鏡浦泛舟(경포범주)[2]/근재 안축
자욱한 물결위에 흰 갈매기 지나가고
모래에서 당나귀 느릿느릿 걸어갈 제
늙은이 천천히 노저 보고가세 달이나.
烟波白鷗時時過    沙路靑驢緩緩行
연파백구시시과    사로청려완완행
爲報長年休疾棹    待看孤月夜深明
위보장년휴질도    대간고월야심명

경포의 밤은 그렇게 무르익어간다. 강릉의 명물이다. 신사임당을 생각하게 하고, 율곡이 컸던 지역임을 생각할 때 경포의 아름다움을 지울 수 없다. 자연이 주는 포근한 선물이 어디 경포에만 한정할 수야 있겠는가마는 우리는 늘 자연에 취해서 살아왔다. 저 멀리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있는 독도가 더는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한다. 사공 늙은이에게 알려 노를 천천히 젓도록 하여 깊은 밤을 기다렸다 돋아오를 달이나 보고 가자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깊은 밤을 기다렸다 돋아오를 달이나 보고가세(鏡浦泛舟2)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으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원나라에서 돌아와 전법, 판도, 군부, 전리 등의 4총랑을 역임하고 우사의대부가 되었다. 1330년(충혜왕 1) 강릉도존무사로 관동지방에 파견되었다. 교지전법사, 전법판서 등 주고 법관직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자욱한 물결 위로 흰 갈매기가 지나가고 / 모랫길에 당나귀가 느릿느릿 걸어가네 // 사공 늙은이에게 알려 노를 천천히 젓도록 하여 / 깊은 밤을 기다렸다 돋아오를 달이나 보고가세]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경포대에 배 띄우고2]로 번역된다. 경포대에서 배를 띄우는 시인은 심사는 더 깊숙하게 이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비 개이자 호수에 가을 기운 가득한데 / 조각배 띄워 놓고 자연정취 만끽하네 // 육지가 별천지에 드니 티끌도 이르지 못하고 / 거울 속을 노니는 듯해 그림을 그리기 어렵네]라고 쏟아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안개 자욱한 물결 위로 갈매기가 날아가고 당나귀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화폭에 그림을 담는 화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와 같은 시상을 떠 올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시 시인의 부탁은 어지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노를 저으라고 주문하게 된다.
 화자는 이태백이 술을 마시다가 물에 비친 달을 보고 그만 빠져들었다는 시구를 떠 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른 모습은 다 보았으니 내게 기회를 다오.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하는 마음으로 금방 돋아 오를 달을 보고 가자고 칭얼대는 것처럼 그러한 달구경을 요망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물결 위로 흰 갈매기 당나귀는 느릿느릿, 사공 시켜 느릿느릿 돋아나올 달을 보며’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烟波: 안개 파도. 곧 안개. 白鷗: 갈매기. 時時過: 때때로 지나다. 沙路: 모래길. 靑驢: 푸른 당나귀. 緩緩行: 느릿느릿 다니다. 혹은 지나다. // 爲報: 알리게 하다. 長年: 연장자. 늙은이. 休疾棹: 노를 쉬엄쉬엄 젖다. 待: 기디리다. 看孤月: 외로운 달을 보다. 夜深明: 깊은 밤에 밝다. 밤이 깊으면 달이 밝다.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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