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1. 고향 관산읍 방촌마을의 별신제(別神祭)와 매귀(埋鬼)는 400여 년 前부터 행해진 마을의 안녕(安寧)과 주민들의 단합(團合)을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날의 전통풍속행사이다. 별신제(別神祭)는 여타 마을의 동제(洞祭), 당제(堂祭) 등과 토속적(土俗的) 의미는 비슷하나 절차는 양반 유교적(儒敎的)으로 다른 마을과 구별된다. 방촌마을에서는 농악이라고 하지 않고 액운(厄運)을 땅에 묻는다 하여 “매귀(埋鬼)”라고 하며 방촌마을만의 독특한 리듬이 전해 지고 있는 등 전통적 가치가 있어 앞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매년 대동계(大同契) 주관으로 먼저 정월(正月) 초삼일(初三日)에 별신제(別神祭) 제관을 망정하여 마을회관 앞에 게시 공고한다.

대보름날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주요 제관(祭官)으로 망정(望定)하는데 제관(祭官)은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 집례(執禮), 축관(祝官), 집사(執事) 2명, 화주(化主: 제사 제물을 준비하는 일명 유사) 등으로 과거에는 이를 엄격히 지켰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늘 화주(化主)만 고생한다고 하여 화주가 초헌관(初獻官)을 겸(兼)했던 사례도 있었다. 과거에는 망정된 제관(祭官)들은 별신제(別神祭)를 모실 때까지 궂은 일에 관여 하지 않고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장천재(長川齋)에서 기거하면서 마을 입구 鎭西大將軍이 위치한 벅수골 주변 상잠산(觴岑산: 고려 懷州牧의 主山)에서 흘러 내려온 계천(溪川) 물에 몸을 씻고 마을 밖의 출입을 금(禁)하고 근신(謹身)하였으나 요사이는 집에서 행한다고 하니 액운(厄運)을 쫒기 위함의 몸가짐은 과거나 요즘이나 한결가치 같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초헌관(初獻官)의 집에는 금토(禁土)인 황토(黃土)를 깔고 대문에 창호지로 꼰 금(禁)줄을 쳐서 잡인(雜人)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방촌마을 입구 벅수골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석장승과 여자 석장승 가슴에 창호지로 꼰 금(禁)줄을 쳐서 마을에 액운(厄運)을 차단함과 중요행사인 별신제(別神祭)를 고(告)하고 있다. 마을 회관에서는 손 재능이 좋으신 어르신들이 모여 보름 前까지 매귀에 사용할 영기(令旗), 사령기(司令旗), 덕석기, 대포수(大砲手), 조리중, 꽹가리, 징, 장구, 북 등의 매귀 악기를 정비 한다. 특히 새롭게 고깔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 정월(正月) 14일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화주(化主) 집에 모여 별신제(別神祭) 제사에 쓰이는 홀기(笏記)와 축문(祝文)을 쓰고 허수아비를 볏짚으로 만들고 한지에 붓으로 인형(人形)을 그려 얼굴에 덮는 식으로 만든다.

또 제물을 담는 망태도 함께 만들어 오후에는 회관 입구 등전마을 논두렁에 허수아비와 생 시누대나무를 세워 금(禁)줄을 친 사각 제단(祭壇)을 만들어 놓는다. 화주(化主) 집에 아녀자는 별신제(別神祭)에서 사용될 제물을 준비한다. 요즘도 음식 할 때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을 보면 정성과 액운을 쫒기 위함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제찬(祭餐)으로는 조기, 병어, 장대(양태), 전어 등 생선, 꼬막, 돼지머리와 편육, 토란, 숙주, 고사리, 도라지 등의 나물과 두부탕, 매생이탕이 곁들어진다. 편(떡)은 시루에 흰 백설기를 하는데 층 사이로 한지(韓紙)를 깔아 층을 구분하여 집에서 직접 쪄서 준비한다.

3. 보름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매귀패들(30~40명)은 한복을 입고 회관으로 나와 각자가 다루는 농악기 의상을 갖추고 상쇠 진행에 따라 회관 앞 광장에서 보름날 행사가 진행됨을 매귀패는 바빠진다.

