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그 봄 나는 어디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逝去)소식을 들었을까?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날은 주말(週末)이었고 나는 당시 내가 근무하던 도청 사무실에서 TV의 긴급뉴스를 통해 노무현대통의 고향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서의 절명(絶命)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쿵하고 무너져 내리던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이라서 공직자가 봉하마을에 갔다가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가서는 안된다는 사무실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봉하마을에 갔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지도자 중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의 눈높이를 남대문의 상인, 부산 자갈치의 생선 파는 아지매, 광주 금남로의 눈감지 못한 5?18영령들이 꿈꾸는 사람 사는 세상에 맞추겠다는 한 정치인의 죽음이 너무나 가슴아팠기 때문이었다.

공직자라고 해서 정권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봉하마을에 못 갈 이유도 없었다. 1987년 당시 전두환대통령 퇴임을 앞둔 시점에 퇴임 대통령의 정책을 다음 정권에서 계승발전시키는 방안을 만들어 보고하라는 상부 지시를 거절할 만큼의 기개는 있었던 나였으니까.

개인적으로 나와 노무현대통령과 첫 대면은 2002년 4월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 분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 권양숙 여사와 함께 순천지역을 방문했고 도지사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허경만 도지사와 함께 순천 로얄호텔 어느 객실에서 노무현 후보 부부와 만났었다. 5공청문회에서 TV에서 보았던 다소 강성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첫 인상이 아주 솔직하고 편했다.

노무현 후보와 허경만 도지사는 사법고시 출신이어서 사법연수원 선후배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서로 허물없이 형님 동생하면서 그해 12월에 있을 대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서울 모 호텔 커피숍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던 다른 당 후보 이회창씨의 대통령이 다 된 듯한 모습에서 느꼈던 절망 등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고, 나는 정의롭게 깨어있는 사람이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시기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다. 내가 느낀 그 분은 아주 솔직하고 맑은 사람이었다. 미팅이 끝나자 노무현 후보를 수행하고 있던 서갑원(후에 국회의원을 지냈다)씨가 내게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기념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나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때 찍어 달라고 호기롭게 얘기했는데 그때 사진 찍지 않은 것이 두고 두고 후회로 남았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나와 사진 찍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에게 매료되었다.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발표할 때 했던 연설을 나는 백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힘들고 외로울 때 그 연설을 듣고는 한다. 듣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면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사심이 없었기에 당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던 정치인. 오늘도 세상은 시끄럽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닌 자기들의 손에 쥐고 있는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그럴듯한 언변으로 개 거품을 물어서 세상이 어지럽다.
해마다 5월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올해는 6월이 되어도 그립다. 그만큼 세상이 어지러워서일 것이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 당선되어 무었을 할 것인가를 말했던 사람, 우리에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꿈꾸었던 사람, 작은 허물도 부끄러워했던 사람, 노무현이 그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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