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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장천팔경 등 비경(秘境)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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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6  11: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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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5대 명산이자 남도의 영산(靈山) 천관산(天冠山 723m) 영은동천(靈隱洞天), 장천동(長川洞) 계곡에는 실학자 존재(存齋) 위백규(1727~1798) 선생이 명명(命名)한 장천팔경 등 비경(秘境)이 곳곳에 위치한다. 선생께서는 연령 25세 때부터 벽촌(僻村) 장흥 천관산 아래 방촌리에서 충남 예산 가야산 아래 옥계리를 수회 오가면서 스승 병계(屛溪) 윤봉구 선생(1683~1767)의 학문을 수학하였다. 이 과정에서 병계 선생이 가야산 자락 덕산천 계곡에 명명한 비경 가야구곡(伽倻九谷)과 유사한 형태의 암각문(岩刻文)을 남겨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어 현장을 소개한다.

1. 장천팔경(長川八景)
■ 장천팔절서(長川八絶序)

   
 

이중 제일(第一) 청풍벽(淸風壁)이라 하였으니 세상 사람이 골짜기에 처음 들어와서 청풍(淸風)과 만남이다. 제이(第二) 도화량(桃花梁)이라 한 것은 신선(神仙)을 찾는 자가 도화(桃花)를 따라감이요, 제삼(第三) 운영기(雲影磯)라 함은 개천(도랑)에게 맑은가를 묻고 내 마음을 허락하는 것이요, 제사(第四) 세이담(洗耳潭)이라 함은 소부(巢父)의 일을 말한 것이요, 제오(第五) 명봉암(鳴鳳巖)이라 함은 높은데서 세상(世上)을 봄이니 또한 덕성암(德星巖)이라고도 하며, 제육(第六) 추월담(秋月潭)이라 함은 성현(聖賢)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요, 제칠(第七) 탁영대(濯纓臺)라 함은 유자(孺子)의 티 없는 노래를 말함이요, 제팔(第八) 와룡홍(臥龍泓)이라 함은 인간(人間)에게 비를 만들어 보냄을 말하는 것과 같다.
1762년(壬午) 7월(孟秋) 하순 계항운민(위백규 1727~1798) 지(識), 사락산인(위백침 1732~1797) 서(書)하다.

■ 팔영(八泳)
駕風登絶頂呼月上高樓 : 바람을 타고 절정(絶頂)에 오르고 달을 부르며 고루(高樓)에 올라가네
潭古神龍蟄臺留彩鳳遊 : 못은 옛스러워 신룡(神龍)이 잠겨있고 대(臺)에는 채봉(彩鳳)이 머물러 노는 구나
濯纓幢儒者洗耳臨巢由 : 갓끈을 씻으니 유자가 그리워지고 귀를 씻으니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내려다보네
宴坐看雲影桃花遂水流 : 편안히 앉자 구름 그림자를 보노라면 도화(桃花)는 물을 따라 흐르구나. 낭서가객 서(書)하다.

 ■ 장천팔경판상운(長川八景板上韻)

   
 

一闢斯樓四達軒 : 한번 이 누를 세우니 사방이 넓고 툭 트이네
古家卜築賁邱園 : 고가(古家)를 가려 쌓아 구원(丘園)을 꾸몄구나
文章自有江山約 : 문장은 자연히 강산과 약속이 있고
風月常留翰墨痕 : 풍월(風月)은 항상 한묵(翰墨)의 흔적을 남기네
八景入瞻兼絶美 : 팔경을 들어가 바라보니 절미(絶美)함을 겸했고
長川懸瀑朔深源 : 장천에 달린 폭포 심원(深源)이 있기 때문이다
遊人騷客觀過後 : 유인과 소객(騷客)이 보고 지난 뒤에는
盛道天冠某姓門 : 성대하게 천관산은 모성의 문이라고 이르리라.

