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장흥 물축제가 이루어지고, 장흥 남산공원 재개발이 논의된다는 요즈음에 크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예양강 일대를 아우르는 정자(亭子) 누각(樓閣) 하나가 왜, 어찌 없다는 말인가? 옛 장흥에는 ‘동정(東亭,봉명정)’과 그 전통을 이어받은 ‘동문루(도호문루,영벽정)’가 분명 있었다. ‘東亭’은 다른 기회에 말씀드렸지만, “명봉고정천일향(鳴鳳高亭 擅一鄕)/ 예양강수 유리벽(琉璃碧)/ 장교일영 수여천(長橋日映 水如天) 최시강남 호풍경(最是江南 好風景)/ 일대장강 십리통(一帶長江 十里通)/ 백척등림(百尺登臨)”으로 묘사되는 자리였다. 장흥 선비들과 외지 방문객들이 통과의례적으로 읊게되는 명소였다. 그 ‘동정, 봉명정(鳳鳴亭)’ 시대의 마지막 목격자였을까? '장육재 문덕구(1667~1718)'는 <예강구곡가(九曲歌), 제4곡 동정자(東亭子)>에서 '층성가취암(層城架翠巖)'이라 말했는데, 아마 장흥읍 연산 마을로 돌아가는 강변 절벽을 묘사하였을 것.

오늘은 ‘동문루(東門褸)’에 대하여 정리해본다. '鳳鳴亭' 모습은, 아마 17세기 후반일까, 어느 때에 사라지고 말았다. 장흥 일대의 여러 풍경이 등장하는 ‘방호 김희조(1680~1752)’의  <방호집>에 '東亭'도 '東門樓'도 등장하지 않았다. 백년 공백을 거친 후에 '東門樓' 시대로 들어섰는데, '봉명정(동정)'과 '동문루'를 동일하게 보는 주장은 잘못된 것. <정묘지,1747>에 "鳳鳴亭 금폐(今廢)"라 하였고, '東門樓'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서오(柳敍五)' 장흥부사가 부임한 1761년경에 '東門樓 낙성연' 잔치가 있었으며, 중수(重修) 잔치가 아니었다. 그 낙성연을 주관한 '유서오(1711~ )' 부사의 원운詩를 받은, 사마시( 1747년)동방 '은암 김몽룡(1708~1788)'의 차운詩가 있고, 또한 '존재 위백규(1727~1798)'의 차운詩가 남아있다. 이때 등장한 명칭, '임벽루(臨碧樓)'를 '동정(東亭)'으로 보는 주장도 있으나, 역시 아니다. 이층누각 '東門樓가 곧 '臨碧樓'이고 '도호門樓'이다. 그 앞에 석류(石榴)나무도 있었던 모양이다. 세월은 다시 흐르고 한말(韓末) 무렵에 퇴락한 '東門樓'와 황폐한 예양강 모습을 뒤쪽에서 잡은, 옛 <흑백 사진>에 가슴이 미어터진다. <장흥도호부誌(1895)>에는 '도호문樓'와 '동교(東橋)'가  등장하며, <장흥읍지, 경술지(1910)>에도 '도호門'으로 나온다.

- 원운詩, 임벽루(臨碧樓), 장흥부사 유서오(1711~)

​飛飛賀燕繞城頭   지지배배 제비들 城머리 감싸들고
鼛鼓東門不日休   ‘東門’의 큰북 소리 멈춤이 없다네
百里長興都護府   백리 고을 땅 장흥도호부 위세라
二層高起使君樓   이층고루 '사군루(使君樓)' 들어섰고
掀簾夕陽來江鷺   주렴 친 夕陽 사이에 백로 내려앉네
撲檻風花送石榴  난간 두들긴 風花에 석류 보내고
拓倚曲欄遙凭望  곡란에 올라 기대 멀리 바라보니
規模恢拓古雄州  그 규모 광대해라, 옛 雄州 고을.

- 차운詩, 東門樓낙성연석상(席上) 次柳侯(서오)韻, 운암 김몽룡

​壯元峰下汭江頭   장원봉 아래, 예양강 쪽으로
營始神功不日休   신령한 공사 멈출 날 없었네
萬堞東城留鎭閾   성가뀌 東城은 치소구역이
百年南土去思樓   백년 남토에 ‘거사루(去思樓)’
檐前綠絮千絲柳   처마앞 녹서로 천겹 버드나무
檻外紅파萬點榴   난간밖 홍파로 만점 석류나무
今日落成同樂惠   금일 落城은 同樂의 혜택이라
豊碑在口頌聲悠  입을 모아 공덕칭송 넘쳐나리

- 차운詩, 次柳候(서오)임벽루(臨碧樓)韻, 존재 위백규

​畵桷危欄鎭海頭   화각위란의 모습 남쪽을 압도하고
使君經始樂民休   고을 원님은 백성과 즐겨 쉬었어라
千年形勝平湖水   천년 형승에 汭湖 물길은 평온하고
百里風光生色樓   백리 風光에 누대 기품이 돋보이네
山郭晴烟連竹樹   산곽 푸른 연기 대밭숲에 이어지고
江郊犁雨軫花榴   강교에 비 흠뻑 석류꽃 재촉 하네
乳鷮影入翬飛翼   어린 꿩그림자 날아 들어오는 듯
玉軫聲中第一州   가야금 맑은 소리 남도땅 제일이네

맺는다. '장흥 東亭(봉명정)'과 '東門樓(임벽정)'는 長興이란 역사적 공간의 문화적 상징자산이다. 읍사무소 쪽 언덕 또는 그 부근 강변 고지대에 우선 ‘東門樓’ 복원(復元)을 주장한다. 장흥 물축제 때에도 장흥의 역사와 예양강 풍광을 고양하는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다. 몇 년 전에 장흥읍 건산리, 옛 곡자회사 터에 세워진 ‘鳳鳴亭’은 그 전통승계를 표방한 역사적 의미는 컸으나, ‘옛 東門 밖 예양강변 백척고지’ 절벽에 있던, 본래 위치에서 벗어난 아쉬움도 컸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예양강변에 들어선 '東門樓(임벽정,도호문루)'가 건너편 한들 평야와 억불 사자 제암산을 멀리 껴안는 조망 풍경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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