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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장흥위씨 장천재(長川齋)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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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4  14: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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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남도의 영산(靈山) 천관산(해발 723m) 영은동천(靈隱洞天) 기슭,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산 92번지에는 장흥위씨 장천문중의 소유 장천재(長川齋)가 자리하고 있다.

   
 

승문원습독 위유형(18세 ~?)의 배(配) 의인(宜人) 평산申氏의 묘각이다. 웅천현감 위정렬(22세 1580 ~1656)이 타계하자 효자 동식(23세 1640~1708), 동헌(1645~1706) 형제가 초가삼간을 지어 3년간 시묘(侍墓)하시다 상(喪)을 마친 후 문중에서 주변 영은암(靈隱庵)의 승사(僧舍)를 철거하고 구조와 규모를 확대해 짓고 기와를 이어 제각을 장천재라 재호(齋號)하였다.
장흥위씨의 상징적 건물이라 불리면서 천관산의 울창한 숲과 사시사철 흐르는 계곡 등 주변의 풍광과 어울러 있는 제각은 장흥위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수령 600년 이상의 신비를 간직한 우람한 태고송(太古松)은 2011년 볼라벤 태풍의 영향으로 시들어진 후 2013년 고사하여 자태를 볼 수 없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록상의 1차 보수는 1705년(乙酉) 위세감(24세 1674~1716), 송와 위세기(24세 1675~1747)의 주도로 堂을 넓혀 재실을 중수하였다. 2차 보수는 1724년(甲辰) 춘담 위세린(24세 1673 ~1741), 옥호 위명성(1662~1740), 쌍백당 위명익(25세 1679~1767) 등의 주도로 규모를 새롭게 했다. 3차는 1747년(丁卯) 낙호 위명래(25세 1693~1768), 위명호(25세 1696~1773), 영이재 위문덕(25세 1704~1784), 덕암 위상겸(26세 1705~ ?) 등의 주도로 중수하였다. 이후 유림들이 학문을 탐구하고 기량을 연마하여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그 중에 호남3대 실학자의 한 사람인 존재 위백규 선생(1727~1798)도 이곳에서 수학(修學)하고 학규(學規)를 지어 강학하였으며 정현신보(政弦新譜) 등 실학저서 100여권을 후세에 남겼다.

   
 

현 건물은 4차 중수로 1873년(癸酉) 행백당 위석홍(30세 1818~1886), 다암 위영복(28세1832~1884), 농포 위 송(30세 1832~1875)의 주관으로 연인원 1만 명을 동원하여 ‘工’자 형태로 신축하였다. 대부분의 제각은 ‘ㄱ’자, ‘ㄷ’자, ‘ㅁ’자 형태로 지어졌다. 그러나 장천재는 한문의 ‘工’자 형태다. 이는 어느 공간에서도 주변의 자연과 풍광을 조망할 수 있게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시인묵객이 많았던 모양이다. 1978년(戊午) 9월 21일 전라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장천재는 제각이자 강학소(講學所), 시회(詩會), 족보편찬, 문중행사 등 다양한 장소로 이용되어 왔다. 문중 어른들이 여름 한가한 때 피서를 겸해 시회를 연다. 시기는 유두, 칠석, 백중인데 농사에 장원한 집이 주관한다. 더구나 외지에서 다른 성씨의 선비들이 찾아오면 시회를 열어 접대한다. 이것이 외지의 선비를 접대하는 위씨들의 손님 접대방식이다.

   
 

장천재에는 당호 편액을 비롯하여 별호인 부계당(俯溪堂), 추원루(追遠樓), 열락헌(說樂軒), 즉휴루(則休樓) 편액이 있다. 이밖에 외문인 청뢰문(聽雷門), 풍호대(風乎臺)와 별호인 육각정(六角亭) 등 8개의 액호(額號) 편액이 있다. 이중 장천재 액호 편액은 극암 이기윤(1891~1971) 선생이 썼고, 추원루 편액은 제302대, 304대 장흥부사를 역임한 송기로(1830~1898)가 썼다.