- 제일(第一) 청풍벽(淸風壁)

   
 

噓來蘋末自淸風 : 마름 끝에서 불어옴에 자연히 청풍(淸風)이라
灑落胸襟識主翁 : 쇄락(灑落)한 흉금(胸襟) 주옹(主翁)을 알겠구나
古有北窓今有壁 : 옛날에는 북창이 있었으나 지금은 벽이 있으니
一般氣味在那中 : 일반의 기미(氣味) 이 가운데 있으리라.

- 제이(第二) 도화량(桃花梁)

   
 

一曲長川兩岸花 : 한 구비 장천(長川) 양쪽 언덕엔 꽃이구나
仙源微路小梁斜 : 선원(仙源)의 희미한 길 작은 다리 비겼구나
時有漁郞來去艇 : 때로 어랑(漁郞)이 배를 타고 오가는데
樹雲深處訪人家 : 수운(樹雲) 깊은 곳에 인가(人家)를 찾는구나.

- 제삼(第三) 세이담(洗耳潭)

   
 

山間有水自成潭 : 산간(山間)에 물이 있어 자연히 못을 이루니
淸似玉壺碧似藍 : 옥(玉)같이 맑고 쪽같이 푸르구나
莫使是非流入耳 : 시비(是非)를 흘려서 귀에 들게 하지 말라
若將浼我取澹澹 : 장차 내가 담담함을 취하려고 하는데 더럽힐까 싶구나.

- 제사(第四) 운영기(雲影磯)
認君幽趣付漁磯 : 그대의 고요한 취미 어기에 붙이는 걸 알겠구나
萬事無關與世違 : 만사에 관여함이 없으니 세상과는 거리가 멀었네
一片白雲心共住 : 일편(一片)의 백운(白雲) 마음과 같이 머무르니
斜風寒雪却忘歸 : 비낀 바람 찬 눈 속에 문득 돌아감을 잊는구나.

- 제오(第五) 명봉암(鳴鳳巖)

   
 

聖世鳳鳴節彼岩 : 성세의 봉(鳳)이 높은 저 바위에서 우니
四靈超出異於凡 : 사령이 초출(超出)함은 보통과 다르니라
西岐以後天冠又 : 문왕의 도읍 서쪽 기산 이후 천관에 또 있으니
覽下吾君德有咸 : 우리 임금 덕(德) 이룸을 내려다보리.

- 제육(第六) 추월담(秋月潭)
寒潭月色倍生秋 : 차가운 못 속의 달빛 가을 생각 배나 더 나게 하네
寶鑑無塵水共流 : 보감(寶鑑)처럼 티끌 없이 물과 같이 흐르는구나
喚得主翁觀物理 : 주옹(主翁)을 불러 물리(物理)를 보게 하니
淡然氣像此中留 : 담담(淡淡)한 기상(氣像) 이 가운데 머물구나.

- 제칠(第七) 탁영대(濯纓臺)

   
 

澤畔有臺可濯纓 : 못 두둑에 대(臺) 있으니 가히 갓끈 씻겠구나
水哉奚取取斯淸 : 물을 어찌 취하는가 맑기 때문에 취함이라
而今識得三閭趣 : 이제야 굴삼여(屈三閭)의 취미를 알 듯 하니
一曲滄浪萬古情 : 한 구비 푸른 물결 만고(萬古)의 정(情)이로다.

- 제팔(第八) 와룡홍(臥龍泓)
誰識斯間有臥龍 : 뉘가 알겠는가 이 사이에 와룡(臥龍)이 있는 줄을
元來靈異自天鍾 : 원래(元來)에 영이(靈異)하니 하늘로부터 모이었네
雖潛不是泓中物 : 비록 잠겨 있으나 이는 못 속에 물건이 아니니라
雲雨他時變化從 : 구름 끼고 비 오는 다른 때에 변화하여 좇으리라.
1890년(庚寅) 7월 지부(知府) 민치준(閔致駿) 고(稿)

☞ 민치준(여흥人 1839~?, 통훈대부)은 1888년 4월~1891년 2월 간 제306대 장흥부사를 역임하였다. 노봉(老峯) 민정중 (閔鼎重), 둔촌(屯村) 민유중(閔維重) 선조의 위폐가 봉안된 연곡서원에 치성(致誠)하면서 1888년(戊子) 9월 강회기(講會記)를 기록하는 등 장흥 유도진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전주판관으로 전근하였다.

