壁上劒靑龍刀(벽상검청룡도)/호연재 김씨 
벽 위에 청룡도가 허공에서 절로 우니
어느 때 솟구치어 영웅으로 가겠는가
장쾌히 바람을 타고 무리들을 죽이네.
壁上靑龍空自鳴    何時涌匣適群英
벽상청룡공자명    하시용갑적군영
乘風快渡長江去    殺盡群匈複大明
승풍쾌도장강거    살진군흉복대명

조선 여성의 시심은 대체적으로 임 그리는 애절함이 묻어난 시상이 많다. 남편이 멀리 떠나 있어 그리는 시상도 많다. 그럼에도 장쾌한 기상을 엿보는 시를 만나면서부터 호연지기를 함께 하게 된다. 벽면에 그려진 청룡도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시상을 일으켰다. 청룡도가 허공에서 울고 있는데 언제 솟구쳐 나올까라고 반문한다. 바람 타고 장쾌히 장강長江을 건너가서, 흉악한 무리를 다 죽이고 대명大明을 회복할까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흉악한 무리를 다 죽이고 대명大明을 회복하리(壁上劒靑龍刀)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호연재(浩然齋) 김씨(金氏:1681∼1722)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이 고조부요, 인현왕후의 외조부인 송준길이 시증조부다. 여자이지만 배포가 크고 담대했으며 많은 한시를 지을 정도로 박식하고 자녀교육은 물론 집안 살림에도 충실했다고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벽 위에 청룡도가 허공에서 절로 우니 / 어느 때 궤에서 솟구쳐 영웅의 손에 갈까? // 바람 타고 장쾌히 장강長江을 건너가서 / 흉악한 무리를 다 죽이고 대명大明을 회복하리]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벽면 위의 검 청룡도를 보며]로 번역된다. 청룡도는 조선시대 무인들의 기상을 대변하는 군기軍氣다. 조선의 무인들은 벽상에 칼을 걸어 놓고 그것을 청룡이라 불렀다. 조선의 청룡이 가장 통분했던 것은 청국에 당한 삼전도의 치욕이었음을 알고 나면 호쾌한 기상이 은연중에 솟는다. 그 때는 그랬다. 여인은 당대의 시대의 비원을 말하고 있다. 청국에 짓밟혔던 조선의 치욕을 갚고자 하는 마음은 당대의 남자나 여자나 같았다.
시인은 벽 위에 청룡도가 허공에서 절로 우니 어느 때나 궤에서 솟구쳐 영웅의 손에 가겠는가라는 자문자답을 하게 된다. 시인의 청룡도는 개인적 원한이 아닌 대명大明이라는 명분에 있었다. 청룡은 아무 때나 울지 않는다. 벽상에서도 잠든 것도 아니다. 청룡은 스스로의 내면을 불태워 강을 건너고 대륙을 달려 한번 용광로 같은 불을 내어 뿜으며 천지를 태우고 싶었으리라.
화자는 더욱 호쾌한 심회를 담아낸다. 바람을 타고 장쾌히 장강長江을 건너가서, 흉악한 무리를 다 죽이고 대명大明을 회복하리라는 기상을 품어내었다. 큰 기상과 이상을 담아낸 호쾌한 시상을 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청룡도가 절로 우니 어느 때 영웅의 손에, 장강 건너 장쾌하게 무리 죽여 대명 회복’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壁上: 벽 위. 靑龍: 청룔도 그림. 空: 허공. 自鳴: 절로 울다. 何時: 어느 때. 涌匣: 솟구치다(涌: 湧과 동자, 샘솟구치다). 適: 가다. 群英: 영웅. // 乘風: 바람을 타다. 快: 장쾨하다. 渡長江: 장강을 건너다. 去: 가다. 殺盡: 다 죽이다. 群匈: 흉악한 무리. 複: 회복하다. 大明: 대명. 큰 성공이나 승리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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