경내의 1)부계당근차잉여옹운(俯溪堂謹次剩餘翁韻)은 1752년(壬申) 간암(陶泉子) 위세옥(24세 1689~1766) 선생 경제(敬題))하다.
2)제부계당중수벽상(題俯溪堂重修壁上)은 1720년(庚子) 가을 富山 잉여옹 위명덕(25세 1683~1756) 선생 고(稿)하다. 1765년(乙酉) 가을 불초고 위사천, 행와 위사급(26세 1717~1776) 추게(追揭)하다.

   
 

3)부계당상량문(俯溪堂上樑文)은 1873년(癸酉) 11월 다암 위영복 선생 근서(謹書)하여 낙성일(落成日) 후 걸었다.
4)부계당중건기사(俯溪堂重建記事)는 1873년(癸酉) 11월(至月) 10일 다암 위영복 선생 근기(謹記)하다. 1935년(乙亥) 옥호 위명성(25세 1662~1740)의 6대손 죽헌 위계창(31세 1861~1943) 선생 삼가 새기다.
5)부계당판상서급운(俯溪堂板上序及韻)은 1793(癸丑)년 여름 상순 묵와 위수택(27세 1739~1796) 경차(敬次)하다.
6)즉휴루기(則休樓記)는 1883년(癸未) 2월 하순 다암 위영복(28세) 선생 기록하다. 1935년(乙亥) 옥호공 6대손 죽헌 위계창 선생 삼가 새기다.
7)부계당중수기(俯溪堂重修記)는 1873년(癸酉) 11월 至日 호정초부 위하조(29세 1809~1881) 선생 근기(謹記)하다.
8)부계당추기(俯溪堂追記)는 1898년(戊戌) 2월(仲春) 송사(松沙) 기우만(행주人, 1846~1916) 선생 근서(謹書)하다.
9)근제부계당기(謹題俯溪堂記)는9 1914년(甲寅) 가을 죽암 위계문(31세 1865~1951) 선생 읍혈근고(泣血謹稿)하다.
10)장천팔절서(長川八絶序)는 1792년(壬子) 가을 계항운민 위백규(26세 1727~1798) 선생 지(識)하고 사락산인 위백침(26세 1732~1797) 서(書)하다. 팔영(八詠)은 팔경(八景)을 詩로 읊은 것으로 낭서과객 근서(謹書)하다.

   
 

제일(第一) 청풍벽(淸風壁), 제이(第二) 도화량(桃花梁), 제삼(第三) 운영기(雲影磯), 제사(第四) 세이담(洗耳潭), 제오(第五) 명봉암(鳴鳳巖), 제육(第六) 추월담(秋月潭), 제칠(第七) 탁영대(濯纓臺), 제팔(第八) 와룡홍(臥龍泓)이다.
11)장천팔경판상운(長川八景板上韻)은 지부(知府) 민치준(여흥人 1839~ ?, 제306대 장흥부사 역임) 고(稿)하다.
12)기재종형세연구화(奇再從兄世璉求和)와 17)삼족당유고(三足堂遺稿)는 영이재 위문덕(25세 1704~1784) 선생 읍혈서(泣血書) 병기(倂記)하다.

   
 

13)존재선생 학규(存齋先生 學規)는 1874년(甲戌) 다암 위영복 선생 근서(謹書)하다.
14)장천재운(長川齋韻)은 원취당 위도순(27세 1748~1816) 선생 찬(撰)하고, 1911년(辛亥) 봄 현손(玄孫) 오헌 계룡은 감읍서(感泣書)하다.
15)근차장천재운(謹次長川齋韻)은 경수(耕叟) 기량연(행주人 1771~ ?) 선생 고(稿)하다.
16)근차장천재운배정(謹次長川齋韻拜呈)은 1823년(癸未) 도곡(道谷) 송종운(은진人 1792~1825) 찬(撰)하다.
17)열락헌운(說樂軒韻)은 1855년(乙卯) 4월 2일 부백(府伯) 서상조(대구人 1830~1905, 제299대 장흥부사 역임) 고(稿)하다.
18)차장천재운(次長川齋韻)은 연재(淵齋) 송병선(은진人 1836~1905) 선생 근서(謹書)하다.
19)장천재열락헌운(長川齋說樂軒韻)은 지부(知府) 송기로(은진人 1830~1898, 제302대 장흥부사 역임) 고(稿)하다.
20)장천재운(長川齋韻)은 1887년(丁亥) 지부(知府) 송기로(제304대 장흥부사 역임) 고(稿)하다.
21)근차장천재판상운(謹次長川齋板上韻)은 1881년(辛巳) 3월(暮春) 진사(進士) 이상구(인천人 ~ ?) 찬(撰)하다.
22)경차장천재판상운(敬次長川齋板上韻)은 신호(莘湖) 김록휴(울산人 1827~1899, 유생) 찬(撰)하다.

