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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ㆍ강진지역에 편액(扁額)의 진수(珍秀)를 남긴 극암(克菴) 이기윤 선생<2>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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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0  11: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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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2. 강진군 내 소장 현황
 19), 20) 이필재는 강진군 군동면 평덕길 22-25 평덕마을에 위치한다.

   
 

장흥위씨 직장공파종중 소유로 입향조 직장(直長) 위대방(21세 1550~1617) 등 156위 위패가 봉안된 이필재(二必齋) 제실에 액호 1점과 상량문 축시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1954(甲午)년 종중 후손들의 참여로 이축하였다. 매년 11월 둘째주 일요일 직장(直長) 위대방 등 이하의 선조 156위 합제를 봉행하다.

 21) 명문은 쌍덕리 평덕길 22-23 평덕마을에 위치한다.

   
 

위 환(장흥人 1939년생) 가내에 "求忠臣於孝子之門" 충신은 효자 가문에서 찾는다." 라는 명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선생은 소장인의 선친이자 문하생 경보(耕輔) 위삼량(1911~1991)에게 명문을 써 주었다.

22), 23, 24) 칠오당, 국포, 병풍첩은 칠양면 영풍길 54-2에 위치한다.
김영희(청주人 1932년생) 가내의 서재 운호정사(雲湖精舍)에 선친 김백진(金百鎭 1905~1950)

   
 

의 아호 칠오당(七吾堂), 조부 김기용(金基庸 1875~1949)의 아호 국포(菊圃) 액호 2점과 제례 병풍첩 1점이 소장되어 있다.

   
   
 

25) 군동면 안풍리 여산송씨 소유 성사재(城思齋)

   
 

26) 대구면 계율리 창녕조씨 소유 비천사( 棐泉祠 )와 조씨 후손 가내에 아호 정헌(正軒) 액호

   
   
 

등 강진지역 내 6개소에 액호 6점, 시운 1점, 명문 1점, 병풍첩 1점 등 9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중 군동면 안풍리 성사재 편액은 철거시 훼손되었고, 대구면 계율리 비천사와 정언 편액은 자연 훼손되어 현존하지 않는 것을 종중 관계자를 통해 확인하였다.

3. 주요 언동과 자료
1) 손자 이일영, 이규영 변호사의 언동 : 경북 대구에서 살던 극암 이기윤 선생이 1943년(癸未)부터 1950년 3월까지 전남 강진군에 정착하게 된 사유는 당시 아들 임재(臨齋) 이인석(1914~1999)이 강진읍 내 일본 회사인 "큐슈(九州)중공업 강진농장"에서 근무한 관계로 가족들이 강진군 칠량면 송산리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학과 서예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유생(儒生)들을 대상으로 집 근처 연하동 초옥(草屋)에서 강학(講學)을 하였다. 이중에 경보(耕輔) 위삼량, 김정석, 마상덕 등이 대표적 유생들이라고 한다.
또한 이 시기에 장흥위씨 장천문중, 인천이씨 남면파종중 등 장흥과 강진지역 각 성씨 문중 지도자들과 교유하였다.
정부에서 농지분배가 시작되는 시점에 아들이 경북 경주로 전근(轉勤)하게 되면서 1950년(庚寅) 3월경 가족 모두가 경북 대구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장흥ㆍ강진지역 유생들과는 서신(書信)을 통해 유대를 유지하였고 왕래(往來)는 없었다고 한다.
특히 전국의 사우 150개소의 편액 글을 썼다고 추정되며, 다수의 비문(碑文)을 찬(撰)하였다. 1971년(辛亥) 81세로 별세하였을 때 도포를 입고 머리에 갓을 쓴 전라도 장흥ㆍ강진지역 유생 7명이 조문(弔問)을 왔었다고 한다.
이들은  관산읍 방촌리 태생 정헌(靜軒) 위계후( 1905~1982), 졸헌(拙軒) 위계본(1907~1993), 용산면 어서마을 태생 화헌(和軒) 이대기(1905~1974), 접정마을 태생 신헌(愼軒) 이만흠(1906~1976), 강진군 군동면 쌍덕리 평덕마을 태생 경보(耕輔) 위삼량, 김정석과 군동면 삼신리 하신마을 마상덕 이다. 묘소(墓所)는 경북 성주군 선남면 마현리에 위치하였으나, 2019년 5월 선남면 성원리 700번지(성원1길 109) 문중묘원으로 이장하였다.
선생은 配 여강李氏 사이에서 長子 인석(1914~1999), 次子 호석(1919~2002), 三子 대석(1924~2017), 四子 정석(1929~1998) 등 4남1여를 두었다. 손(孫)은 일영(1940년생), 규영(1953년생), 우영(1955년생), 지영(1958년생), 민영(1961년생)으로 일영은 인석 출(出)이고, 규영은 대석 출(出)이며, 우영ㆍ지영ㆍ민영은 정석 출(出)이다.

   
 
   
 

특히 사손(嗣孫) 이일영 변호사에 따르면 선친되신 임재(臨齋) 이인석 옹께서 1980(庚申)년 극암문집(克菴文集)을 간행하였고, 2012(壬辰)년 자신이 선친과 조부님에 관련된 임재여적 부 극암편액서(臨齋餘滴 附 克菴扁額書)를 간행하였다고 한다. 이 서책에는 장흥ㆍ강진지역과 경북 성주 등 여러지역 내 다수의 사우 편액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선친이 별세 前 1997~1998년경 강진군을 방문하여 조부님께서 편액 글씨를 써 남기신 사우 소유 종중(宗中) 사람들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사진을 우편으로 받았다고 한다. 또한 장흥지역 장흥위씨 장천문중과 인천이씨 남면파종중 내 정통한 어른을 수소문하여 협조 서신을 보내 사진 촬영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선친께서 영남지역 사우 편액 확인 등 자료를 수집하던 중 갑자기 별세하여 책을 간행(刊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일영 변호사는 자라오면서 느낀 견문(見聞), 생전(生前)의 선친이 수집한 자료와 가족들의 언동(言動), 극암문집 등을 자료로 하여 책을 간행하였다.

