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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담칼럼/국화와 칼왜구倭寇 왜적倭敵 그리고 왜놈倭者을 잊지 말자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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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8  16: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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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년을 빌붙고 약탈하고 강점 했던 나라 倭國

돌이켜 보면 1,000여년전 삼국시대부터 왜구를 앞세운 섬나라의 한반도 침탈은 우리 역사에서 수많은 곡절을 만들었다. 해적단을 조직하여 한반도의 연안을 침탈 하고 수탈하고 살육을 자행하며 식량과 철기 농기구와 생활도구들을 약탈하며 빌붙어 살던 근성이 조선조의 임진ㆍ정유 왜란으로 이어져 이 나라 강토와 백성들이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역사의 행간을 더듬어 볼수록 감정의 통제가 쉽지 않은 한ㆍ일간의 대립은 40여년간의 소위 ‘일제강점’의 치욕의 역사를 안겨주고  어떤 형식으로든 사과도 회복도 외면해온 가식의 나라와 미완의 관계로 어설픈 교류를 하여 왔다.
이렇듯 미진하고 아쉬운 과제들을 안고  겉으로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 일본” “혼네와 다테마에의 민족성을 보이는 일본”“경제 대국 일본”“문명과 문화의 선진국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어 왔다. 젊은이들은 ‘일빠’로 지칭되는 부류들이 맹목적으로 일본 문화에 심취 하였고 일본 상품의 쇼핑과 일본 온천 관광은 한국인이라면 거의 한번씩은 경유 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가 증언하는 과거를 크게 인식하지 않고 오늘의 경제 번영과 평화를 원없이 향유하여 왔다. 민주화와 경제 번영과 더불어 살림살이가 풍요해 지고 지구촌에서 인정받는 나라로 도약하면서 씀씀이와 해외여행이 봇물처럼 터지었다.  한국인이 해외 여행 국가로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작금의 통계가 섬찍하도록 다가온다. 일본은  좋은 상품, 맛있는 먹거리, 볼만한 관광지가 널린 가까운 여행 국가였고, 독자들은  일본 문학에 심취 하였고 일본인은 정직하고 친절하고 질서 있는 민족이어서 배울 것이 많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왔다.
왜구倭寇와 왜적倭敵의 왜놈倭者의 존재를 망각하고 일본日本으로 대하면서 살아 왔다.
그리고  2019년 오늘의 해에 우리 민족은 다시 왜구倭寇, 왜적倭敵, 왜놈倭者의 침략적 도발에 형언할 수 없는 자책과 분노와  민족적 자존심이 무너지는 기가 막힌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구호와 말의 비분강개에 앞서 국민성의 재무장이 절실하다

일본의 경제침략과 비상식적이고 기만적이고 후안무치한 겁박의 처사가 아연하다. 상식과 국제무역범례를 이탈한 아베정권의 도발 그 진행과 귀추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일본 정권의 주체세력이 아베를 정점으로 하여, 이 나라를 유린하고 강점 하면서  대동아공영을 강변했던 수구보수의 꼴통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속에는 ‘반도의체제와 사람’들에 대한 추악한 우월감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 우월감이 한국민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분통 터지는 계산을 하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참담하고 분노스러운 것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국화와 칼’은 일본의 이중성을 간파힌 명저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베네딕트는 일본의 국민성을 이렇게 진단 하였다.
“그들은 난폭하면서도 온화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온 하면서도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심미적인 아름다움이 내재된 국화와 사무라이의 칼로 대변되는 이면의 잔임함을 안고 있는 민족, 종잡을 수 없는  이 민족의 아베같은 정치인에게 다시는 휘둘리지 않은 시대의 과제를 우리는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과 언론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안과 논리가 제시되고 있고 우리 장흥에서도 기관과, 단체와 군민들이 은연중 연대하는 구호와 생활속의 대일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홀연히 ‘제2의독립운동’을 하자는 결기있는 제안도 시선을 끌고 있다.
일본을 이길 수 있다면.., 아베를 당황스럽게 할 수 있다면 ‘제2의 독립운동’ 이상의 국민적 단결과 대응이 절실한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치밀어 오르는 ‘비분강개’ 극단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의 이입을 오롯이 공유하면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일제강점기를 거부했던 애국충정의 독립지사들이 감행했던 폭탄테러를 해야 하는 것일까?
아베를 처단하는 결사대와 의열단을 결성하여 일본으로 처들어 가야 하는 것일까?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하여 세계의 유명 도시에서 자결의 결단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일까?
감정은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할 결단은 달라야 한다.
해방 이후 식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고 1965년의 한ㆍ일 협정은 국민적 의사를 외면한 밀실의 협약으로 가름하였던 과거를 처절하게 반성하면서 국민성의 재무장이 필요 하다. 격조 높은 국민으로, 결기 있는 국민으로, 철학적인 국민으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투철한 국민으로의 지향을 제안한다. 국민성의 재무장은 결코 늦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이다. 오늘의 치욕이 일조일석에 해결되거나 ‘솔로몬의 지혜’같은 명쾌한 해결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장기적인 대일 자세를 구축해하기 위해서는 국민성의 재무장이 절실한 것이다.

●‘아베’와  ‘일본’사람은 다르다’라는 관점을 잊지 말자

일본 나고야 아이치현 미술관에서 전시중이던 ‘소녀상’의 전시중단에 항의하는 현지의 예술가들의 비판적인 반응이 뉴스를 타고 있다. 오무라 아이치현 지사는  ‘위안부 상징 전시물의 전시 중단 요구’는 ‘표현의 자유를  위반’한 위헌이라며 나고야 시장을 비판했다.
비판과 견제와 저항의 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본에서 시민단체들이 반 아베 시위를 시작하였다는 보도도 시선을 끌고 있다.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온라인상의 ‘헤시태그’를 이용하여 아베의 대한對韓 경제보복에 항의하면서 ‘한국은 좋은 나라, 한국 사람은 친절하고 사귈만 하다’라는 여론 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1억2천만 일본인의 50% 이상이 정치에 무관심하여 아베 정권의 일방적 독주에 신기하리만치 무대응 하는 일본인들의 사회 의식 속에도 미세한 조짐이 발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아베를 응징하기 위해서는 일본 국민의 내부 저항의 분위기를 지지해야 한다.
2021년까지 집권이 예정되어 있는 아베의 전횡은 유한하지만 보통의 상식있는 일본인들은 대를 이어 살아갈 것이다.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격조있는 대응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시민정신은 취약한 하지만 일본인들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가까운 나라 한국’‘적이 아닌 나라 한국’‘가보고 싶은 나라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을 공유 해야 한다.
“가지 않겠습니다.” “사지 않겠습니다.” “먹지 않겠습니다.” “입지 않겟습니다.”
이 결연한 구호와 실천적 국민운동과 더불어 “야마모토상 유미코상 당신들은 우리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아베는 아닙니다.”
대국적으로  멀리 내다 보며 ‘국난’에 버금 가는 일본의 경제 침략을 극복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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