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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 를 찾아 떠나는 치유 여행(39)심리 상담사/박일경의 마음 이야기/수치심(2)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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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6  1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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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치유 여행’의 박일경입니다. 살면서 창피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살다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게 마련인데, 누구에게나 한 번쯤 왜 그런 기억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 창피한 사건이 도를 넘어 선 수준으로 그 것도 아주 어린 시절에 일어났다면 문제가 좀 다릅니다. 그 사건이 수치심을 뼈속 깊이 각인시키고, 각인된 수치심은 평생을 따라 다니며 삶의 에너지를 착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아도 크고 작은 수치심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삶속에서,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리고 어른들은 왜 그렇게 수치심을 일부러 만들어서 안겨 주셨을까요? 왜 교육이나 훈계를 하필 수치심을 줌으로써 하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이 저지른 안타까운 실수이고 오류였지요. 수치심이라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어떻게 빼앗아가는 감정인지 모르고 벌린 오류 말입니다. 그분들도 그들의 부모로부터 그렇게 배우고 성장했으니까요.
혹시 ‘키’라는 기구를 아시나요? 쭉정이나 검불을 가려내기 위해서 곡식을 까부를 때 쓰는 그 농기구 말입니다. 그 키를 머리에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갔던 경험은 없으셨는지요. 지금 50대 이상의 성인들이라면 어렸을 때 흔히 보았던, 아예 문화가 되다시피 한 일이었죠.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하는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 말 입니다. 그런데..그 것이 단순히 추억만으로 남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키를 쓰고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와야 했던 풍습 아닌 풍습, 이불에 오줌을 싸는 어린 아이들에게 따끔한 창피를 주어 버릇을 고치고자 한 일종의 교육방침 이었겠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몹시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을 수 있습니다. 행여나 소금과 함께 어른들로부터 들은 한 마디 핀잔이나 빈정거림이 지울 수 없는 수치심의 대못이 되어 자존감에 박혔을 수도 있지요.
제가 언젠가 들은 이야기 속의 한 사람은, 가난했던 살림 속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만 마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외상 술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했던 그 시절이 지울 수 없는 수치심으로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노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차마 외상술을 달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을 기웃거리며 술집 앞을 맴돌던 기억..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가게 아줌마가 아이를 발견하고는 불쌍히 여겨 혀를 끌끌차며 술을 담아 주고, 그렇게 채워진 주전자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멀고도 초라하고 서글프게 느껴졌었답니다. 어린 아들의 이런 고통을 모르고 술만 기다리던 아버지는, 술을 받으러 간 놈이 왜 이제야 오느냐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호통을 치고 심지어는 술이 반만 있는 걸 보니 중간에 네 놈이 마신 것이 분명하다며 아이를 향해 주전자를 휘두르던 억울한 기억들..
가난이 준 수치심은 또 어떻던가요? 옹색하고 빈궁한 살림에 먹을 것은 없고 식구는 많고..낡고 비새는 운동화, 오래된 고무신, 비 오는 날이면 식구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우산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 그나마 반찬도 없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일찌감치 등교를 서둘렀던 기억, 교문 앞을 가득 메운 헝겊 우산들 속에서 행여 친구들이라도 볼까봐  비바람에 찢어져 뒤집혀진 비닐우산을  얼굴 가리개로 썼던 기억.. 온통 보리뿐인 밥에 김치 국물이 벌겋게 배어나온 누런 양은 도시락이 부끄러워 차라리 교실을 벗어나 수돗물로 배를 채웠던 기억은 없으십니까? 그랬던 도시락이 소풍날에는 어땠던가요...여러분의 소풍날은 즐거우셨습니까? 남들처럼 알록달록 화려한 김밥이었나요?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요즘은 흔해 빠진 것이 김밥집이고 값도 싸지만 그 당시에는 1년에 두어 번, 소풍날과 운동회 날에만 구경할 수 있는 아주 귀한 먹거리였으니까요.
아버지의 몇 푼 안되는 사업이 망해 그나마 살던 집을 처분하고 다닥다닥 고만고만한 판자 집이 따개비처럼 붙어있던 산동네, 형편이 같은 여러 가구가 공동 화장실을 나눠 써야 했던 집, 너무나 남루한 형편이 부끄러워 혹 지나가는 친구들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공중 화장실에를 갈 수 있었던 기억은 혹시 없으십니까. 모두가 가난이 준 수치심이지요..참 수치심이 만들어진 원인과 배경은 많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가난과 창피한 기억들이 수치심만을 남겨놓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가난은 수치심 말고도 다른 것을 남겼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여러 형제 모두가 한 방을 쓰면서 형제 우애가 생겨났구요, 가난했기 때문에 밥상을 물리고 나면 뿔뿔히 자기 방으로 흩어지는 일도, 가족 간에 아무 대화도 없이 텔레비전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도 없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하나 뿐인 이불을 서로 잡아당기며 자느라고 요즘 세상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가족 간의 스킨 쉽이 일어났구요, 그 모든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정서적 자산들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간만사가 달라집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일로, 불평하고 낙담하면 낙담할 일로 우리의 삶은 꼴 지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수치심’ 대신 어떤 ‘감사’로 지나 간 삶을 재해석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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