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막내, 단어만 들어도 어리광과 정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처지는 달랐습니다. 가난하거나 먹고 입을 것이 부족한 집의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빠가 가정 폭력을 일삼는다거나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는 집도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유별나서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한다거나 거칠고 모난 양육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교양미 넘치는 의사였고, 아빠는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교수님이었습니다.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가장 큰 복을 받고 태어난 셈이었죠. 아이는 마치 부모의 인품을 그대로 물려받기라도 하듯, 정말 탈없이, 그리고 조용히 자랐습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요.
  아이의 특징은 책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아이의 어휘력과 사고력, 그리고 표현 능력과 창의력의 차이를 아는 엄마들은 너도나도 자녀를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려고 애를 쓰기 마련인데 이 집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니 이웃의 부러움을 사기까지 했지요. 학교에 입학하지마자 책으로 유명해졌고, 1학년 때는 이미 독서왕이 될 정도였습니다. 어린 천재 소년처럼 일찌감치 책과 독서에 눈을 뜨고 학문을 즐기는 아이.. 그 아이에게 거는 기대는 집보다 학교에서 더 남달랐습니다. 뭐가 되도 크게 될 아이,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고 마치 신동을 대하듯 그 아이에 대한 대접이 은근히 특별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발견되었습니다. 책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이상 행동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집에서도 책, 학교에 가서도 책, 심지어 친구 집에 가거나 운동장에 놀러나갈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 이었어요 한창 에너지가 넘치는 나이에 더구나 사내아이가, 또래 친구들은 운동장이 떠나가라 공을 차며 뛰어 노는데 이 아이는 그린 듯이 독서 삼매경에만 빠져 있으니 조금은 남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처음엔 선생님까지 모두들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도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나중에는 아예 수업종이 치는 것도 모르고 책에 빠져있고 아무리 주의를 주고 경고를 주어도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이끌려 도서관에만 들어가, 학교에서 어떤 일정이 진행되던 그 안에서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무 것도 안하고 심지어는 밥먹는 것도 잊어 버리고 책장 앞에만 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생활이 엉망으로 꼬여가게 된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었고, 부모의 한 숨과 걱정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는 책으로 피신했던 겁니다. 부모님들이 두 분 다 너무나 바쁘셨거든요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밤늦게까지 부모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아이, 엄마가 고프다 못해 허기 진 영혼으로 헤매다가 엄마대신 찾아내 피한 곳이 바로 책이었던 겁니다. 어린 시절 아이에게 엄마는 절대 필수의 안전기지라는 걸,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도 돌아오면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주는, 반드시 그런 존재여야 한다는 걸 여러분은 알고 계시나요? 그런데 엄마가 그 안전기지가 되어주지 못하니 너무나 외로웠던 아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에게 자기라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눈에 띄지 않을 곳을 찾아 웅크려 들어갔던 겁니다. 그리고 그게 책이었던 거지요...아이들도 자기가 어디에 가 있어야 하는지 자기의 처지를 다 압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지금 어디에 가 있나요? 다 자라 출가한 자식이라도 그 마음 안에는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지금 성서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라’ 잊지 마십시오.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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