2) 소천(小天) 김석중(1928~2017) 선생 언동 : 관산읍 평촌리 출신으로 한국남종문인화가의 거목 소천(小天) 김천두(광산人, 본명 석중)는 시(詩), 서(書), 화(畵) 3절(絶)을 하였다.

   
 

젊은 청년시절 "관산읍 방촌리 다산재(茶山齋)에서 다초(茶樵) 위복량 선생에게 수학 할 때 극암 이기윤 선생을 여러번 뵈었다."고 하면서 당시 장흥 등 주변 지역의 사우(祠宇)편액 글씨는 이름 있는 서예가들이 많이 썼다면서 그중 극암 선생의 서체(書體)는 어느 누가 보아도 최고라면서 높게 평가하였다.

3) 도편수 평강(平江) 이춘흠(1936~2019 ) 선생 언동 : 비정(榧亭)의 별칭(別稱) 영사재(永思齋) 내에 극암(이기윤) 선생의 편액 5개가 소장된 연유는 조부 이수길은 장흥ㆍ강진 등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도편수였고, 극암 선생은 문장이 특출하여 친분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강丈이 12~13세 쯤 조부께서 목판을 다듬어 주면 목판을 등에 멜빵 봇짐을 하고 어산 마을에서 자울재(眠峙) 고개를 넘어 극암 선생이 거주하는 강진군 칠량면 송산리까지 약 40리(16km)길을 걸어가 목판에 글을 써 주면 받아오는 심부름을 여러 차례 했었다고 한다. 조부는 받아 온 목판 글을 조각으로 새기고 다듬어 편액으로 완성하였다면서 영사재(永思齋) 내 극암 선생이 쓴 편액에 대해 극찬(極讚)과 애정(愛情)을 소회(所懷)하였다.

4) 졸헌(拙軒) 위계본 선생의 자료
 극암 선생이 강진군 칠량면 송산리에 거주하면서 장흥과 강진지역 사우 등에 편액 글을 남겼을 때 선생과 연(緣)이 각별 하였던 졸헌(拙軒) 위계본 (1907~ 1993, 제25대 성균관유도회 장

   
 

흥군지부회장) 선생은 1954년(甲午) 관산읍 농안리에 위치한 파조(派祖) 안항(顔港) 위덕후(1556~1615)의 묘각 운산재(雲山齋)와 관산읍 방촌리에 위치한 안항공파 웅천종중 묘각 다산재(茶山齋)의 편액을 받으러 극암 선생의 경북 대구시 집에 다녀왔고 선생이 별세하자 문상을 다녀오기도 했다.
2010년 사위 춘사(春史) 이영숙(1932년생)이 발문(跋文)하고 아우 관포(冠圃) 위계천(1923~2019) 옹이 발간한 졸헌유고(拙軒遺稿)에는 극암 이기윤 선생과 유대 서찰 내용 등 7개 목록(目錄)이 수록되어 있다. 주고받은 서찰에는 그의 선학(先學)에 대한 존경심과 시대를 걱정하는 충심이 잘 드러나 있다. 이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졸헌 선생은 1950년 3월 극암 선생이 대구 집으로 돌아간 후 선생이 거주 했었던 송산리 옛집을 들러 선생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7언 율시(律詩)를 남겼다.

- 過克菴李丈松山舊居(과극암이장송산구거) : 극암(克菴) 이장(李丈)의 송산(松山) 옛집을 지남 -

路過松山暫住車(로과송산잠주차) : 송산(松山) 길을 지나다가 잠시 수레 멈추니
爲言曾我丈人居(위언증아장인거) : 일찍이 우리 어른께서 살았다고 말을 하네
空梁賀鷰語述苦(공량하연어술고) : 빈 들보에 제비가 하례한 말 괴롭게 이어가고
白雪步鴻痕獨餘(백설보홍흔독여) : 백설(白雪)에 기러기 거닌 흔적만 홀로 남았구나
城上雲歸腸欲斷(성상운귀장욕단) : 성상(城上)에 돌아간 구름 애를 끊은 듯 하고
門前苔結客來踈(문전태결객래소) : 문전(門前)에 이끼 끼여 오신 손님 드물구나
天涯南北相難見(천애남북상난견) : 하늘과 남북으로 서로 보기 어려우니
怊悵徘徊憶舊書(초창배회억구서) : 처량하게 서성거리며 옛 글을 생각하네.

4. 맺음말
극암 이기윤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한학자요, 유학자요,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한 애국자 이시다. 호남의 장흥, 강진과 영남의 달성, 성주, 칠곡, 선산, 김천, 고령, 의성, 군위, 청도, 영천, 경주, 경산, 밀양, 대구, 합천, 창녕, 안동 등 19개 시ㆍ군 지역 내 사우(祠宇), 누정(樓亭), 헌각(軒閣)의 편액 글 150여점 이상을 남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선 관련 학자, 문인들의 관심을 통한 선생의 재조명과 이를 통해 시ㆍ군 자치단체의 보수 추진 등 장기적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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