   
 

23)즉휴루운(則休樓韻)은 1887년(丁亥) 지부(知府) 송기로(제304대 장흥부사 역임) 고(稿)하다.
24)장천재운(長川齋韻)은 1903년(癸卯) 4월(孟夏) 상순 이강재(연안人 ~ ?) 고(稿)하다.
25)무술춘배종연재선생유람천관산경차장천재운(戊戌春陪從淵齋先生遊覽天冠山敬次長川齋韻)은 눌와(訥窩) 1898년(戊戌) 윤자현(파평人 1844 ~1909, 학자) 찬(撰)하다.
26)남유천관귀로낭음증위수재(南遊天冠歸路浪吟贈魏秀才) : 남으로 와 천관산에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질없이 읊어서 위수재(魏秀才)에게 줌. ①장천재(長川齋), ②상봉(上峰), ③구룡봉(九龍峯), ④포봉(蒲峯), ⑤석범(石帆), ⑥금수굴(金水窟), ⑦연대(烟坮)를 관산과객(冠山過客) 죽농(竹農) 송철용(宋喆用) 찬(撰)하다. 1884년(甲申) 1월 계사 위혁기(29세 1858~1940) 선생 경지(敬識)하다.
27)부계당경차선고호산부군판상운(俯溪堂敬次先考壺山府君板上韻)은 불초자 춘파 위관식(30세 1843 ~1910) 선생 찬(撰)하다.
28)부계당경차선자판상운(俯溪堂敬次先子板上韻)은 1911년(辛亥) 春 3월 16일(旣望) 불초손 오헌 위계룡(31세 1870~1948) 선생 근고(謹稿)하다.
29)부계당재중수후근차판상운(俯溪堂再重修後謹次板上韻)은 오헌산인 위계룡 선생 찬(撰)하다.
30)장천동세덕운(長川洞世德韻)은 불초손 낙청헌 위형권(30세 1819~1899) 읍혈근고(泣血謹稿)하다.
31)차부계당판상시급기(次俯溪堂板上詩及記)는 춘파 위관식(1843~1910) 선생 찬(撰)하고, 1911년(辛亥) 3월 하순 오헌 위계룡 선생 읍혈간(泣血刊)하다.
32)부계당근차연재선생판상운(俯溪堂謹次淵齋先生板上韻)은 1901년(辛丑) 長至日 춘헌 위계반(31세 1848~1939) 선생 근고(謹稿)하다.
33)1912년(壬子) 3월 춘헌 위계반(31세 1848~1939) 선생 근고(謹稿)하다.
34)근차장천재판상운삼족당공판상운(謹次長川齋板上韻三足堂公板上韻)은 계은 위대량(32세 1884~1951) 근고(謹稿)하다.
35)계은당 위대량 모선사실기(桂隱堂魏大良慕先事實)는 1949년(己丑) 9월 26일 중와 위홍량(32세 1881~1961) 선생 지(識)하다. 부(附) 계은당(桂隱堂) 봉정문(奉呈文)은 1946년(丙戌) 11월 29일 승문원습독 위유형(18세)의 14대손 계은 대량(32세 1884~1951) 근정(謹呈)하다.
36)제장천당(題長川堂)은 1953년(癸巳) 정헌 위계후(31세 1905~1982) 근고(謹稿)하다.

