. 1441년(세종 2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453년(단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였던 인물이다. 유방선의 문인이다. 집현전 박사로 문명과 서예에 뛰어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말이 입에서 나오게 되면 여러 번 기휘에 저촉되고 / 세상일은 팔을 부러뜨려야만 경험이 생기는구나 // 황혼녘의 비바람 소리에 북창이 시끄러운데 / 꿈속에서 보인 성거산의 물소리로 알았다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우연히 시를 쓰다]로 번역된다. 성거산은 천안에 있는 산이다. 한 시제를 놓고 시를 쓴다고 하여 모두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책상이 앉아 시상을 이끌어 낸다고 해서 좋은 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우연한 경우에 시상이 우러나오고, 시심이 발동된다는 것은 경험에 의한 시적인 창작품의 한 산물이었겠다. 우연한 경험에 의한 시가 많았음을 알게 된다.
시인은 말이 입에 나오는 순간 꺼리는 일에 저촉되어 실수하는 수가 많음을 경험했음을 내비치고 있다. 말이 입에서 나오면 여러 번 기휘에 저촉抵觸이 되었으니 세상일은 팔을 부러뜨려야 새로운 경험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때로는 실패도 전진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된다고 했으니 이와 같은 시적인 표현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화자는 황혼녘의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이를 성거산의 물소리로 알게 되었다는 다소 생경한 소리에 자신을 도취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황혼녘의 비바람 소리에 북창은 시끄럽기만 했고 꿈속에서 성거산의 물소리로 알았다고 했다. 성거산은 신령이 있다 하여 제사를 지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말이 나와 기휘 저촉 경험 생긴 팔 부러짐, 비바람에 시끄러워 성거산임을 알았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言辭: 말. 어휘. 出口: 입에서 나오다. 屢: 자주. 觸諱: 꺼리는데 저촉되다. 世事: 세상의 일. 折肱: 팔을 불어 뜨리다. 曾飽更: 경험이 생기다. // 黃昏: 해질녘. 風雨: 비바람 소리. 鬧北유: 북창이 시끄럽다. 夢作: 꿈속에서. 聖居山: 성거산. 충남 목천에 있는 산(579m). 水聲: 물소리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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