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셔쓰의 사나이’를 만든 원로 작곡가 손석우 씨가 12일 오전 10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고인은 1920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한국 대중음악의 태동기를 헤쳐 온 1세대 작곡가다.

원래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호남은행에 입사했지만 1941년 조선연예주식회사에 입사해 음악인으로 인생 항로를 틀었다. 작곡가 김해송의 추천으로 입사한 이 회사에서 조선악극단 음악부 소속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1942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하향해 다시 은행원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나 광복 이후인 1948년 김해송이 이끌던 KPK악단에 입단했다. 6·25전쟁 시기 미군 클럽무대에서 활동하며 ‘꿈속의 사랑’ 등을 발표했고 1951년 1·4후퇴로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2015년 우드랜드에 세워진 손석우 노래비

최초로 ‘드라마 주제가’를 만들고 1호 ‘한류 작곡가’
그는 1955년 KBS 전속악단 결성에 참여해 가요방송 지휘자로 활동하며 국내 드라마 주제가 1호인 ‘청실홍실’(안다성ㆍ송민도 노래)을 작곡했다. 이듬해에는 작사ㆍ작곡 한 ‘나 하나의 사랑’(송민도)이 크게 히트했다. 노랫말과 멜로디를 따로 만드는 공식을 깨고 ‘작사·작곡 1인 시대’를 연 것으로, 이후 이 노래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노오란셔쓰의 사나이’가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노래를 부른 한명숙에게는 동남아 공연 요청이 쇄도했고, 프랑스의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가 우리 말로 취입해 고인은 ‘한류 1호 작곡가’로 평가받았다. 이외에 ‘꿈은 사라지고’(안다성), ‘나는 가야지’(문정숙), ‘검은 장갑’(손시향),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성옥),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최희준), ‘이별의 종착역’(손시향), ‘삼오야 밝은 달’(김상희) 등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2003년 문화훈장 보관장,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을 받았다. 2015년에는 고향 장흥에 그를 기리는 노래비가 제막했다. 2014년 남이섬 노래박물관에서 ’손석우 특별전‘을 기획한 대중음악 평론가 박성서씨는 “손 선생은 광복 이후 우리 대중음악의 새로운 원형을 제시하며 현 대중음악, K팝의 원형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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