이어서 제관 (祭官)과 매귀패들은 벅수골로 향하여 방촌 고개 입구 일명 마장등(馬場嶝)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석장승과 여자 석장승에게 제사(祭祀)를 드려 한해 방촌마을의 무사안녕(無事安寧)을 기원(祈願)한다. 이어서 매귀패들은 화주(化主) 집에 들러 문굿, 마당굿, 샘굿, 성주굿, 장독굿, 조왕굿(정재굿 부엌) 등을 한다. 이중에 조왕굿(정재굿) 과정을 기술해보면 그댁의 문 굿을 시작하면서 상쇠가 '주인주인 문 열어 지신밟기 해 줌세~, 하고 집안 내로 들어와 마당 한두 바퀴 돌고 샘에서 샘굿을 하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그 댁의 액땜을 한다. 상쇠 '매귀여~ 매귀패 어이~~, 상쇠 '금년 이 댁은 운수대통 만사형통 하고,~ 매귀패는 그러재~~, 상쇠 '농사도 대풍년 이루고~ 매귀패 그러재,~~ 상쇠 '천년만년 대대손손 이어주고 '매귀패 아! 그러재,~~ 상쇠 '명(命)과 복(福)은 쳐 들이고 잡귀(雜鬼) 잡신(雜神)은 쳐내자, 온갖 잡귀 (雜鬼) 쳐내자, 군것 잡것 쳐내자.~~하고 신나게 한판 놀고 퇴장한다.

이어서 마당놀이를 하고 음식을 내 놓으면 술을 한잔씩 하고 다음 집으로 이동하여 똑 같은 형태의 마당 밟기 행사를 한다. 방촌마을의 보름날 행사는 과거 2000년 前까지는 2일간(陰 1월 15~16일) 150호 전 가구를 직접 방문하여 마당 밟기를 하면서 집주인은 쌀 한 종지와 살림살이 형편에 따라서 일만원~일십만원을 대동계에 내줘 마을 발전기금으로 사용한다. 또한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 매귀패 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여 수많은 동네 사람들이 참관하였던 것이 생생하다. 최근에는 보름날 당일 하루 마당 밞기를 하면서 집주인의 초청에 의해서 주로 행(行)해지고 있어 이는 가호(家戶,110호)가 많이 줄고 시대변화에 따라 간소화 되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4. 천관산(天冠山)에 해가 걸치기 전인 오후 3~4시경에 회관이 위치한 등전마을 입구 논에 매귀패들이 들어오고 상쇠의 리드로 매귀패들의 한판 놀이 후 “별신제(別神祭)” 제사 (祭祀)를 모신다. 제사(祭祀)는 집례(執禮)의 유교식(儒敎式) 진행 절차(節次)에 따라 초헌례 (初獻禮), 공축(工祝), 아헌례 (亞獻禮), 종헌례(終獻禮)로 진행된다.

음복례(飮福禮) 때 참관 마을사람들에게 약떡을 나누어 주었는데 어릴적에 어르신들은 “떡을 쪼그마케 주면서 적게 먹어야만이 홍역 예방의 약이 된다.”고 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이는 많은 참관인들 모두 나누어 먹어야 하고 복(福)을 함께 나누자 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이어서 제관과 매귀패들은 허수아비 망태에 제물을 넉넉히 담아 횃불을 들고 산저마을 앞 허수아비골로 향하여 허수아비를 소나무 밑 개천에 놓아두고 주잔을 드린 다음 안녕을 구하고 돌아온다. 액(厄)을 버리면 별신제(別神祭) 제사(祭祀)는 끝난다. 허수아비골 앞 개천 물은 방촌마을 밖의 송촌리 평촌, 대평 마을 앞을 경유하여 득량만(得粮灣) 바다로 유입된다. 과거 1991년 방촌마을 앞 농지정리 전에는 여름철 7~8월 개천에는 득량만의 은어가 방촌리 범산(虎山)마을 앞까지 올라와 때죽나무 열매를 풀어 은어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었던 추억도 있다.

5. 매귀패들은 마을에 돌아와서 다시 집집마다 마당 밟기 행사를 계속하고 마지막으로 마당밟기 하는 집에서는 시간을 오래 동안 두고 행사를 한다.

1980년 이전에는 마을 아낙들은 모두 한복을 차려 입고 보름달 아래서 원형(圓形)을 그려 돌면서 ‘강강술래’와 ‘진도아리랑’ 창(唱)을 하곤했다. 첫날 대보름 행사 파장에는 “닭 떡국”이 최고의 별미였다. 이렇게 방촌사람들은 보름날에 다함께 행사를 갖고 다음날도 마당밟기 행사를 한다. 그 다음엔 陰 2월 1일 매귀 행사를 통해 무사안녕(無事安寧)을 기원하고 농사(農事)에 전념하였다. 농촌사회의 고령화와 세속의 변화로 최근부터 제물은 부녀회에서 정성들여 준비하고 마을회관 앞에서 별신제 행사를 오후 2시경에 모신다.

