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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 를 찾아 떠나는 치유 여행(43)심리 상담사 박일경의 마음 이야기/나의 가치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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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0  10: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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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석에서 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나 생겼을 때 우리 엄마가 날 지우려고 했었대. 근데 결국 태어났대’ 또는 ‘지우려다 안되서 할수없이  낳았대’...이유와 사연은 다 다르지요 이미 자식은 충분히 있는데 원치 않는 임신이 된 경우, 성별을 감지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와서는 또 딸이었을 경우가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배 안에 있을 때 유산시키려 했던 아이..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하지요. 그러나 저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배 안에 있을 때 유산시키려 한 아이는 곧 배 안에 있을 때부터 잔인하게 거절당한 아이거든요.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그 부모로부터
어리고 약한 자신의 생명을 위협당한 아이 말입니다. ‘우린 네가 필요 없어 넌 필요없는 아이야 우린 널 원치 않아. 필요 없대두? 그러니 저리가라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생겨난 작은 생명체일 때부터 이렇게 가혹한, 근본적인 거절을 당한 아이의 마음속에 생겨난 건 무엇일까요?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분노이거나 그 것을 감춘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지요. 그리고 그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 그리고 무기력과 연결됩니다.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한 서러움이 생애 전반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닙니다. 혹 표면적으로는 성공했고 가질 만큼 가졌고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떠들썩하게 살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기회만 되면 이제는 한이 되어버린 가슴속의 무언가가 울컥 올라올 것만 같고 어딘가에 라도 가서 발버둥 치며 목놓아 울어야만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은 타고난 서러움...뱃속에 있는 그 쬐끄만 어린 아이가 뭘 알겠느냐구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 핏덩어리가 뭘 알고 뭘 느끼고 뭘 감지할 수 있겠느냐구요? 그게 바로 ‘네가 뭘 안다 그래!’ 라는 말과 함께 어린 아이는 아무 것도 못 느끼고 모르는 줄 알고 그 앞에서 상처가 될 별의 별 것을 다 행했던 우리 어른들의 실책입니다.
 아이도 압니다. 어쩌면 더 예민하게, 더 선명하게, 더 잘 압니다. 그리고 그 것은 삶을 통해 증거로 드러납니다. 그 것이 그 것 때문인 줄 모를 뿐입니다. 혹시 낙태에 관련된 영상을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오래전 청소년들을 교육시키는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 신랄하더군요.  낙태시키려는 기구가 들어오자, 눈도 뜨지 않은 그 조그만 핏덩어리는 본능적으로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그 기구를 피해 도망 치고 있었습니다. 마치 도와줄 사람 아무도 없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뒤쫒아 오는 괴한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파랗게 겁에 질린 사람처럼 말입니다. 오싹,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저 어린 것들도 저렇게나 선명하게 알고 있구나.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엄마의 그 작은 뱃속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며 혼신을 다해 숨을 곳을 찾고 있는 아이...공포에 질린 삶의 절규와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아이에게 천성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왜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배 안에서부터 그렇게 거절당했다가 어찌어찌 태어나서 사랑받으며 잘 자랐다면 그래도 대부분의 치유는 이루어진 셈입니다. 천만다행인 거죠. ‘아이구..내가 너를 지울 뻔 했어. 그 땐 너무나 가난해서 말야.. 먹을 것은 없는 데 자식은 너무 많고 그래서 말야..미안허다.. 그런데 네가 안 태어났으면 어쩔 뻔 했누? 우리 늦둥이 막내가 이렇게나 이쁜데..여보, 이놈이 안 태어났으면 어쩔 뻔 했을까요..’뭐 이런 얘기들 말입니다. 그런데 태어나서도 그 거절이 계속 이어졌다면, 문제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오래 전 우리나라에 번듯이 존재했던 사창가의 여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그들이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듣고 자랐던 말, 성인이 된 지금도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말은 ’저 웬수‘ ’왜 태어 나가지고‘..라고 합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밥만 축내는 것‘이 되는 거지요..그런 그들이 손톱만큼이라도 자신을 귀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라도 쉽게 자신을 팔고 아무렇게나 내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존재는 이미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이 세상에 오지 말았어야 할, 오지 말라는데 꾸역꾸역 찾아 온, 천하 디 천한 것이니까요.. 그들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말은 어떤 의미로 받아 들여 질까요?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요..
있습니다.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있고 말구요. 믿어지지 않을지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그 것은 틀림없고 지울 수 없는,  너무나 엄연한 사실입니다. 당신은 분명히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치유 여행이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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