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도 탁상용 달력에 일정을 표기 하는 것을 선호 하고 있다.
매월 첫 주에는 그 달의 중요한 일정이나 약속 기념일은 해당되는 날짜에 표기 하고 그 중 중요한 사안은 붉은 색으로 덧칠 하여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스마트폰에는 달력보다 기능이 뛰어난 프로그램들이 깔려 있지만 아직도 ‘아날로그적’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중이 공유하는 기념일들은 애초부터 달력에 표시되어 있어서 세삼스럽게 향유 할 수 있지만 나만의 사안들은 제법 꼼꼼한 표기가 필수적이다. 나이든 탓일지도 모른다.

8월 첫 주에도 일정을 첵크 하다가 29일에 시선이 머물렀다. 아무런 표시고 없는 날이다. 그런데 필자는 그 날짜에 검정색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그 위에 붉은색으로 덧칠을 하였다. 표기는 하지 않았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결기가 점차 달아 오르고 있어서였다.
필자는 한국역사를 배우면서 우리 조상들의 문화적 성취를 익힐때는 재미있고 신이 났다.
한반도의 문화 유산은 그야말로 찬란하고 풍성 하다.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의 문화유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연대와 함께 외우는 문화 유산의 목록은 배우고 익힐수록 자긍심이 우러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역대 왕조의 정치를 논하는 부분에서는 주춤거려 진다. 아마도 모든 한국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공부 하면서 느껴야 했던 부분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한국 역사의  주체 정권이었던 ‘조선’과 ‘대한제국’ 의 역사는 그야말로 식상스러운 수난의 역사이고 굴종의 연속이어서 민족적 자긍심이 부끄러워 지는 시기였다.
역사학자의 관점에서는 그 시대 열강의 각축이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감당해야 할 사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민중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도무지 그 시대를 주도한 왕조와 지도자들은 왜 그리 식견도 지도력도 부재 했을까. 왜 그다지도 무능 했을까. 매국과 반민족의 행태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을까.
그 정점이 1910년 8월29일 국치일, 소위 ‘경술 국치일’로 지칭되는 ‘한일합방’의 치욕이었다. 1987년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명 하고 임금은  황제에 즉위 하여 칭제(稱帝)로 호칭 되었다. 그리고 3년여가 되지 않아서 일본에 합병되는 국치(國恥)의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융희 4년(명치 43년) 8월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한일병합에 관한 조약’을 조인하고 그 해 8월29일에 공포 발효된 한일 합병을 우리가 이 날을 수 있을 것인가.
 소위 국치일로 기억되던 날이 예전에는 달력에 표시 되어 있었지만 지금의 달력에는 표시 조차도 없다. 궂이 그 치욕스러운 날을 표기할 필요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국치의 치욕을 극복 하여 혹은 극일(克日)이나 승일(勝日)에 버금가는  국력과 민족적 우월감을 회복 해서일까.

그러나 작금에 일본의 경제보복과 망언으로 도발하는 기막힌 행태를 감당해야  하는 한국민의 입장에서는  저 100년전의 국치일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을사오적, 혹은 을사 칠적에 버금가는  망언과 만행으로 준동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여 민족적 기강을 훼손하는 무리들이 분별없는 활개 짓을 하는 2019년의 8월. 광복절에 이어 국치일을 기억 할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전범의 후예들이 주도 하는 일본 정권의 야욕이 한국을 겨냥 할수록 이 시대의 한국민들은 1910년의 치욕을 기억하고 기억하여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는 결기로 무장 하여 극일,승일의 역사를 기록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昊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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