6. 2000년 이전 정월 보름날 별신제 행사 준비를 하였던 주요 대동계원과 매귀패 인명을 살펴본다.
 1) 홀기(笏記), 축문(祝文) 작성과 허수아비 제작 재능 보유
 - 紡谷 위문환(文煥 1917~작고, 호산)
 - 玉泉 위욱량(彧良 1921~1994, 내동)
 - 春史 위용철(容喆 1922~2008, 계춘동)
 - 蓮汀 위성환(星煥 1929년생, 내동)
 - 東谷 위봉환(俸煥 1930~2002, 새터)
 - 友松 위성량(成良 1931~2015, 호산)
2) 꼬갈모자 만들기 재능 보유
 - 위명환(明煥 1925~1982, 탑동)
 - 문복현(文福鉉 1929~2000, 새터)
 - 南隱 위재열(在烈 1933~2011, 탑동)
3) 상쇠(부쇠ㆍ종쇠)
 - 위계형(啓馨 1922~2014, 탑동)
 - 위은환(銀煥 1922~1981, 호동)
 - 南隱 위재열(在烈 1933∼2011, 탑동)

 - 松齊 위대환(大煥 1934~2016, 내동) 
 - 南亭 위연량(淵良 1940~1988, 동산밑)
 - 임창모(任昌模 1934년생 인척, 동산밑) : 인천광역시 거주
 - 위종환(鍾煥 1935년생, 산저)
 - 默田 위노환(魯煥 1944년생, 호동)
☞ 관산읍 당동마을 태생으로 장평면 우산리에서 거주하였던 백남인(白南寅 수원人 1918~작고, 위신량의 손위 처남)씨는 장흥군에서 꽹과리 상쇠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1970~1980년 간 방촌리 대동계(大同契) 초청으로 보름날 행사에 매귀패 상쇠로 참여하였다.
4) 징
 - 勤圃 위동량(東良 1918~1988, 내동)
 - 友松 위성량(成良 1931~2015, 호산)
 - 稼菴 위종환(鍾煥 1932~2003, 등전)
 - 石岩 위수환(壽煥 1934년생, 산저)
5) 장구
 - 廣庵 위사량(士良 1924~1988, 호동)
 - 淸齋 위종량(鍾良 1928~2003, 내동)
 - 南耕 위염량(炎良  1938~2003, 산저)
 - 翠山 위수환(守煥 1944년생, 호동) - 위성종(聖鍾 1945년생) 경기도 시흥시 거주
 - 위숙환(淑煥 1951년생) 서울시 은평구 거주
6) 북
 - 月樵 위복량(福良 1915~1989, 새터)
 - 위신량(信良 1920~1985, 동산밑)
 - 誠軒 위정환(正煥 1924년생, 동산밑)
7) 포수
- 위권량(權良1936~1997, 산저)

8) 조리중
 - 위장환(璋煥 1920~1984년, 내동)
 - 春農 위팔만(八萬 1933년생, 번덕지)
 - 위성선(聖善 1951~2002년 내동)
9) 영기(令旗)
 - 위외환(外煥 1940~1995, 산저) 
 - 溪月 위계환(桂煥 1942~2019, 계춘동)

 7. 맺음말
 방촌마을 출신이라면 20代 청년시절 정월(正月) 보름날 마당밟기 매귀 북꾼을 하면서 매생이탕과 닭 떡국 등 술과 음식을 먹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때에는 대부분의 각 마을마다 매귀와 동제(洞祭)가 있었으나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이농 현상으로 인해서 기능이 전수 되지 않고 농촌 거주민의 고령화(高齡化)로 인해 자연적으로 소멸되었다.
방촌마을의 별신제(別神祭)와 매귀는 대동계(大同契)의 주관과 마을주민들의 보존 의지가 강하여 존속 유지되고 있다. 특히 방촌리 매귀는 장흥군을 대표하여 전남민속예술축제에 1994~1995년, 2012~2019년 간 총 10회 출전해오면서 2018년 진도군 개최 대회에서 우수상과 2019년 영광군 개최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번 입상(入賞)하여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문화(傳統文化)가 계승(繼承)되려면 퇴직한 출향인들의 귀향과 젊은 청장년들이 마을에 정착 거주하면서 현재 별신제(別神祭) 제사 절차에 정통한 장흥향교 전교 위인환(麟煥), 리장 위공환(公煥)과 매귀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매귀보존회의 꽹과리 상쇠 위헌량(憲良), 장구 위수환(守煥) 등 주민들로부터 체계적인 전수(傳授)는 전통문화 명맥(命脈)의 중요 과제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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