장천재에는 액호 8개, 시운 36개 등 총 44개의 편액 글이 걸려 있어 선대의 진한 흔적이 남아 있다. 매년 陰 10. 15일 의인(宜人) 평산申氏, 통선랑 위진수(19세 1480~1564), 강릉참봉 위진현(19세 1483~1564), 웅천현감 위정렬(22세 1580~1656)등 4位 제향해오던 것을 기존 陰 10월 10일 장흥읍 평화리 다전등에서 봉행한 통덕랑 16세 위자량, 17세 한성참군 위종복, 18세 승문원습독 위유형 3位 제향과 陰 10월 1일 회진면 대리 위치한 성균진사 20세 위 곤(1515~1582)과 호조판서 21세 위덕화(1551~1598) 제향을 2018년부터 陰 10월 15일 장천재에서 합제하여 8位 제향을 봉행한다.
장천문중은 곡성현감공(大成)파종중, 양곡공(德元·德鄰)파종중, 훈도공(魴)파종중, 판사공(德弘)파종중, 청계공(德毅)파종중, 운암공(德寬)파종중, 판서공(德和)파종중, 안항공(德厚)파종중 등 8파종중으로 구성된다. 재원으로는 논 93두락, 밭 12두락, 임야 26정이다. 매년 음 1월 3일 신년하례, 말복(末伏) 복달임, 陰 12월 14일 문계 총회 등 전통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존재선생 부계당 낙성연을 축송한 시 일곱 수(俯溪堂落成宴頌禱詩七章) 출처 : 국역 존재집>
活活長川  콸콸 흐르는 장천이여
幽幽南山  그윽한 남산이여
築室旣成  집을 다 짓고 보니
孔奕且安  정말 아름답고 편안하구나
承我先墓  우리 선영 받들어
載繁其祉  이 복을 번창시키리라.

殖殖其庭  반듯한 뜰이며
閒閒其楹  우람한 기둥이여
齋宿以時  때 맞춰 목욕 재계하고
歲薦我祀  해마다 제사 올리리라
於千萬年  아 천년만년토록
勿替引之  중단 말고 이어가리.

噲噲其正  훤칠한 정면에다
噦噦其冥  깊숙하고 아늑한 방
講學於斯  이곳에서 강학하고
宴飮於斯  이곳에서 술도 마시겠지
子孫保之  자손들아 보전해서
令聞不已  아름다운 명성 끊이지 말게 하라.

生徒濟濟  많고 많은 생도들
夙夜匪懈  밤낮으로 부지런하고
侁侁緇疇  많고 많은 유생들
亦旣來處  어느덧 자리에 왔구나
匪今斯今  지금뿐만 아니라
永世如之  영원토록 이만 같아라.

 我有旨酒  내게 맛 좋은 술 있어
以速嘉賓  아름다운 손님들 초대하네
父老無故  부로들 무고하며
兄弟俱存  형제들 모두 살아 있어
鼓瑟吹笙  비파 타고 생황 부니
樂且無央  즐거움 끝이 없어라.

賓之初筵  손님처음 잔치에 나올때
其儀不忒  거동이 흐트러지지 않다가
或靡克終  혹 끝까지 잘 마치지 못해
醉舞僛僛  술에 취해 비틀비틀 한다면
酌彼兕觥  저 뿔잔에 술을 따라서
逝其罰汝  그대에게 벌주로 내리리라.

吹笙擊鼔  생황 불고 북을 치며
侑我旨酒  맛난 술을 권하니
和樂旣洽  화락함은 그지없고
威儀孔閑  위의도 매우 우아하네
父兄有慶  부형에게 경사 있으니
眉壽萬年  만년토록 장수하소서.

   
 

☞ 부계당(俯溪堂)은 장천재(長川齋)의 별호(別號)이다. 1782년(壬寅) 존재 위백규 선생의 연령 56세 때, 문중에서는 장천재를 보수하고 낙성연(落成宴)을 베풀었다. 선생의 주옥같은 어휘로 후손의 번성을 간절히 축원하는 시(詩)이다. 깊고 깊은 장흥위문 사랑을 느낄 수 있다.
- 드론사진 제공 : 마동욱 향토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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