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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읍 원도리 연곡서원(淵谷書院) <2>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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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7  13: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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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4. 강당(講堂)
 서원 강당은 4칸 팔작집으로 1698년(戊寅) 창건되어 1798년(戊午)과 1861년(辛酉) 중수를 거쳤다. 이후 1904년(甲辰)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서원 내 중앙에 위치하고 신실과 마주보는 동향으로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으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액호 연곡강당(淵谷講堂)은 1904년 중건하면서 둔촌 민유중의 9대손 시남(詩南) 민병석(閔丙奭 30세 1858~1940)이 써 걸었다. 강당에는 16점의 편액이 소장되어 있다.
①1715년(乙未) 1월 17일 장흥향교 서원에서 팔도 진사, 유생 108명에게 보내는 통문(通文)이다. 노봉 민정중 사우에 아우 둔촌 민유중을 병향(倂享)을 알리는 내용이다.

   
 

둔촌 민유중은 1665년(乙巳) 전라도관찰사 재임 중에 道內 향교에 경서를 인출하여 반포하고 관복과 제기 등을 분급하였으며, 봄ㆍ가을 향교를 순회하면서 유생을 불러 모아 지도하였다면서 사림들의 칭송이 자자해 추배했다고 한다. 또한 둔촌 민유중은 당대 임금 숙종의 장인으로 연곡서원에 추배됨은 크나큰 영광이었을 거라 사료된다. 도유사 나주(羅州) 류수악(柳壽岳)·염처공(廉處恭), 광주(光州) 류지홍(柳之弘)·박중휘(朴重輝), 장흥(長興) 김 호, 백서태(白瑞泰), 위명성(魏命成 1662~1740), 선성귀(宣聖龜) 등 8인이 주관하여 1716년 추배하였다.
②淵谷書院重修記는 1798년(戊午) 4월 존재 위백규(26세 1727~1798) 선생 근서(謹書)하다. 본 편액은 존재 선생께서 별세 7개월 前 초여름에 기록하였다.

   
 

선생은 栗谷 이 이~沙溪 김장생~尤庵 송시열~遂菴 권상하~屛溪 윤봉구~存齋 위백규~梅山 홍직필로 이어지는 성리학에서 노론 계열이다. 노봉, 둔촌 선생의 여흥민씨 집안 학풍은 선대에서부터 노론 계열이며, 두 형제 모두 우암(尤庵) 송시열의 문인이다.

존재 선생의 종증조(從曾祖) 상원군수 위동전(23세 1649~1713)은 노봉 선생의 아들 문효공 민진장(1649~1700)과 둔촌 선생의 아들 충문공 민진후(1659~1720), 문충공 민진원(1664~1736) 등 삼 종형제가 관찰사 재임시 모두 수행하였다. 군수공의 삼자(三子) 간암(艮庵) 위세옥(24세 1689~1766) 선생은 어린 시절 한양생활에서 민진장의 종질(從姪 5촌) 민응수(1684~1750), 민진후의 아들 민우수(1694~1756), 이 재(李 縡  1680 ~1746),  윤봉구(1683~1767), 신 경(申 暻 1696~?)등 고관대작 자제들과 동문수학 하였다. 이들은 훗날 모두 고위 관직에 오른다. 그 후 1725년(乙未) 간암 선생은 집안 내 족손(族孫) 존재 선생을 공조판서를 지낸 지기 예산 덕산 병계 윤봉구 선생과 사제의 연(緣)을 맺게 주선하여 실학 등 학문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병계 선생의 매제(妹弟)로 호조참의를 지낸 직암(直菴) 신 경(申 暻) 선생은 1759년(己卯) 장흥위씨 1차 족보 기묘초보의 서문(序文)을 썼다. 이러함은 존재 선생께서 연곡서원중수기를 쓴 연유와 밀접한 관계가 된다. 이후 1809년(己巳) 고흥군 천등산 상원군수 위동전의 묘표(墓表) 찬(撰)을 민진장의 증손으로 병조참판을 지낸 민창혁(25세 1740~1813)이 하였고, 1938년(戊寅) 방촌유물전시관 앞에 세운 상원군수의 조(祖) 호조판서 위덕화(21세 1551~1598)의 신도비(神道碑) 근서(謹書)를 민진원의 8대손으로 이조참판을 지낸 민병승(30세 1866~1946)이 하였다. 이는 두 집안 간 우애의 情은 250여년 후까지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③淵谷書院講會記는 1818년(戊寅) 4월 하순 7대손 민치성(26세 1773~?, 제247대 장흥부사) 근기(謹記)하다. 1888년(戊子) 후손 민영은(28세 1800~?) 근기(謹記)하다.
④書示院儒는 1857년(丁巳) 10월 6세손 민달용(27세 1802~1862) 근찬(謹撰)하다.
⑤淵谷書院重修記는 1861년(辛酉) 민치서(26세 1817~1889, 제288대 장흥부사) 근기(謹記)하다.