천관산 장천동 계곡의 비경 장천팔경 중, 암각문(岩刻文)으로 남긴 것은 도화량, 세이담(泉), 탁영대, 와룡홍으로 확인되고 있다. 청풍벽과 명봉암은 규모가 큰 자연석 자체를 지칭한다. 탐방시 운영기는 기상에 따라 자연 현상이 생성 되지 않았고, 추월담은 가뭄으로 인해 계곡 내 물이 부족하였다. 와룡홍은 청풍벽 아래 소(沼)를 지칭하며, 명명에서 "와룡담(臥龍潭)이라 하지 않고 와룡홍(臥龍泓)이라"고 함은 물길이 깊음을 엿볼 수 있다. 암각문은 소(沼) 5m 앞에 위치한 1m가량 크기의 넙적한 사각 바위에 새겨져 있었으나, 1981년 여름 장마와 애그니스 태풍에서 계곡의 급류현상으로 인해 "臥龍泓"이라는 암각문의 바위가 뒤집어져 현재는 볼 수 없다.

2. 그밖의 비경(秘境)
장천팔경 외 비경(秘境) 영은천(靈隱泉)은 장천동 계곡 깊숙한 곳으로 경치가 좋을 뿐 아니라 샘물이 달아 자못 연화(煙火)의 생각을 잊게 표현하는 곳이다.

   
 

장천재 묘소에서 천관산 등산로 위쪽으로 200m 가량 가다보면 바위 위에 세워진 병조참판 위정철 묘갈명이 위치한다. 이곳에서 전방 100여 미터 쯤 더 가다보면 등산로 아래 계곡에는 신비스런 영은천(靈隱泉)이 위치한다. 주변 아래 전답(田畓)과 집터가 있어 지난날 사람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냉뢰(淸冷瀨)는 5월의 녹음(綠陰)과 주변의 노석(老石), 흐르는 얕은 맑은 샘(泉)은 고요하여 운치(韻致)가 있음을 표현한 곳이다. 장천팔경 중, 제3경 세이담(泉) 주변 계곡을 칭한다.

백설뢰(白雪瀨)는 폭 4~5m, 길이 13m 가량 계곡 바닥에 하나의 바위가 길게 비스듬하게 깔려 있다. 흐르는 물의 수량으로 인해 물이 튕겨 올라 햇볕에 반사되어 마치 눈발을 내 뿜은 것 같음의 현상을 표현한 곳이다.

   
 

청풍벽(淸風壁) 아래 와룡홍(臥龍泓)과 도화교(桃花橋) 중간에 위치한다.

뇌문탄(雷聞灘)은 장천동 곡구(谷口)에 폭포수 같은 물이 흐르면서 요란스럽게 부딪쳐서 우뢰 소리를 듣는 것 같음을 표현한 곳이다.

   
 

영월정(迎月亭) 옆 장천교에서 보면 50m 앞 계곡에 위치한다. 장천동 계곡은 건천(乾川)으로 수량(水量)이 적은 편이다. 1935년경 장천동 계곡 물줄기를 놓고 방촌리 호동마을 오헌(梧軒) 위계룡(1870~1948) 선생과 인근 옥당리 당동마을 백수인(1885~1959)이 중심되어 재판 소송을 하였다. 이 재판을 거쳐 방촌리가 승소(勝訴)한 후 현재와 같이 한쪽에 수로(水路)를 설치하여 물길을 방촌리 쪽으로 흐르게 하였다. 이 물줄기는 천관산길 한쪽 수로를 통과하여 방촌리 호동마을과 탑동마을 앞 사정(射亭)이 들판을 적시고 이어서 호산마을과 산저마을 앞 허수아비골을 거쳐 송촌리 평촌마을 유천재(柳川齋) 앞과 대평마을 들판을 경유하여 득량만(得糧灣) 바다로 유입(流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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