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변하는, 단절의 시대에 행원 사우(杏園 祠宇)들 역시 외롭게 보인다. 사당사우(祠堂祠宇)는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마을 동쪽의 '광산김씨 행강사(杏崗祠)'와 마을 서쪽의 '장흥위씨 석천사(石川祠)'를 살펴본다.

이른바 '1기산, 2행원, 3평화'라는 순서를 말할 때, 그 ‘기산 시대’에 이어 등장한 '행원 시대‘의 배경인물들이겠다.  '행강(杏崗)'은 마을의 뒷산 언덕에서, '석천(石川)'은 사방山 거암(巨岩)에서 원출되는 물길에서 유래했다. '석천 팔경'도 있다. 주의할 사정으로, '장육재 문덕구'가 읊은 詩 "행원(杏園)"은 '유치 26경'에 속한 ‘유치 행원’이고,’장흥읍 행원'이 아니다. 장흥읍 杏園의 '金씨, 魏씨' 병존은 그 혼사에서 비롯되었다. 돌이켜, 1534년 문과급제자 김협(金浹)이 1555년 진사 위대용(魏大用)을 사위로 맞이하면서 그 인연이 시작된 것. <정묘지1747, 부동방>에 기록된 행원 거주 성씨로 '金씨, 魏씨'가 나란하다. 필자의 장흥초등 친구들 역시 ‘金氏, 魏氏’ 쪽이 엇비슷했다.

애초에 광산金씨(양간공 사온승공派)가 선주(先住)했던 마을로, 광산김씨 세장산은 마을 뒤에 있는 반면에, 행원리 위씨의 선대묘소는 장흥읍 ‘평화리 개손등’에 있다. ‘행원 강정등’에 있었던 魏氏 일부후손들은 ‘행원 송산’ 쪽에 묘역을 마련하였다한다. 임진 정유난을 겪으면서, 행원리의 광산金씨와 장흥魏씨 두 집안은 무반家로 돌아섰는데, 특히 행원파 魏씨무반들이 두드러졌다. 한편, 임진난 때 활약한 ‘백면비장군 위천우'는 1573년 생원, 1582년 문과급제로 ’화순 능주‘ 쪽이며, 부동방 행원 魏씨로 1741년 문과급제자 ‘위치량(1710~1773)’이 있다.

 1. 광산金씨 행강사(杏崗祠, 4位), 1797년 창건. (1807년 행강서원, 1868년 훼철, 1919년 중수, 2003년 신축)
- 주벽, 중봉 조헌(趙憲,1544~1592), 임진난 금산전투에서 순사하였으며, '김헌'의 스승이다.
- 김헌(金憲,1561~1592), 1591년 무과. 조부는 교리 '김협', 증조는 진사 '김려원',  金憲은 '반곡 정경달(1542~1602)'의 사위가 되었고, 그 金憲의 사위는 1621년 문과 장원 '사촌 선세휘'이다. 금산전투에 순사한 금산 순절사(칠백 의총)이고, 그 전사 후에 그가 타던 말이 고향으로 돌아온 데서 애마(愛馬)총' 전설을 남겼다. '행원리 애마총'은 1597년 남원성에서 순사한, '농재 문기방'의 '금자리 의마(義馬)총'과 구별된다. 존재 위백규 선생이 쓴 <의도(義徒, 節士)김공傳>이 있다.
- 김효신(金孝信,1574~1627), 1600년 무과. '김협'의 증손자, '김憲'의 조카, 1624년 '이괄 난' 공로(진무일등훈공신), 충청수사, 황해병마사 역임. 존재 위백규 선생이 쓴 <절도사金공孝信 행장>이 있다. 1816년에 배향.- 김유신(金有信,  1591 ~1660),1618년 무과,  '김憲'의 아들, 일명 金成命, 정묘호란 때 강화도 어가 호종, 병자호란 때 의병 창의. 병조참의 추증. 존재 위백규 선생이 쓴 <참의 金공成命 묘지명 병서>가 있다. 그 아들 '金오(塢)'도 무과 급제. 위 광산金씨 3위(位)에 대해 ‘존재 위백규(1727~1798)’ 선생은 <傳, 행장, 묘지명>을 남기면서 위 광산金氏 집안을 "전가충효(傳家忠孝)"라 칭했다.

 2. 장흥魏씨 석천사(石川祠, 11位), 1822년 창건(더 빨리 보는 의견도 있다,1868년 훼철,1888년 복설. 1933년 중창, 1984년 신실 복원)
- 주벽, 괴봉 위대용(魏大用,1530~1610), 1555년 진사, 호남모곡 도유사, 형조참의 제수. 
- 위대기(魏大器,1555~1607),1583년 무과, 홍면비장군, 李충무공 측근무장, 해남현감, 가리포첨사, 충청수사 제수.
- 위산보(1593~1656),1620년 무과, 병자호란 선전관, 1637년 심양 배종신(익위), 문화현령.
- 위정보(1596~1644), 1620년 무과, 남포현감 ('위대용'의 손자들 '위산보, 위정보' 묘소는 용산 포곡에 있다.)
- 위천회(1629~1689이후?), 취수헌, 1651년 무과, 삼수부사, 유배 고초, (묘소는 ‘행원리 강정등’에 있었다.)
- 위천상(1635~1683), 1655년 무과, 해남현감(‘취수헌 위천회'의 동생이다.)
<1843년에 추배된 申氏형제>
-신용호(申龍虎,1568~1598), 신용준(申龍俊,1573~1598), 평산申氏 兩龍장군.
고향 선배 '위대용, 위대기'를 따르며, ‘권율, 황진, 이순신’ 휘하에서 임진 정유난 참전, ‘명량해전’ 참가, 순천 예교(왜교성)전투 순사,
<1925년에 추배된 위씨 3위>,
- 위대경(1555~1623), 1575년 무과, 선전관, 임진 정유난 활약.
- 위순정(1572~1620), 1603년 고금도 무과, 임진 정유난 활약, 장기현감.
- 위수징(1688~1739), 위대용 5대손, 위천회 증손, 부호군 절충장군 제수, '이인좌 난' 토벌공적.
덧붙이면, 장흥魏氏 3대무반가로 고읍 방촌에 '위덕화, 위정철, 위동전'이 있고, 부동방 행원에는 '위천상, 위혁만, 위원징(1723년 무과)'이 있었다. '위천회‘의 동생 ’위천상'은 해남현감, '위혁만'은 보성군수, 낙안군수, 정의현감 등 35여년 외직을 역임했다. ‘위혁만’의 일부 후손이 제주에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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