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어느 젊은 여성에게서 들었던 긴 한숨 같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남들은 소띠 닭띠, 호랑이 띠인데 자기는 ‘하녀띠’라나요. 어리둥절한 마음에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자기는 어딜가든지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반드시 설거지나 궂은 일을 스스로 도맡아 한다구요. 사람들은 칭찬을 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은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웃으며 잘도 앉아있는데, 자기는 자동으로 매 번 허드렛일을 하러 튀어나가는 것이 스스로도 너무나 싫어서 이번에는 나도 좀 우아하게 앉아 있어 보리라 굳게 마음 먹지만, 아무리 독하게 결심을 해도 5분도 되기 전에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어 차라리 벌떡 일어나 설거지 통 앞으로 간답니다. 자기 안에는  자동 장치가 있어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조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큰 마음먹고 남들처럼 우아하게 앉아 있으려 하면 꼭 누군가가 튀어나와 ‘너 설거지 안하고 지금 뭐하냐’고 호통을 쳐 부엌으로 쫒아낼 것만 같다고 했습니다. 웃음이 나오셨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칼럼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엔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으실 걸요.. 그 여성 역시 심각했습니다. 자기도 남들같은 대접을 받고 남들처럼 여유있게 어울려 즐기고 싶은데, 마치 미리 세팅이 된 것처럼 자동으로 그렇게 행동이 튀어 나오니 자기도 어쩌는 수가 없노라고요....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요?말 할 것도 없이 어린 시절 때문 인거죠. 아마 이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허드렛일 꽤나 도맡아 하고 자랐을 겁니다. 딸 많은 집에 또 딸로 태어난, 불청객 자식이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첫 째도 아니고 막내도 아니고 이제 딸은 그만 좀 낳았으면 좋겠다고 바랬을 때 태어난, 그 어중간한 순번의 ‘또 딸’ 말입니다.
 유교 문화의 영향을 뿌리 깊도록 받은 우리나라의 남아 선호 사상의 역사를 보면, 참 우리나라의 옛 여성들만큼 억울하고 서럽게 살아온 분들도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양성 평등이니 여성 상위니 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요즈음 세대 훨씬 이전의 세대, 그러니까 지금 40대 중반부터 50,60,70대를 넘어 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납니다. 그리고 연민의 정이 생겨 납니다. 어떻게 그렇게 서럽게 태어나 서럽게 자라고 서럽게 살아 오셨을까..단지 ‘또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같은 형제인 오빠나 남동생 사이에서 마치 그들의 뒤치닥거리나 하려고 태어난 존재인 것만 같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말입니다. 좋은 것은  늘 아들의 차지가 되는 집안 분위기에서 당연히 아랫목을 차지한 아들들의 그늘의 가려 남은 음식을 겨우 얻어 먹거나, 추운 겨울 찬 부엌에서의 설거지는 으례 또 딸의 몫이 되어야 했던.. 그러니 무슨 자존감이 남아 있겠습니까. 어떤 자리에 가도, 어떤 모임에 가도 허드렛일 하는 자리가 내 자리가 되고 마는 거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동으로 말입니다 늘 그렇게 살아 왔으니 그 자리가 내 자리인 듯 차라리 편하고 익숙한 겁니다. 그냥 앉아있으면 누군가 당장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나타날 것 같은 안불좌석....중년 이상의 연세가 되신 이 나라의 적잖은 여성들의 이름에 사내 남자가 들어 있거나 그만, 마지막이라는 뜻을 가진 ‘말’자가 들어가 있는 경우는 흔하다 못해 얼마나 보편적입니까. 이제 딸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뜻, 제발 딸은 너를 마지막으로 여기서 그치고, 그 다음은 아들이 태어나 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니 평생 불리우는 이름에서부터 자존감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너는 필요없는 존재, 기다리지 않았던 달갑잖은 아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런 이름으로 평생을 불리우면서,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믿어질 사람이 몇 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몇 번째 딸로 태어 나셨나요? 기다리던 딸로 태어났다고 환영받으셨습니까? 금지옥엽 귀하게 자라나셨습니까? 불청객으로 태어나 천덕꾸러기로 자라온 딸들은 자신이 결혼하여 또 딸을 낳았을 때, 자기가 받아 온 그 서러운 대접을 또다시 고스란히 그 딸에게 물려주기 십상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한 존재’라는 가치관이 무의식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죠. 그리고 중간에 뭔가 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대를 이어 물려지고 또 물려지는 겁니다. 부모로부터 거절당한 아이..탄생에서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그 거절감이 평생 그 여성의 내면에 자리잡아 삶의 모든 영역에 보이지 않는 손길을 뻗치게 됩니다.
그런데..언제까지 그렇게 사시겠습니까? 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도 아닐진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비록 그 시대의 문화 때문에 부모와 가족으로부터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여러분은 원래 더없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에 눈을 뜨셔야 합니다. 지금, 누가 여러분을 사랑해 주고 있는지 주변을 한 번 둘러 보십시오. 여러분은 누구에게 귀한 존재입니까? 그 귀함을 누구보다 여러분 자신이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를 찾아 힘껏 안아주는 그 일을 ‘치유 여행’도 힘껏,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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