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 남단의 크라스키노(연추)에는 안중근 의사가 주도하여 결성한 세칭 단지동맹을 기리는 비가 서 있다.

일본의 지인 ‘이데 슌사쿠( 井手 俊作)’의 제보

필자는 우연한 기회인 2018.11.14일부터 19일간의 5박6일간 “장흥, 안중근 현장을 가다”라는 조사단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다. 탁월한 안중근 연구 학자인 이건상(전남일보 총괄본부장)의 해설과 안내로 이어진 중국, 러시아 등  안중근 의사의 치열한 활동 무대를 투어하는 동안 심연에서 발화하여 전신으로 번지는 감동과 충정의 감정으로 귀국 후 한참동안을 이입되어 있어야 했다. 말과 글로만 접했던 안중근 의사의 활동 무대. 러시아의 ‘최재형 생가’단지동맹비 중국의 ‘안중근기념관’ ‘관동법원’과 ‘뤼순 감옥’을 투어하면서 느껴야 하는 울분과 감탄과 역사의식은 누구라도 같은 감정일 수 있겠지만 5박6일간의 이야기들을 행여 잊지나 않을까 하는 부채의식 때문에 오래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 5월, 일본 후쿠오카시에 거주하는 친척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후쿠오카시와는 기왕에  필자와 연고가 있는 문화단체, 교민단체와 연대하여 수십여회의 한국전통예술 공연, 전시, 축제 상호 방문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왔기 때문에 그만큼 현지의 지인들과 친교도 있었다. 그 중 이데 슌사쿠는 언론인 출신이며 한국문학 번역자로 장흥 작가의 작품을 현지에서 번역 출간하는 등  친한 문화인으로  친밀한 지인이었다.
그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지난 해 중국과 러시아의 안중근 의사 활동지역 투어를 화제에 올렸는데  진지한 반응을 보이면서 보여줄 자료가 있다고 했다. 하여 이튿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 하였다.

이데 슌사쿠, 그이가 보여준 자료는 1993년 2월6일자 큐슈지역 최대 일간지인 ‘서일본신문’ 조간 페이지 17면에 게재된 한 작가의 인터뷰 기사였다. 인터뷰 기자는 이데 슌사쿠 본인이었다.
기사의 내용은‘이토히로부미와  안중근을 쓴 작가 사키 류조씨(55)와 대담’이었으며 부제는 ‘역사의 단층을 메운다’였다. 그런 경로를 통하여 넌픽션 작가인 ‘사키 류죠(1937-2015)’를 알게 되었고 그이의 넌픽션 소설인‘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의 한국어 번역본을 구해서 읽을 수 있었다.
사키 류조의 넌픽션 소설이 1993년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일본인의 식민사관이 내재된 것이 아닌 최대한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집필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키 류조는 왜 안중근 의사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그 이유는 사키 류조의 태생과 연관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히로시마 출신이었는데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자 고향의 전답을 모두 처분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식민지인 한국으로 건너 왔다. 이 과정을 작가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소규모의 농업자였던 아버지는 전답을 모두 팔고 조선 반도의 함경북도 은성군으로 이주 했다. 그것은 토지를 공짜같은 가격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함북 은성군 길주면에서 1937년 4월에 태어 났다. 네 살때인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부모를 따라 큐슈의 기타큐슈(北九州)로 귀국 하였다.

반도에서 태어난 작가는 “조선 반도에서 태어나 살아 돌아온 한 인간의 자기 확인 의식.. 가해자로서의 아픔을 포함한 성찰.. “미안 했습니다”라는 말로는 덮을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에 접근하고 싶은 고뇌를 보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최고의 권력자이며 추밀원의장인 이토 히로부미가 31세의 조선 청년에게 격살된 사건을 주목하게 되었다.

작가는 기히  1976년 일본의 유수한 문학상인  제74회 나오키상(直本賞)을 수상 하여  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수집 하는데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래서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 이를테면  이토히로부미의 손자인 ‘이토 마수오’가 소장한 ‘안중근공판속기록’ 안중근의사가 체포된 후 하얼빈의 초기 수사에서부터  공판 과정 여순 감옥 수감 시절, 사형 집행까지 통역을 맡았던  ‘시노키 스에요시’의 존재와 관련 기록이 전무하였는데 통역의 손녀인 ‘후쿠오카 히로코’의 소재를 찾아내어  소장한 자료를 제공 받기도 하였다.
이렇게 집필된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초고는 1992년  별책 문예춘추(文藝春秋)199호)에 전재 되었다. 그 후 보완과 가필된  원고가 단행본으로 간행 되었다.

작가의 의도는 참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치밀한 자료 조사를 거쳐서 한국의 안중근과 일본의 이토히로부미를 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저술은 일본인들이 안중근을 자국의 최고 요인을 암살한 테러리스트로 경시하려는 국가적 이기주의를 경계하는데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다.
더불어 자칫 딱딱하기 쉬운 넌픽션 소설을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하기까지의 숨가쁜 과정과 사료에 의지한 자료들을 교차 하여 전개하는 기법으로 흥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질적인 인물로 인식되는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일본의 작가가 넌픽션 소설로 간행하는 동안 관련자료를 참고하고 생존한 인사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참고로 하였다는 자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 가능한 자료 이외에 또 어떤 자료가 있었을까. 작가가 활용한 자료들과 취재 노트는 어디에 소장되어 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비껴갈 수가 없었다.

사키 류조가 참고한 기존의 자료들과 발굴한 자료들을 입수 할 수 있다면 장흥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동사’를 중심으로 하는 “안중근의사 문화관광 조성사업”의 콘텐츠 조성에 유익한 자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사업의 테마가 단순한 관광자원의 영역을 넘어서 ‘안중근 의사’의 자료와 행적과 연구의 결과물들이 집대성된 주목 받는 공간으로의 지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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