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몇 번째 아이로 태어 나셨나요? 첫째? 아니면 둘째, 아니면 막내?아니면 어중간하게 중간에 끼어 계신가요? 몇째 아이로 태어났는지가 우리네 인생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을까 의아할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출생의 순위는 상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세상엔 완전한 환경도, 완벽한 부모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순서를 선택한 것도 아닌데 첫 째로 태어났다는 것이 죄가 되어야 할까요? 그렇다면 정말 이 세상에 죄의 종류는 많기도 한 거네요.

 대부분의 가정에서 첫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그렇습니다.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가 되곤 하지요. 결혼하고 오래 도록 소식이 없다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가 태어났을 때,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가 이대  삼대 독자, 심지어 오대, 육대, 칠대 독자로 태어나면 그 요란한 환영의 분위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마치 임금님이라도 행차하신듯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나기 마련이지요. 아이는 온 집안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이른바 ‘황제’가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둘 째가 태어나면 어떻게 되지요? 아이를 키워 본 엄마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온 가족의 눈길이 자기에게만 집중되어 있다가 하루아침에 둘째에게로 옮겨가는, 갑자기 모든 것을 둘째에게 빼앗긴 첫째 아이의 심정은,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머리채를 잡힌 채  왕좌에서 질질 끌려나 대궐 문밖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폐왕, 폐비의 심정과 같답니다. 어른들은 ‘둘째를 보면 첫 아이가 시샘한다.’며 어느 집에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지만, 아이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시샘이나 질투가 아닙니다.

아직 부모 외에는 세상 경험이 없는 아이에게 자신의 전부였던 부모의 관심을 잃음이란 곧 모든 것을 잃음이자 버려지는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버림을 받느냐 남느냐가 달린, 아뜩한 생존경쟁인 셈이지요. 아이는 알 리가 없는 겁니다. 둘째가 태어나도 부모는 여전히 자기의 부모라는 걸, 둘째가 태어났다고 해서 자기를 버릴 리가 없다는 걸, 이제 막 태어난 둘째에게는 어린 그만큼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할 뿐이지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그러니 현명한 부모라면 둘째가 태어났을 때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너무도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족, 부모 ,친척과 지인 등 출산과 육아의 선배들에게 누누이 듣고도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지혜롭게 적용하지 못하는 서툰 부모가 의외로 많습니다. 부모로서는 흔히 벌이는 실수이지만 아이들에겐 엄청난 비극이지요.

 거기서 끝나면 그래도 다행인데, 부모의 무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됩니다. 갓 태어난 둘째가 어리다 보니 아직도 애기인 첫 째가 그에 비해 다 자란 큰형님이나 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거지요. 그렇잖아도 갑작스런 상황에 떠밀려 불안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의 그런 처우는 당혹스럽다 못해 비통한 서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사건건 부모는 ‘너는 다 컸잖아’‘형이니까 네가 양보해’ ‘네가 동생을 돌봐야지’‘다 큰 게 동생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니?’‘네가 언니니까 네가 해라’이런 말들을 서슴치 않고 해댑니다. 그게 아이들 무의식에 얼마나 아픈 화살로 가 박히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장난감도, 먹을 것도 다 동생 앞에선 속수무책 차압이 되고, 심지어 아끼는 자기만의 것을 당연히 주어야 한다고 강요받기도 합니다. 만약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 중에 지금 아이를 기르는 젊은 부모가 계시다면, 정말 현명하셔야 합니다. 첫째 아이가 갖는 이런 아픔들은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낮은 자존감으로 평생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결혼 십 수년 만에 몇 대 독자로 태어 났다가 연년생으로 둘째 동생을 보고 난 다음, 그만 그 충격으로 소아 정신 치료를 받는 어떤 아이를요..첫째 출산에 곧 이어 태어난 둘째에게 온 친척의 관심이 옮겨지자 한 여름에 옷을 열 벌쯤 껴 입고는 혼자서 자기 방 옷장에 멍하니 누워있던 어떤 아이를요..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늘 맥이없던, 친구들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한 마디 항거는 커녕  당연한 일을 당한다는듯 감수하고 있던, 감정을 잃어버린 어떤 아이를요..혹시, 여러분은 그 ‘어떤 아이’ 중 한 명은 아니십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모든 아이의 상처는 미리 방지되어야 하고 이미 난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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