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내 아이들이 우르르 어울려 가까운 냇가에 멱을 감으러 가던 날, 그 개구쟁이 무리 속에 형을 따라나선 동생이 끼어 있었습니다. 어리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냥 밖에 남아 형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서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지키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한 참을 그러고 있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었나 봅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우성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물가에 우르르 몰려서서  다급한 소리를 질러대는 형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놀라 소리 지르는 곳을 향해 눈을 돌려보니 아뿔싸! 이게 왠 일입니까. 거기엔 다름 아닌 자기 형의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를 반복하며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장마에 물이 불어 물살이 거세지자 그만 급류에 휩쓸렸던 아이들, 그 중 몇몇은 기를 쓰고 헤엄쳐 나왔지만 자기의 형만은 나오지 못하고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었죠. 순간, 동생의 눈은 뒤집어 지고 말았습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튀어 일어나 형이 떠내려가는 방향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려 내려가는 어린 동생, 그 울부짖는 절규가 하늘에 닿았는지, 허위적이며 떠내려 오던 형이 먼저 달려 내려간 동생 앞의, 강의 중간 기슭 쯤에 강물을 향해 뻗쳐있던 돌과 나뭇가지 더미에 걸려 잠시 멈췄습니다. 이때를 놓칠 새라 동생은 미친 듯이 형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떠내려 오느라  기진맥진한 형은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동생을 향해 자신의 손을 뻗었습니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갈림이 달린, 절대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물 속에 얼굴이 반쯤 잠긴 채, 어린 동생의 손이라도 붙잡아 보겠다고 사력을 다해 손을 뻗은 형의 모습이  상상이 되시나요. 그 순간, 형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눈앞에 펼쳐진 순간, 정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형’, 나 대신 부모의 사랑을 모두 독차지 하고 있던 형, 나보다 뭐든지 잘 하는 형,  ‘형은 잘하는데 넌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니? 네 형의 절반만 해봐라..’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듣게 만든 저 ‘형’, 나를 천덕꾸러기로 만든 형, 저 형만 없으면..하는 생각이 그 짧은 순간, 동생의 뇌리를 치고 지나간 것입니다. 형만 없으면 부모님의 사랑은 모두 내 차지가 된다..그 기회가 눈앞에 왔다. 어떻게 해야할까?  짧지만 무서운  그 갈등의 순간에 동생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형의 손을 놓았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다시 웅성이는 소리에 눈을 뜬 동생의 눈에 들어온 건, 누군가에 의해 어떻게 구해졌는지 육지로 올라온 형이 비틀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뒷머리가 쭈삣 서버린 동생, 가뜩이나 구박 덩어리였던 자신의 처지가 이제 어떻게 더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질지 눈 앞이 아찔해져 그만 죽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을 뿐 이었죠. 그 때 눈 앞에 다가온 형의 눈엔 눈물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더 랍니다.‘너 땜에 내가 살아났다. 네가 날 살렸어..’라고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아무튼 형과 가족으로부터는 생명의 은인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영웅이 되다시피 한 그 사건이 정작 동생 본인의 양심에는 무엇으로 남았겠습니까?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형제간의 암투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어린 그들이 서로 차지하려 다투는 건 단순히 부모의 관심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거머쥐어야 할 삶의 동아줄 같은 것입니다. 차지하지 않으면 버려질 것 같은 목숨을 건 삶의 전쟁, 침몰해 가는 배에서 구명보트에 올라타기 같은 것 말입니다. 인간은 이토록 필수적으로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이고 그 사랑을 어린 시절에 받지 못한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욱 더 그 사랑에 집착하게 됩니다.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이 실화를 깊이 염두에 두셔야 할 겁니다. 인간은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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