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游京城(시유경성)/금원
봄비와 봄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아
흐르는 물소리에 봄날이 완연 한데
눈 들어 바라다보면 닿는 곳이 고향이라.
春雨春風未暫閑    居然春事水聲間
춘우춘풍미잠한    거연춘사수성간
擧目何論非我土    萍遊到處是鄕關
거목하론비아토    평유도처시향관

사람이 태어나서 고향에서만 생활할 수는 없다. 생활을 위해서 다른 연고를 찾아서 다른 지역이 사는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다. 지방에서만 생활을 하다가 서울 생활은 눈을 번쩍 트이게 했을 것이다. 생활 패턴이 뒤바뀌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시인을 이제 서울 생활에 완연히 적응하리라는 생각을 피력해보는 시상이다. 고개 들어 바라보면 어찌 고향이 아니리오만은, 떠도는 부평초가 닿는 곳이 곧 내 고향이어라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떠도는 부평초가 닿는 곳이 곧 내 고향이어라(始游京城)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금원(錦園:1817∼?)으로 조선 헌종 때의 여류시인이다.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여, 같은 시우이며 고향 친구인 박죽서의 <죽서집> 발문에서 “후생에는 함께 남자로 태어나 서로 창화했으면 좋겠다”고 하였을 정도였다. 그런 꿈이 한양에 도달하면서 느꼈음을 알게 된다.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비와 봄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있고 / 거연하게 물 흐르는 소리 봄날이 난간에 완연하네 // 눈 들어 바라보면 어찌 고향이 아니리오만은 / 떠도는 부평초가 닿는 곳이 곧 내 고향이어라]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이제야 서울에서 놀다]로 번역된다. 한양은 지방에서는 멀고 먼 동경의 대상이었다. 시인도 동경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한양에서 살게 되었으니 부푼 꿈은 만감이 교차되는 또 다른 시심을 발동하지 아니할 수 없었겠다. 그래서 이제야 경성인 한양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심회를 쏟아내고 말았을 것이다.
시인은 한양 생활을 동경하던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쉬지 않은 길을 재촉하면서 달려왔음을 직감하게 된다. 봄비와 봄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아, 시냇가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봄날이 난간에도 완연하다고 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간에 들렸으니 꾀 많은 비가 내려 시인의 귓전까지 들렸음을 암시해 보인다.
화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분명 이곳은 고향이 아닌 타향임이 틀림없음을 확인해 보인다. 눈을 들어 가만히 바라보면 어찌 고향 아닌 곳에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떠도는 부평초 닿는 곳이 모두가 고향이라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발길 닿는 곳이 고향이라는 낭만적인 생각도 있어 보이지만 한양 생활에 충실하여 열심히 읽고 배우겠다는 강한 의지가 깊숙하게 숨어 있음도 알게 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춘우춘풍 쉬지 않고 물소리만 완연하네, 바라보니 고향인데 닿은 곳이 고향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春雨: 봄비. 봄바람. 春風: 봄바람. 未暫閑: 잠시도 쉬지 않다. 居然: 완연하다. 春事: 봄일로 봄날을 뜻함. 水聲間: 물이 사이에서 흐르다. // 擧目: 눈을 들어서. 何論: 이찌 논하랴. 非我土: 나의 땅(고향)이 이난가를. 萍遊: 떠도는 부평초. 到處: 닿은 곳. 是鄕關: 고향이다. ‘是’는 ‘~이다’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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