煙寺晩鐘(연사만종)/쌍명재 이인로
굽어 도는 돌길을 흰 구름이 막아내고
나무들이 푸르며 저녁노을 짙어 갈 때
절들은 푸른 절벽에 종소리가 울리네.
千回石徑白雲封    岩樹蒼蒼晩色濃
천회석경백운봉    암수창창만색농
知有蓮坊藏翠壁    好風吹落一鐘聲
지유련방장취벽    호풍취락일종성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 절을 찾아보라.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면서, 만종의 소리가 온 산하에 은은하게 퍼진다. 저녁 공양을 재촉하는가 싶더니만 은은한 저녁 예불禮佛은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저 한 켠 농촌에서 바쁘게만 살아가는 범인에게 오늘 저녁 편안하게 쉬라는 강한 힘을 실어주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푸른 절벽에 절이 가만히 숨어 있는 것을 알겠거니 좋은 바람이 불어 한 종소리를 떨어뜨린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천 번을 굽이도는 돌길은 흰 구름이 막아서고(煙寺晩鐘)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쌍명재(雙明齋) 이인로(李仁老:1152~1220)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의지할 데 없는 고아가 되었는데, 화엄승통인 요일이란 분이 그를 거두어 양육하고 공부를 시켰다고 전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유교 전적과 제자백가서를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 번을 굽이도는 돌길은 흰 구름이 막아서고 / 바위의 나무들은 푸른데 저녁빛은 짙구나 // 푸른 절벽에 절이 가만히 숨어 있는 것을 알겠거니 / 좋은 바람이 불어 한 종소리를 떨어뜨린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연기 난 절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로 번역된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의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저녁 무렵에 절이나 교회 따위에서 치는 종’을 만종晩鐘이라 한다. 해무리가 되면 민가에서는 저녁연기가 보글보글 솟아오르고 절간에서는 저녁 예불과 함께 공양을 위한 연기가 솟아오른다. 산사의 저녁 풍경 한 단면이다.
시인은 밀레의 만종은 아니겠지만, 산사의 이런 저녁 풍경에 취했던 모양이다. 천 번 굽이도는 돌길은 흰 구름이 막고, 바위의 나무들은 푸른데 저녁빛이 짙게 깔린다고 했다. 시인의 그림치고는 상당한 값이 나가는 다부진 그림을 그려놓았다. 산사山寺의 이런 풍경이 우리 선인들이 자연 속에 살다가 자연으로 사라졌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잠긴다.화자는 후정은 대시인답게 멋들어진 시상 한 줌을 쏟아내고 만다. 푸른 절벽에 절이 숨어 있는 것을 알겠구먼, 맑은 좋은 바람이 불어 한 종소리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그림이 그것이다.
한 자연이 푸른 절벽 속에 숨어 있다는 표현이나 바람이 불어 한 종소리를 떨어뜨린다는 표현은 적절한 비유적인 문학성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돌길 막은 흰구름에 바위 위에 푸른 나무, 절벽 뒤에 숨었으니 한 종소리 떨어뜨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千回: 천번을 굽다. 石徑: 돌길. 白雲: 흰 구름. 封: 막다. 봉하다. 岩樹: 바위 위의 나무들. 蒼蒼: 푸르고 푸르다. 晩色: 저녁빛. 濃: 짙다. // 知有: 있음을 알다. 蓮坊: 절. 사찰. 藏: 숨어 있다. 翠壁: 푸른 절벽. 好風: 좋은 바람. 吹落: 불어서 떨어뜨리다. 一鐘聲: 한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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