   
 

⑥淵谷書院講會記는 1888년(戊子) 9월 후손 민치준(26세 1839~?, 제306대 장흥부사) 근기(謹記)하다.
⑦淵谷講堂重建記는 1900년(庚子) 8월 7대손 민영철(28세 1830~1893) 근고(謹稿)하다.
⑧淵谷壇所講堂重建竪碑記는 1902년(壬寅) 11월 1일 인천人 직재(直齋) 이교근(1850~1925) 근기(謹記)하다.
⑨淵谷講堂重建記는 1903년(癸卯) 1월 하순 7대손 민영소(28세 1852~1917) 근고(謹稿)하다.
⑩淵谷講堂重建記는 1903년(癸卯) 11월 상순 7대손 민영규(28세 1846~1923) 근지(謹識)하다.

   
 

⑪淵谷講堂重建序는 1903년(癸卯) 7대손 민영환(28세 1861~1923) 근지(謹識)하다.
⑫淵谷講堂重建記는 1903년(癸卯) 7대손 민병한(28세 1861~1939) 근기(謹記)하다.
⑬淵谷講堂重建記는 1904년(甲辰) 成均館大司成 연안人 이희익(1845~?, 제315대 장흥부사) 근서(謹書)하다.
⑭淵谷藏板閣記는 1906년(丙午) 5월 상순 후학 인천人 이성호(1873~1929) 근서(謹書)하다.

   
 

⑮淵谷書院資産補助出義芳名案은 1971년 淵谷書院中하다. 본 기록은 당시 고광수 장흥군수, 문기문 경찰서장, 길전식 국회의원, 교육장 김규섭, 9개 읍면장, 토지개량조합, 조흥은행 지점장, 우체국장 등 기관장과 장흥 유림 등 53인, 추진위원 위원장 김승식 등 위원 8인, 연곡서원 원장 김윤식과 장의(掌議) 15인 등 총 76명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여흥민씨 삼방파종중(三房派宗中) 파조는 21세 민시중, 민정중, 민유중 삼형제를 칭한다. 여흥민씨 내에서 걸출한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왔다. 특히 셋째 둔촌 민유중 계열 후손들이 번손하고 조선조 제19대 숙종의 비(妃) 인현왕후(1667~1701), 제26대 고종의 비(妃) 명성황후(1851~1895), 제27대 순종의 비(妃) 순명황후(1872~1904) 등 국모(國母) 3명, 조선말기 문신 충정(忠正) 민영환(28세 1861~1905, 삼방파 둔촌선생 8대손) 선생, 근래 제5~6대(1968~1977) 대법원장 민복기(30세 1913~2007, 삼방파 둔촌선생 10대손) 등 큰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서원에는 둔촌 민유중 선생 후손들이 지은 편액 9점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조선조 개국 1392년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 518년 간 장흥부사는 321인이 역임하였다. 여흥민씨 후손은 1747년 민광우(閔光遇 23세 1708~1784)가 제208대 장흥부사 역임 등 5인은 연곡서원이 사액(賜額)된 이후에 부사를 지냈다. 이중에는 민치성(閔致誠), 민치서(閔致序), 민영직(閔永稷), 민치준(閔致駿) 등 4인은 둔촌 민유중 선생의 후손으로 3인이 고종 제위(1863~1907년) 기간에 장흥부사를 지냈다. 당대 여흥민씨 노봉, 둔촌선생 후예들의 전라도 서남해안의 벽촌 장흥부사 재임은 연곡서원이 위치하고 있어 큰 영광으로 받들고 부임하여 서원 시설 중수 및 창건과 장흥 유도진흥에 큰 족적을 남겼다.

5. 어필각(御筆閣)
본 건물은 1칸 팔작집으로 신실 좌측 뒤편에 여러 계단을 오르면 위치한다.

   
 

1888년(戊子) 제305대 장흥부사 민영직(28세 1802~1892)이 재임 때 창건하였다.
어필(御筆)은 왕이 손수 쓴 글을 말한다. 旨 皇閣崇禎紀元後九十九年丙午仲春至日 謹識 1726년(丙午) 2월에 이르러 조선조 제21대(제위 1724~1776) 영조대왕(李 昑 1694~1776)이 썼다.
노봉 민정중이 명나라 연경(燕京)에서 숭정제의 어필 4장을 가져왔다는 등 내용을 기록하였다. 내부 우측 상단에 걸려있다.
정면에는 명나라 제16대(제위 1627~1644) 숭정제(崇禎帝, 1611~1644)의
친필 "비례부동(非禮不動)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다." 는 판각이 걸려 있다.
액호는 이후 1901년(辛丑) 제315대 장흥부사 이희익(연안人 1845~?)이 썼다.

6. 장판각(藏板閣)
민정중의 노봉집(老峯集)은 1734년(영조 10) 조카 문충공 민진원(閔鎭遠 1664~1736)이 편집·간행하였다. 12권(卷) 6책(冊)으로 권두(卷頭)에 문정공 이 재(李 縡 1680~1746) 선생의 서문(序文)이 있고 발문(跋文)은 없다.

