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도 영고성쇠(榮枯盛衰)에 따른 폐촌(廢村) 성촌(成村)이 엇갈린다. 장흥府는 고려말 1379년경에 왜구 때문에 나주 철야현 등으로 110여년 피난살이를 했다. 1555년 을묘왜변 때도 장흥의 동남쪽 해안은 초토화되었다. '새터, 新基'는 새로 성촌한 마을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서 '新興'할 수도 있다. '옛터'를 한번 떠났어도 예컨대, '복흥(復興,再興,中興),三興'으로 재건하는 사례는 땔감 조달이 관건이었던 가마터에 많다. 용산면 월림 ‘재흥(再興)’도 다시 들어선 가마터 마을이다. 그 사정은 달라도 장흥에 ‘부(복)흥(復興)’도 몇 곳 된다. 오늘은 그런 '옛터'와 '새터'를 살펴본다.

1)  옛터 - 낡은 터(날근터), 묵은 터, 삭은 터

- 안양 삼교(해창 교동) 날근터/ 회진 선자리 날근터/ 용산 상발리 날근터/ 관산 외동 수동 날근터.  왜적과 삼별초, 태풍 등이 원인이었을 것인데, 특히 해변의 '사기소 가마村'에 대한 왜구 침탈이 잦았을 것, 이에 땔감 조달의 어려움도 있어 북쪽 산간의 유치 장평으로 가마촌이 옮겨갔을 것.
- 유치면 대천 '사근소(삭은沼)'는 "삭다"에서 온, '오래된 沼'를 말한다. 혹자는 유배객 '영의정 서근'이 유치에서 죽었고, '서근' 비석을 버린 '서근소'와 '徐정승 묘소'를 남겼다는 전설을 말하나, 아니다. 애초 '유배객, 영의정 서근' 자체가 없었으며, 단지 하급직 '녹사 서근(1392~)'이 1469년경에 유배를 왔다가 3년 만에 돌아갔을 뿐이다. 서울 '구기(舊基)洞, 사근洞' 경우도 옛터를 지칭하는 지명이다. (앞의 ‘사근’을 ‘작은’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도 있긴 하다)
- 용산 '묵촌(墨村)'은 역사가 오래된, “묵다”에서 유래한 '묵은 촌'을 뜻할 수 있다, (마침 '가마소, 도기소'가 있었기에 '가마<가맣다, 검다'에서, 또는 ‘먹을 만든 먹뱅이’에서 ‘묵방(墨坊)’의 유래를 찾기도 하나, 그만큼 오랜 마을일 것)

2) 새터 - 새몰, 새뜸
새로 성촌되면 새로 작명된다. '新촌,新기,新흥,新풍,新월,新리,新덕'등인데, 여러 곳에 산재한다. ‘죽청 염밭등’은 간척 이후에 '新월'이 되었다. 기존 이름을 고쳐다는 경우로 1747년 <정묘지>에 나온 '안양 평촌'이 1800년 홍수 이후에 '新촌'으로 바뀌었다. ‘관산 하발 골몰’ 폐촌은 훗날 ‘동촌(洞村)’이 되었다.

- 신촌(新村), 관산 옥당 新촌/ 용산 원기 新촌 / 안양 新촌.
- 신기(新基), '新基(새터)'는 ‘기동(基洞)’에 대비되며, '새 가마터, 옹기점'이 들어선 경우가 많다. 또는 ‘새로운 길’에 따라 그 지역의 ‘새 중심지’로 발전한다. 장흥 금산 新기, 평화 新기/대덕 신월 新기/관산 방촌 新기/용산 접정 新기, 상금 新기, 계산 新기, 원기 新기/유치 조양 新기, 운월 新기.
- 신흥(新興), 대덕 연지 新흥/용산 녹원 新흥/장흥읍 新興(‘蓮山’으로 개칭됨)
- 신풍(新豊), 용산 풍길리 新풍(간척 후 성촌됨)/ 유치 新풍.
- 신월(新月), 대덕 新월(신기+월정)/ 관산 죽청 新월/ 유치 新월.
- 신리(新里), 대덕 서新, 동新, 이新
- 신덕(新德), 유치 新덕/ 장평 진산리 新덕(?새 더기)

3) '새新'의 변형 형태

   "새롭다"가 꼭 '새新'으로 옮겨진 것은 아니다. 너무 흔한 '새新' 대신에 우리말 '새'음가(音價)와 유사한 '쇠(鐵,金), 쇠(牛), 사이(間), 새(鳥), 새(乙), 새(鶴)'을 사용하기도 한다.
새로 생긴 고개를 '새鳥'로 작명한 '鳥령(새재)'처럼 "새롭다"를 '새鳥'로 살리는 것. 또 '새(鳥)'라도 '새鶴, 새鳳'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鶴송, 鶴산, 鳳황' 경우는 '새新' 의미를 그냥 '새鶴, 새鳳'으로 받은 것. '안양 鶴송, 장동 북교 鶴산'등이 그러하다. 다만 안양 모령의 ‘봉동(鳳洞) 샛골'은 '사이골'일 수도 있다. (‘사이’를 가로질러 본류에 합쳐지는 강, '샛강' 사례는 서울 한강에도 있었는데, '잠실 샛강'은 한자어 '잠실 新川'에서 최근에 다시 '잠실 새내'로 바뀌어졌다.) ‘봉황(鳳凰)’사례로서 '강진 칠량 鳳황, 강진 도암 鳳황, 나주 鳳황'처럼 '용산면 운주리 鳳황' 마을은 옹기 가마터가 확산되면서 '새鳳'을 사용한 '새 옹기촌'이 등장한 경우이다. 같은 '새'라도 '큰 새'는 '황새(한새) 관'으로 받는데, '용산면 관지리. 부산면 금자리 관한'이 그런 '황(한)새몰' 경우이다.  한편 '새들'은 '새(新)들'인지, '사이(間)들'인지, '서(西)편들'인지 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관산 대덕 경계에 들어선 '서들'은 간척지 西쪽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장흥마을유래지,1986>)

한편 ‘새新’이 ‘東쪽’을 가리키는 경우는 ‘관산 新東 (新塘 + 東頭)’이 있다. 그런데, <정묘지,1747>에는 옹암 ‘新里’와 ‘거정, 초당’은 기록된 반면에 아직 ‘신월, 신기, 월정’은 등장하지 아니한 바, ‘거정, 초당, 내동’ 등 6개 마을이 속한다는 ‘대덕 新月’의 지명유래가 과연 ‘신기 + 월정’의 단순 합성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혹 넓게 보아 “사이(새)에 있는 큰(한) 들판”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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