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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한 사색특별기고/김창석/수필가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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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6  10: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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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삶을 가까이서 보면 짧은 붓질이 어지럽게 난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과 같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데 급급하다 보면 인생에 대해 잘 모르고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야 한참 뒤로 물러나 인생 전체를 보게 된다.
인생 전체 그림은 흘러버린 시간만큼 멀리 떨어져 봐야만 눈에 들어온다. 특히 쓰라린 경험은 나이를 먹고 뒤돌아 볼 때 선명하게 보인다.
나이가 들면 포기 했거나 오해했던 인간관계, 오래전에 정리 했다고 믿었던 상처와 실망도 새롭게 되짚어 보고 싶어진다. 이러한 관조적인 시각은 노년이 주는 선물 중 하나다.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게 될 때 그들 사이에는 새로운 친밀감이 싹튼다. 어른이 된 자식들이 비난하는 기미 없이 질문하면 아무리 완강한 부모도 마음을 연다.
자식들의 수용하는 태도는 부모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묻혀있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밖으로 꺼낸다.
그러면 부모님의 이야기는 자기방어나 합리화로 흐려지지 않고 명확해진다. 부모님이 외롭게 품어 돈 고통스러운 감정은 결국 자식들도 알게 되고 수그러질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중요한 가족사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거친 대우를 받다보면 감정이 쉽게 손상된다.
하지만 인생 후반기가 되면 종종 감정이 다시 열리는 때가 있다.
특히 친절한 대우를 받고 싶은 욕구가 세심함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충족될 때 그렇다. 그렇게 동요하지 않는 내면은 수십 년을 살면서 얻어진 달콤한 과실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조용히 다가오는 다양한 단계의 깨달음과 깊은 이해력에 놀라게 된다. 힘든 경험을 하면서 느끼는 강렬한 감정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다.
상실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가 되고, 확고한 태도는 의심을 물리친다.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실수를 통해서도 최대한 배우려 한다면 인생 후반부가 그 전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
“비록 잃은 것도 많지만 아직 남은 것도 많다.”는 알프레드테니슨의 어록은 노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심어준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화려하게 과시하거나 외양을 꾸미는 일도 줄어든다. 한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 나타 낼 소품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자신에게 가장 보람되고 본질적인 것에만 신경을 쓴다. 오늘날 고령화 사회를 젊은이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 마련된 “노약자 보호석”을 바라보는 늙은이의 마음은 은근히 착잡하다, 늙은이들은 자신들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까닭에 오늘이 서글프고 젊은이는 그들에게도 늙은 날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않는 까닭에 오늘이 즐겁다.
늙은 동창생들이 모이면 화려했던 현역시절을 얘기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그러나 그 한 때 뿐이고 헤어지고 나면 다시 적막감이 엄습하며 쓸쓸해진다. 허나 이미 지나간 옛날의 기억에 연연하기 보다는 뜻있는 삶을 구상하는 편이 슬기롭다.
명예는 잠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다.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이 노랫말에 담긴 인생에 공감을 느꼈던지 우리 조상들은 이 노랫가락을 즐겨 불렀다.
그러나 놀이는 결코 젊은이들만의 독점물이 아니며 슬기로운 사람들은 늙어서도 놀이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언젠가 유명한 산의 관광길에 늙은 주목군락을 가리키며 안내자는 「살아서도 천년 죽어서도 천년…….」이라고 자랑 하였다. 늙을수록 더욱 멋있어 보이는 것은 주목만이 아니다. 마을 어귀의 거대한 느티나무도 그렇고 삭풍을 이기고 살아남은 노송도 그러하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자고나면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정치권에서 거목(巨木)을 닮은 인물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이리 왜소(矮小)의 길에서 옥신각신 하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초로에 접어들면 벌써 시들기 시작하여 마음까지도 정기를 잃고 비틀거린다. 그러나 나무는 연륜이 더 할수록 위풍이 당당하고 늙어서야 정채(精彩)가 찬연하다. 초연한 모습으로 묵묵히 서 있는 고목을 바라보면 늙음을 걱정한다.
사람에게는 나무처럼 늙어 가면서 더욱 아름답고 당당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일까? 말이 없는 나무는 그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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