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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금곡리 영광김씨 괴음각(槐蔭閣)과 관수재(觀修齋)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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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6  10: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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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고려초에 成村된 본마을은 그 이름을 羅馬谷이라 하였고  조선조 중종 때엔 金華라 불리우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국란을 좌시하지 않고 주민들이 뜻을 모아 양곡 삼백석을 군량미로 헌납하니 선조임금께서 그 충의를 치하하여 마을 이름을 金谷이라 하사하시었다.

   
 

이 자랑스런 유래가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때에 下金里로 바뀌엇으니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처사였다. 이제 새천년의 시대에 장흥군 조례 제162호(2007년 1월 5일)에 의거하하여 옛이름 金谷을 회복하고 상부상조하는 전통과 의로움을 잇고자 한다. 우리 金谷마을은 화평의 공동체로 만세토록 번영을 이루리라.<금곡마을 회관 내 걸려 있는 현판에서 발췌>

장흥군 용산면 금곡리 335번지(금곡길 6-21)에 제실 괴음각(槐蔭閣)이 위치한다.

   
 

이곳은 월봉(月峰) 김광원(金光遠, 1478~1550)의 7대손 김심(金沁, 1659~1737)의 3칸 제각으로 영광김씨 금곡파종중 소유이다.
1963년(癸卯) 3월 2일 건립하였다. 후손들은 매년 김심 이하 선조 6位에 대해 陰 10월 제향을 봉행한다.

   
 

액호 편액에 글쓴이의 이름, 낙관 등을 남기지 않았으나, 후손의 언동에 의하연 동곡(東谷) 김준식(金駿植 영광人, 1888~1969 장성군 태생)이 썼다고 한다. 또한 동곡(東谷)은 관산읍 방촌리에 위치한 장흥위씨 안항공파 웅천공종중 소유 다산재(茶山齋)에 소장하였던 다산팔경(茶山八景)을 1959년 10월 근찬(謹撰)하였다. 인근 송촌리 평촌마을에 위치한 광산김씨 평촌문중 소유 유천재(柳川齋)에 소장된 유천재중수기(柳川齋重修記), 유천재팔경(柳川齋八景) 등 당대 많은 글을 지어 남겼다.

제실내에는 지난날 영광김씨 금곡파종중에서 후손들의 결혼식 때 사용하였던 묵은 병풍첩 1점을 소장하고 있다.

제각 후면에은 대나무 밭이다. 전면 좌측에는 여름철에 꽃을 피운 배롱나무, 우측에는 겨울에 꽃을 피운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장흥군 용산면 금곡리 394번지(금곡길 59), 금곡마을 서북쪽 뒤 금화산(金華山 160m) 자락에 관수재(觀修齋)가 위치한다.

   
 

영광김씨 금곡파종중 소유로 묘각(墓閣)이 아닌 순수 후학 강학장소인 서재(書齋)이다.
원래 이곳은 종중에서 1602년(壬寅)부터 초옥 형태의 "金谷精舍"를 후학 강학소로 이용해왔다. 이후 1869년 후손 추려(秋旅) 김대원(1804~1869)이 주도하여 기와로 개축하고 노사(蘆沙) 기정진(1798~1879)이 건물의 명칭을 "觀修齋"로 명명하였다.

금곡 태생 김대원은 묵촌 태생 남파(南坡) 이희석(인천人 1804~1889), 여수시 거문도 태생 귤은(橘隱) 김 류(경주人 1814~1884)와 함께 호남지역 노사 선생의 문하생으로 알려진 큰 인물이다. 이런 근거는 노사집(蘆沙集)에 추려자서, 시문 등 다수가 전한다.
특히 여수 거문도 태생 만회(晩悔) 김양록(김해人 1806~1885), 김 류는 관수재에서 수학했던 인물이다. 거문도의 경주김씨는 김 류의 7대조 김호은이 유배로 정착하였다. 당대 김 류 등은 거문도에서 현재의 용산면 원등마을 앞 삼십포로 들어오는 중요 교통인 뱃길을 이용 관수재를 내왕했었다.

관수재는 구당 3칸에 양쪽 동서마루의 단포집 형태이며, 재직실 1동과 기타 부속 건물을 갖추고 있다. 지난날 서재로 이용되어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재원은 논 5두락, 밭 4두락, 임야가 있다.

   
 

관수재 액호는 후손 경암(敬菴) 김한희(1869~1945, 장성군 태생)가 썼다.
만취정 액호는 조참판(?)이 썼다.

경내에는 가선대부 만취정(晩翠亭) 김이창(1696~1784)에 대한 액호 편액 1점, 만취정서(序), 만취정기(記) 시운 편액이 소장되어 있다. 이는 원래 금곡 태생 김이창이 마을 내에 자호를 딴 만취정 정자를 세웠다 전한다. 이후 세월이 흘러 정자는 자연 훼손되어 철거되자 종중에서는 소장된 편액 3점을 관수재로 옮겨 소장해왔다. 오랜 세월로 훼손되어 가던 편액을 2004년(甲申)에 현재와 같이 새롭게 복원하였다.

