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삶의 에너지를 무섭게 빼앗아 가는 우리들 내면의 상처인 수치심은 그 종류가 다양하기도 하거니와 그 것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이런 수치심도 있습니다. 가정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만들어준 수치심, 어리지만 한창 민감했던 나이에 교실에서 받았던 이유없는? 모욕과 그 모욕이 만들어준 수치심 말입니다. 교사의 자질은 갖추어지지 않은 채 왕처럼 막대한 권한만 남용했던, 몇몇 그런 선생님들이 있었던 우리들의 국민학교 시절, 그 분들의 결핍된 인격이 만들어준 수치심의 아픔은 없으셨습니까?  공부 잘하고 얼굴 하얀 부잣집 아이들에게만 주어졌던 특혜, 모두가 우상처럼 바라보고 있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거절감, 그 서러운 차별로 인해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분은 혹여 안 계십니까?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었고 여러 공직 역시 월급만으로는 살기 빠듯했던 시절 무언의 압력으로 촌지를 요구했던, 그러러면 애꿎은 아이를 괴롭혔어야 했을텐데, 그 와중에서 영문도 모르고  억울한 희생양이 되었던 기억은 없으십니까? 다 그랬던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제 동생에게도, 제 딸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사라는 허가된 권한을 업고 저질렀던 그 분들의 그 치졸했던 행위는, 단지 돈 몇 푼에 자신의 영혼을 판 행위였을 뿐 아니라 한 아이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흉터를 패이게 한, 엄연한 만행이었습니다. 그 상처는 그 아이 당사자 뿐 아니라 그가 꾸렸을 가정, 배우자, 그리고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에 이르기까지 몇 대를 거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시절, 제 딸아이의 경험입니다. 유치원 생 티를 채 벗지 못한 초등학교 1학년, 막 입학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일입니다. 연휴가 끝나고 등교했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온 아이가 우당탕탕 신발을 내던지듯 벗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얼굴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눈물과 수치와 고역으로 벌겋게 범벅이 된 아이의 두 볼을 보며 놀라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그 어린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은 ‘엄마 때문에 엄마 때문에..엄마 때문이야 ....!’였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엉엉 터져나온, 참았던 서러운 흐느낌...오랫동안 그 작은 어깨의 들썩임은 달래고 달래도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유치원 생활을 마치고 1학년에 갓 입학한  8살짜리 어린 아이가 말입니다. 알고 보니 그 날은 월요일까지의 연휴가 끝나고 등교한 화요일 날, 아직 어린 1학년 이므로 엄마가 책가방을 싸주어야 했던 때에 화요일 시간표를 싸주어야 하는 것을 그만 날짜를 착각하고는 월요일 책가방을 싸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담임 교사는 그 어린 아이를, 엄마가 잘 못 싸준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 죄밖에는 없는 겨우 8살짜리 어린 아이를, 교과서가 없는 시간마다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책가방 속에 그 날의 책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거의 종일을 책상 위에 올라가 진땀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을, 수치와 겁에 질린 어린 아이...그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교사의 기본자질이 아예 없었던 그 사람은 자기가 어떤 짓을 한 것인지 알기나 할까요? 그 어린 아이의 일생에 어떤 흉터를 만들어 놓은 짓이었는지 말입니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 전의 이 일을, 2019년  오늘 원고를 쓰면서도, 저는 밑바닥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아이에게 주어진 그 억울하고 당혹스런 형벌이, 모욕감이, 수치심이 아이의 평생을 따라 다니며 어떤 짓을 할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교사가 한 짓은 단순히 아이에게 벌을 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무의식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때의 두렵고 서러운 감정을 마치 지뢰처럼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 본인은 다 지난 일이라고, 이제 나는 다 컸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그렇게 생각한다고 없어지는 생채기가 아닌 것을 본인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아무 징계는커녕 끝까지 태연자약했던 그 교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미신이나 천벌이 아니고 그 것이 인간 삶의 과학이자 순리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가정이 없고 완벽한 부모 또한 없기 때문에 너나할 것 없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 동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아픈 상처에 또 다른 상처를 덧입히지 말고, 내 상처의 아픔을 애꿎은 사람에게 분풀이하지 말고, 서로서로 상처를 싸매어 주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동병상련. 오늘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사자성어의 뜻을 곱씹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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