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흥 문학, 장흥 문인? - 불편할 수 있지만, 고향 일이니 이야기 해본다. 과연 '문학의 본향(本鄕)'이라서 국립문학관을 장흥에 유치 할만 했는가?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말고도 이른바 150여명 문인이 더 있어 '문학인 고장'을 내세울 수 있었는가? 이제는 '이승우'를 김승우로 혼동하지 않아 다행이고, '한강'은 문림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딸이라서 자랑스러운가? '정철, 관동별곡'은 '백광홍, 관서별곡'의 아류작에 불과할 수 있고, '존재 위백규'를 은근히 모방했을지 모를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란 말인가?

장흥에서는 '장흥 문인들'의 작가 스토리와 작품 현장을 엮어내는 작업이 왜 그렇게 지지부진한가? 돌이켜 장흥사람들은 진정 장흥문학특구 지정을 원했던 것일까? 2012년경 장흥문학특구 행사에 왔던 '평론가 김주연'의 경고성 질책을 뒤늦게 알았다. "문학특구에 관한 지나친 집착은 버리라"고 말하면서, '문학특구 밥그릇‘을 의심하며 반문하고 있었다.(2012,한국문학특구포럼 발제문, '문학특구가 살아나려면' ) 작금에는 신춘문예 등단형식에도 의문을 품는 세태이거늘, 어떤 보기 힘든 문학지 이름을 등에 업은 1회성 등단과 행사장이라면 무릇 1500여명 숫자인들 무슨 대수랴? 등단 경력이 없어도, 작품 활동에 꾸준히 투신(投身)할 때면 '장흥 문인(文人)' 자격을 얻는 것 아닐까?

 2. <채식주의자, 한강, 2007> - 소설가 '한강'이 2016년 맨부커 문학상을 수상할 때, 장흥에서는 '문림 혈통을 이은 장흥의 딸'이라서 그저 자랑스러웠을까? 누구의 자식 손자 잘됐다고 축하 플래카드를 내거는 식이었을 뿐, 정작 <소설 채식주의자>와  '한강'의 문학세계가 진지하게 논의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혹 '한우(韓牛) 세상 장흥 육지(肉地)'라서 '채식주의자'는 그 자체로 불순했을까? <소설 채식주의자>는 "사회 또는 남성의 습속적 기준과 잣대에 어긋나는 또는 불화하는 여성이 겪는, 인간적 고통 이야기"로 줄여 볼 수 있겠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쉽게 치유될 수 없는, 구조적 억압에 따른 고통을 겪는 인물을 '채식주의자'로 상징화한 것. 가부장적 체제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정상적과 비정상적, 동물적과 식물적' 갈등상황의 연결고리적 대립을 묘사했다. 아마 장흥에서도 장흥적 통념과 습속적 잣대에 이의를 제기하면 '채식주의자 영혜'처럼, 또한 '그 영혜처럼 역시 깨지는 언니 인혜'처럼 그 영육(靈肉)에 고난을 당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채식주의자'처럼 읊조리노니, 이른바 장흥문학의 정체성 문제이다. 언제부턴가 '문림 장흥 최고주의, 장흥 작가 나열주의' 자부심이 팽배해지며 뭔가 특별 취급을 원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에 의문이 생긴다.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이승우'란 이름들과 '가사 작품' 숫자를 내세우면 국립문학관이 유치되었을 것이며, 문학특구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가? 장흥 아닌, 다른 지역에도 그 나름 자랑할 시인 소설가 선비들은 꽤 있는 것 아닌가? 지정적 불리함에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장흥 소설가 나열주의' 깃발만으로는 애초 그 어떤 현실성이 없는 것이고, 나아가 그런 국립문학관이 못 왔다한들 또 어떠랴? (기실 '국립'문학관 발상자체도 우스운 것, '문학'에 무슨 '국립'이고 '본향'일 것인가? ) 무릇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가 함께 읽고 쓰고 느끼고 즐겁게 소통하면 그뿐 아닌가? 내 꿈으로는, 토요시장 韓牛상가에서 멀지 않은 예양강둑에 '채식주의자 카페'라도 있어 '한강'이든, 어떤 장흥 문인이든, 누구 작품이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강'은 그 혈통이 아니더라도 오늘의 작품성도 물론이려니와 장차에는 더 평가받을 작가라 감히 여겨본다.

3. '이청준 문학관' - 이청준 문학관 자리로 옛 장흥교도소 활용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는데, 얼마 전 어떤 이가 목소리 높여 반문했다. "이청준 문학관이 왜 따로 필요한가? 개인 문학관이라면 그 유족들이 세워야하며, 공공예산의 별도 투입은 안 된다. 장흥출신 작가들마다 개별 문학관을 모조리 세워주어야 하는가?"고 주장했다.
작가 이청준에게 쌓여진 그간의 평가를 일절 무시한 채, 마치 ’인사동에서 거래되는 그림이면 다 같은 그림이다‘고 싸잡아 말하는듯 "어떤 문인에게도 대접은 같아야 하니, 특정인에의 특혜는 안 된다"는 식의 우격다짐으로 들렸다. 이청준과 그 작품에 대한 호오(好惡) 체험은 어차피 다를 터이니, 그 인식 수준을 문제 삼기보다는 그 평가 관점에 관련하여 다음 사정을 덧붙인다.

첫째, 다시 강조하고 싶다. 그는 사회구조적 차원의 '지배와 복종, 가해자와 피해자, 얼굴과 가면‘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문학적으로 묘파함에 있어, '지역과 고향'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나는 그 행간에서 늘 남쪽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는 마침내 '이타카'로 귀향한 '오디세이'처럼 고향 장흥 땅에 돌아와 묻혔다. 우리는 어떤 특정인에게 경제적 시혜를 베풀려는 것이 아니라, '고향 땅과 고향사람을 대변하고 대속(代贖)했던 작품'에 대한 예우와 보답으로서 그 책무를 다해야할 입장 아닐까? 그도 '그 시절 가난하고 촌스런 채식주의자'였다.

둘째, 앞서의 '평론가 김주연'의 지적이다. "장흥의 여러 걸출한 소설가 중에서 우선 이청준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여야한다./작가들을 동시에 나열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불필요하다./이청준의 많은 작품은 고향을 무대로 삼고 있다,/어떤 의미에서 나라에서 몇 안 되는 세계적 작가이다. /잡다한 나열주의는 작가를 문학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내용 없는 작은 기념품으로 전락시킨다."  첨언하면, 우리들이 그 교도소 문학관에 장흥작가들을 함께 집어넣을 때 그들은 결국 똑같은 옷을 입은 수인(囚人) 신세로 갇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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