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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부호남향우회의 거목, 우원 이득배 기적비(友垣 李得培 紀績碑)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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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0  1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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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우원 이득배 기적비(友垣李得培紀績碑)는 관산읍 옥당리 관산읍사무소 청사 민원실 앞에 위치한다.

<비문> 우원 이득배는 인천이씨 공도공 文和 후(后) 병문(炳文)의 차남으로 1934년(甲戌) 10월 7일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났다. 약관 17세에 부모의 곁을 떠나 항도 부산에 정착 강인한 정신과 근검절약을 신조로 악전고투(惡戰苦鬪)로 배우면서 각고 끝에 興友産業을 설립하여 덕행과 봉사로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면서 재부호남향우회장을 3대에 걸쳐 역임하고 남다른 애향심을 발휘하여 관산국민학교를 비롯 관산읍사무소, 관산고등학교, 장흥군청, 장흥향교, 보림사 등에 시설 확충 십기 기증 기금 헌납으로 지역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우원장학회(友垣 獎學會)를 창립하여 본향의 후진육성에 가진 열성을 다하였고 위선(爲先)이 지극하여 一門中의 중흥을 이룩하였으니 어찌 장하지 않으리오. 1979년 문교부장관 賞과 내무부치안본부장 賞, 1983년에는 장흥군민의 賞 등을 수상한바 있다. 사업기반을 성실히 다지고 겸손과 신의로 교유를 넓혀 더욱 큰일을 하려다 52세의 활동기에 유명을 달리 하였으니 애석한 마음 금할 길 없어 읍민이 제의하여 友垣의 숭고한 애향심과 위대한 업적을 영원히 기리고자 이비를 세우노라.
西紀 1986년 9월 관산읍민 竪

1986년 9월 기적비 근수(謹竪)는 당시 관산읍 번영회장 덕운(德雲) 위황량(1927년생)의 주도로 추진되어 관산읍민 이름으로 세웠다.

■ 우원(友垣) 이득배(인천人 1934~1985)는 청송(靑松) 이병문(1908~1968)과 영광김씨 사이에 2남3여 중, 차남으로  1934년 10월 7일 관산읍 방촌리 새터마을에서 태어났다. 10세 때인 1943년 관산국민학교에 입학하여 15세가 된 1949년 제24회로 졸업하였다.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다. 우원은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어 공부를 계속하는 길은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수밖에 없어 장흥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해 가을 고향을 떠나 도착한 곳은 일가붙이 하나 없는 항도 부산(釜山)이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 밤에는 파김치가 된 몸으로 학교를 나가는 인고의 생활을 하면서 중학교 졸업을 하였다.

   
 

이후 초창기 청년시절에는 배에서 사용되는 물품을 취급한 선구(船具)업의 신흥상사를 운영하였다. 이를 초석으로 삼아 1976년 9월 29일 운송 보관업과 토공 사업, 수중 공사업, 비계공사업 등을 목적으로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에 흥우산업(興友産業)을 설립하였다. 이후 1982년 3월 20일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96으로 이전하였다.

우원은 장흥군 관산읍에 대한 애향과 지원은 남달랐다. 모교인 관산국민학교에 1978~1979년 충무공 이순신 동상과 현재의 교문을 세웠다.

   
 

이시기에 일금 25,000,000원으로 우원장학회를 창립하였다. 출연금을 관산농협(조합장 김현수)에 신탁하고 매년 우원장학회 이사회에서(김현수, 여두인 등) 주관하여 관산중ㆍ고등학교 학생 중, 성적이 우수한 모범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장학금을 수여하였다. 또한 학비를 지원하여 부산대학교에 진학케 하는 등 후진 육성에 진력(盡力)하였다. 그러나 장흥의 우원장학회는 우원이 타계한 후 기금관리 부실로 운영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밖에 관산중ㆍ고등학교, 관산읍사무소, 장흥군청 등 여러 기관에 헌성과 기증을 통해 장흥발전에 기여하였다.