   
 

만취정서는 참판 양오당(養吾堂) 최몽암(낭주人 1718~1802)이 썼다. 최몽암은 영암 태생으로 금곡 영광김씨의 외손이다. 1750년(庚午 영조26)) 식년시 병과(丙科) 1위로 합격하였다. 한성부우윤,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다.

만취정기는 기헌(寄軒) 최시순(해주人 1755~ ?)이 근고(謹稿)하다. 최시순은 화순 태생으로 금곡 영광김씨의 외손이다. 1783년(癸卯 정조7) 증광 생원시 3등 26위로 합격하였다. 1784년(甲辰 정조8) 정시 병과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삼군(三郡), 삼사(三司), 집의(執義), 실록편수관(實錄編修官)을 지냈다.

   
 

관수재기는 노사(蘆沙) 기정진이 1869년 6월 말에 썼다. 이를 2004년 새롭게 복원하였다.

후학들의 교훈으로 보이는 구사(九思) 구용(九容), 오륜(五倫) 편액글은 1909년(己酉) 6월 초서한 것을 2004년(甲申) 7월 새로운 편액으로 교체하면서 재서하였다.
현재 관수재에 소장된 편액 7점(액호 2점, 시운 5점)은 2004년 종중에서 복원하였다. 이중 시운 편액글 5점을 후손 학운(鶴雲) 김주환(1931년생)이 새로 썼다.

금곡팔경(八景)은 동곡(東谷) 이복연(1768~1846)선생 찬(撰)하다. 
관수재 팔영(觀修齋 八詠)은 신헌(愼軒) 김옥섭(1878~1930)선생 찬(撰)하다.
-第一 : 계정청풍(鷄亭淸風) : 계명정의 맑은 바람
-弟二 : 휴암제월(휴巖霽月) : 부엉이 바위 갠달
-弟三 : 관산석봉(冠山夕烽) : 관산의 저녁봉화
-弟四 : 용사효종(蓉寺曉鐘) : 부용사 새벽 소리
-弟五 : 나잠만하(螺岑晩霞) : 고동바위 저녁 놀
-弟六 : 학지모연(鶴池暮烟) : 관지의 저물녘 연기
-弟七 : 보개초적(寶盖樵笛) : 보갓재나무꾼 피리소리
-弟八 : 청수어화(淸水漁火) : 청수에서 고기잡이 하는 횃불
차(次) 관수재 팔영(八詠)은 잠계(潛溪) 백형기(1881~1948) 선생 찬(撰)하였다. 이 글들의 흔적은 각 유고문집에 남겨져 있다.

용산면 금곡마을 영광김씨는 지난날 용산면 칠리안속 어산~청전마을 간 1,000두락을 소유한 부자 집안이었다. 이런 바탕에서 자손들의 교육을 위해 학문이 뛰어난 선비들을 훈장으로 모셔왔다. 이중에는 용산 묵촌 태생 남파(南坡) 이희석, 사복재(思復齋) 송진봉(1840~1898), 안양면 기산 태생 신헌(愼軒) 김옥섭 선생 등이 훈장을 맡아 주로 농한기인 겨울~봄철간에 강학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때 가진탄압에도 종중의 지도자 지헌(芝軒) 김한기(1863~1930)를 중심으로 단합하여 강학을 계속 이어가 서재를 발전시켰다. 이후 신학문이 확산되면서 서재는 자연적으로 쇠퇴해가 마지막 훈장인 만곡(晩谷) 김창주 때 1980년 말경 폐하였다. 강학 대상은 주로 금곡, 인암 등 주변 마을 거주 학동이었다.

지난날 관수재에서 수학했던 현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김재희(1923년생) 전남일보 주필, 김주환(1931년생) 서예가, 김채환(1937년생)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공사 감사, 김효전(1937년생) 영광김씨 대종회장, 김정전(1946년생) 서울시 중구 상공회의소장, 김명전(1955년생) EBS부사장, 김성(1958년생) 전 장흥군수, 김규정(1959년생) 한학자, 김득환(1961년생) 변호사 등이다.
금곡파종중에서는 영광김씨 시조 문안(文安) 김심언(?~1018) 이하의 선대 유고를 체계화 하여 정리한 "金谷遺文集"을 2010년 간행하였다.

관수재는 영광김씨 금곡파종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선대 흔적을 엿볼 수 있으나, 연혁 등 안내 시설물이 없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당국의 문화재 지정을 통한 관리 등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이는 요즘을 살아가는 금곡 출신 후손들의 관심과 선도적 추진이 중요 과제라 사료된다.

자문 : 김규정(한학자, 1959년생 용산면 금곡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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