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과  글文字의 운용은 무궁무진하게 전개 된다. 고금을 막론하고 말을 무기로 하는 유세술遊說術로 일가를 이룬 이들의 이야기가 심심챦게 회자되기도 한다. 지금같이 미스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서는 영향력 있는 개인과 집단을 상대로 하여 현란한 유세술로 상황을 반전 시킨 일화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혹은 말이 아닌 문자로 시대를 풍미한 격문檄文이나 문장文章의 내용들이 역사의 행간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 말과 글의 성찬은 오늘의 현안에서도 어김이 없이 운용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말과 글의 전달과 접하며 살고 있다. 그 말과 글들이 그저 바람 같은 것으로 흘려 지나는 것이 아니라 귀를 현혹하고 자극적인 형용이 되어서 또 다른 소문들을 만들어 낸다. 소문은 거침이 없다. 시초에는 내밀하게 전개 되는 것들이 어느 사이에서 사실처럼 호도 되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기도 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말이 말을 낳는다”라는 속담이 원 없이 실감이  되는 시대이다. 문제는  정제 되지 않은 그 말과 글의 홍수들이 각자의 생각 속에  비집고 들어 와서 판단을 흐리게 하고 집단성 있는 여론이 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근간에는 가짜뉴스가 SNS를 통하여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분별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소문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도에 그친다면 우려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시간과 공간과 삶과 생각들을 혼란 하게 하는 말과 글의 난무, 가짜뉴스의 확산은 개개인의 정상적인 사고력을 무디게 하고 건강한 사회적 여론을 흔들고 있어서 우려 스러운 것이다.

조국 전법무부장관은 정말로 조목조목 사회적 공의를 위반하고도 정의로운 가면을 썻던 원흉이었는가. 윤석렬 검찰총장은 좌고우면 없이 법치의 공정함을 실현 하려는 외로운 투사인가. 우리가 열광했던 논객이며 작가인 유시민은 숨겨진 진실을 끌어 올리는 사도인가. 한 때는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진중권은 사안을 호도 하는 변절자인가.

이들의 행위와 치열한 유세의 행간을 직시하여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 하기는 쉽지 않다.
조국 전장관의 당당한 언행과 검찰이 직시하여 수사의 형식으로 수면에 들어난  수없이 많은 혐의를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 정의하기에는 무엇인가 미진하다. 윤석렬 총장의 거침없는 수사의 끝이 어떻게 결론 날지를 그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무엇인가 성이 차지 않는 것은 필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유시민과 진중권의 그 논리적이고 유려한 발언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쳐 들으면 도무지 반론이 생각 나지를 않는다. 양쪽의 유세를 비고 하면 그 어느쪽이 진실인지를 가늠 하기가 어렵다. 비단 이들의 말과 글 분만이 아니다.

일상을 보통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민주 시민들이 듣고 판단하고 소화해야 할 말과 글의 사안들이 너무나 많다. 하여 세상이 요지경 속인 것 같고 그 세상을 외면 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사고력이 피곤하고 힘든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정의와 진실을 추구해 왔다.
집단과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시대적 사회적 풍조가 만연할때도 그 흐름의 어느곳엔가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공의로움이 살아 있었다. 그래서 보통의 민주 시민들은 역사의 행간에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 혁명”의 기치를 들었고 그 혁명의 소산은 늘 유호 했다. 우리가 주역이어서 자랑스럽고 당당했다.

작금의 정치, 사회,문화, 경제의 사회적 역사 속에서 개인, 집단, 정당이 발호하는 말과 글의 “옳음”, “그름”을 식별하여 혹은 반론하고 혹은 저항하고 비판하여 우리의 시대를 정의와 진실의 역사로 바꾸는 것은 곧 우리들 모두의 몫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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