   
 

이곳에는 노봉선생 문집 목판 298판을 소장하고 있다.
목판의 전체 크기는 가로 51cm, 세로 23.5cm, 두께 3~5cm로 두꺼운 편이다.
판면(板面)은 10행으로 1행에는 18자가 배자되어 있다. 판심부에는 노봉선생집이라는 서명과 아래로 권수와 장수 표시가 차례로 되어 있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당국에서는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8호로 지정되었다.
본 건물은 1734년(甲寅) 문집이 간행되면서 창건되어 목판을 보관해오다가 1871년 서원이 훼철되면서 화순군 능주면 거주 민씨 후손 집에 옮겨 보관되었다.
이후 1888년(戊子) 어필각이 창건되면서 장흥 유림들에 의해 환원되어 목판을 어필각에 보관해온 것으로 보아 건물은 한동안 철거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건물은 1993년(癸酉) 5월 4일 상량하여 중건(重建), 오늘에 이른다.

7. 외삼문(外三門)
지금의 외삼문은 1991년(辛未) 9월 29일 상량하여 중건하였다.

   
 

전면 중앙 좌측 기둥에 淵谷書院 현판이 걸려 있다.
외삼문 앞 경내에는 민치서의 불망비(不忘碑)가 세워져 있다.
후손 민치서는 1861년(辛酉) 제288대 장흥부사 재임시 선정을 베풀고 강당을 중수(重修)하였다. 이 밖의 시설은 강당 앞쪽에 관리인이 거주하는 관리사옥이 위치한다.

8. 재원(財源)
서원 대지 580평, 논 34두락, 임야 2,017평이다. 연곡서원 원장(院長), 장의(掌議) 등 4인(임기 2년)과 유사(有司)인 만수재 선생 후손 총무 1인, 재무 1인 등 6인으로 관리되고 있다.

9. 맺음말
 현재 서원 건물이 위치한 대지 580평과 뒤쪽 임야 2,017평은 토지대장에는 연곡서원으로 되어 있으나, 미등기 상태이다. 陰 3월 3일 향사와 기타 행사에서 지출되는 재원은 논 34두락(6,800평) 가을 곡수(穀數)에서 수입된다.
소유 논은 등기 상태가 지난날 원장을 지낸 사람의 인명, 원장을 지낸 사람의 종중 명, 장의를 지낸 사람의 명으로 등기되어 있다. 이는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관리하는 주체는 원장, 장의 등 지역 유림이 유지해 오면서 임기 2년이 종료되면 관리 임무가 끝난다. 최근까지 관리 형태가 관례대로 전해 내려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차후 특별조치법 등에서 등기상의 명의 변경시 해당 후손들의 불인정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
강당은 1904년(甲辰) 중건되어 내·외부를 부분적으로 보수한 흔적을 볼 수 있으나, 현재 흙벽, 처마, 기둥 등 보수가 필요함이 쉽게 확인되었다.

   
 

특히 좌측 처마는 훼손이 심각하여 임시방편으로 철재 기둥 7개를 지지대로 받쳐 놓았다. 목재 건축물은 70~100년가량이 경과하면 자연 훼손되어 반드시 보수가 뒤따른다.
실내에서 소장한 편액은 통상 100년 가량되면 재생해야 한다. 현재 소장된 16점 중, ①통문(通文) 편액은 1715년 만들어진 이후 3번 가량 재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淵谷書院資産補助出義芳名案은 편액은 1971년 3월  연곡서원에서 걸었다. 2점의 편액은 현재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다. ②1798년 4월 존재 선생이 쓴 淵谷書院重修記는 만들어진 후 1~2번 재생 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상태는 틀이 깨져 있는 등 훼손이 심각한 상태이다. ③淵谷書院講會記는 1818년 4월 7대손 민치성과 1888년(戊子) 후손 민영은(28세 1800~?)기록,  書示院儒는 1857년(丁巳) 10월 6세손 민달용 기록, 淵谷書院重修記는 1861년(辛酉) 민치서 기록으로 각각 만들어졌다. 3점 편액은 1번 재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부분 훼손 되어 있어 재생이 필요하다. ④강당 액호 등 나머지 편액 10점은 131~113년 前에 제작되어 걸은 후 재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며, 부분 훼손되어 재생이 필요하다.

일반 사우(祠宇)는 대부분 ㅇㅇ성씨 ㅇㅇ문중·ㅇㅇ종중의 소유로 등기되어 관리 주체가 명확하여 시설 보수와 재원 관리에 어려움이 적은 편이어서 연곡서원 관리와는 큰 차이점 있다.
지난날 장흥 유생들은 연곡서원 장의(掌議)를 거쳐 유림의 산실인 장흥향교에 참여하는 것이 장흥 유림들의 수순(手順)이었다. 전라남도(장흥군청) 등 관계 당국과 연곡서원에서는 문화재 실태 현장 확인 및 지역 유림사회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시급한 관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사료된다.

자문 : 민동환(여흥人 33세, 삼방파종중 노봉선생 13대 종손, 1951년생,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거주), 연곡서원 총무 月谷 이제흠(인천人 36세, 만수재 선생 9대손, 1946년생, 장흥읍 건산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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