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강간, 강도, 유괴, 사기, 명예훼손, 과실치사..뭐 이런 것들만 죄인줄 알았는데 세상엔 죄의 종류가 참 많기도 합니다. 첫째로 태어난 죄, 둘째로 태어난 죄, 어중간하니 가운데 끼어 태어난 죄, 그 뿐입니까. 심지어‘닮은 죄’도 죄가 되어 상처를 만든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도 한참을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첫째로 태어난 죄.. 다만 맏이이기 때문에 지워지는 그 의무들은 어떠했습니까? 줄줄이 딸린 동생들에 대한 온갖 책임, 딸은 딸대로 엄마 대신 부엌살림을 도맡아야 했고, 거기에 집안까지 어려우면 학교는 꿈도 못꾸고 대신 공장에 가 돈을 벌어 동생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친구들처럼 나가 놀고 싶었지만 마치 멍에처럼  질끈 등에 메워준 동생을 업고 엄마를 대신해  식구들의 저녁밥을 지어야 했던 시절은 없었나요? 당하는 나는 억울했지만, 식구들은 모두 당연히 여기고 수고 많았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던 시절, 그렇게 차려 낸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은 식구들은 다 배가 불러 뒤로 나앉았을 때, 그 밥상을 치우는 설거지는 으레 또 나의 몫이었던 그런 시절 말입니다.
 혹시..더 배우고 싶었는데 오빠나 남동생을 공부시키느라 상급학교에 보내달라는 말은 입 밖에도 낼 수 없었던, 그래서 공부에 한이 맺힌 아픈 과거는 없으신가요? 그나마 아들은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딸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런 아들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덜커덕, 소년가장의 멍에를 메어야 했죠..‘이제부터는 네가 아버지를 대신해 가정을 돌봐야 한다.’이 너무나 무서운 선언,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채 위로 받지도 못한 어린 소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너무나 가혹한 등짐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훈육해야 했던 맏이, 그러느라 자신의 욕구와 어린아이다움은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맏이, 나도 어린 애이면서 일찌감치 어른으로 살아가야 했던 맏이의 아픔, 그들에게 삶은 한 치도 한 눈을 팔 수 없는 전쟁터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맏이에게 무슨 미래를 꿈꾸고 키워나갈 여지가 있었을까요..무슨 자기계발이 있었겠으며 자기의 욕구를 찾아내고 정체성을 지켜나갈 기회가 있었겠습니까..말하는 것이 오히려 사치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시절이었죠. 서구사회에는 없는 장남만의 멍에같은 역할과 의무, 오죽하면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기’라는 말이 다 만들어졌을까요.
첫째아이로 태어난 여러분 삶의 운명같은 그 고단함에, 어쩐지 향 짙은 국화조차 슬픔으로 느껴지는 가을날, 새삼 머리를 숙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무던히도 힘들었던 인고의 세월덕택에 우리의 오늘이 있었고, 여러분의 말없는 희생 덕분에 이만큼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맏이 여러분,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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