   
 

우원은 인천이씨 후손이다. 1982년 14세 공도공(李文和), 24세 청강공(李 昇), 27세 만수재공(李敏琦), 25세 강동현감공(李信立) 등 4위가  배향된 장흥군 부산면 유량리에 위치한 장흥파의 성지(聖地) 신실(神室) 금계사(金溪祠) 중건에 거금 희사 등 크게 기여한 공로로 문중에서는 사우 앞에 기적비를 세웠다.

1981년 관산읍 지정리 지북마을에 영사재(永思齋)를 건립하는 등 숭조돈목(崇祖敦睦)과 문중(門中) 중흥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우원이 타계한 후 건물은 관리되지 않아 폐허되어 건립 38년이 지난  2019년 3월 철거하여 아쉬움만 남는다.

   
 

영사재 외문 존저문(存著門) 편액은 우원과 절친한 사이이면서 부산직할시부시장, 전라남도지사를 지낸 중양(中洋) 장형태(1929~2013)가 썼다.

우원은 1964년 2월에 창립한 재부호남향우회에서 초창기부터 중추적으로 참여하였다. 1975년 향우회관 건립시 실무 임원 간사장을 맡아 湖友會館 준공 등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1981~1984년간 18, 19, 21대 향우회장을 맡아 향우들의 단합과 고향사랑을 몸소 앞장서 실천하였다. 또한 부산지역 정계, 경제인 등과 친분을 쌓고 교류하면서 지역감정 해소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원의 이러한 사실은 부산지역 향우사회에 큰 감동과 귀감으로 전해지고 있다. 1985년 12월 22일 애석하게 향년 52세로 타계하여 경남 진해시 천자봉 공원묘원에 안장(安葬)했다. 혈육으로는 형(兄) 이창배(1928~1992)가 방촌리 새터에서 거주하다가 6.25사변 후 관산읍 지정리(지북)로 이사하여 현재 부인 청주김씨(1930년생)가 거주하고 있다.

우원(友垣) 타계 후 차남 이철승이 대표이사직을 이어받아 흥우산업(株)을 이끌어 왔다. 1997년 12월 12일 본점 건물을 신축 완공하였다. 2000년 은탑산업훈장과 2003년 대통령표창을 수상하는 등 토목, 준설, 수중 철근 콘크리트 공사업 분야에서 전국 선두를 달리고 있는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건설업체로 성장하였다. 지역 시공 능력 순위 수위권의 중견 종합 건설사로 국가 기간산업과 민간 공사업을 수행하면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9년 9월 7일에 베트남 법인 HEUNGWOO VINA를, 2010년 1월 11일에 베트남 법인 YONGHA VINA를 설립하였다. 현재 흥우산업(株)과 흥우건설(株)로 경영되고 있다.

특히 2001년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사재(私財) 600,000,000원을 출연하여 <재단법인 우원장학회>를 설립하고 부산지역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친의 장학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이철승 대표이사는 우원장학문화재단 이사장, 대한바둑협회 부산광역시 바둑협회 회장,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대한건설협회 부산광역시회 회장 역임 등 지역과 사회발전에 앞장서 기여하고 있다.

   
 

한편 2002년 재단법인 우원장학회에서는 우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합니다> 란 제목의 추모집을 출판하였다.

가족으로는 여수시(거문도) 태생 밀양 박순례 여사(1933~2016) 사이에서 2남1여를 두었다.

자(子)는 철호(1955~1988)와 철승(1958년생)이다. 서(婿)는 황희철(前 법무부차관)이다.
손(孫) 승준은 철호 출(出)이며, 준용은 철승 출(出)이다.
형(兄)은 송정(松亭) 이창배(1928~1992)이며, 조카(姪)는 종원(1954년생), 종호(1955년생)이다.

자문 : 인천이씨 장흥종회 고문 춘사(春史) 이영숙(1932년생, 용산면 접정 새터 거주)丈, 우원장학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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