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흥 임씨, 임씨도, 석선
장흥에도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석선(石船), 돌배가 있었다. “천관산 남쪽 임씨도(任氏島)에 들깨씨(荏子)를 실은 石船이 닿았다”는 것. <정묘지>는 ‘고읍방 임곡도(任谷島)’라 했는데, 오래 전에 연륙되어 이제는 사라졌다. ‘장흥 任氏’들은 ‘중국 소흥’에서 바닷길을 건너 장흥 任氏島로 들어와 천관산 당동(唐洞, 堂洞) 마을에 정착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선조들의 천관산 터전을 등지고 보성으로 이거하고만, ‘국당 임희중(1492~, 사마양시 입격)’은 그 쓸쓸한 비애를 5언율시와 7언절구 각 2수로 읊었다. 통곡(痛哭)이었을 것. 그들은 보성 해남으로 떠나면서 번성해졌다.
 

 -임씨도(任氏島)
天岳之前來德後 천관산 앞에 내덕도 뒤에
螺然雙島點中央 소라 같은 두 섬 가운데라
任初自土成瓜질 임씨 첫 터전 과질(瓜 질) 후손 번성한 곳
世說相傳舊愈祥 세상에 전해오는 옛 발상지라네
<주, 쌍도(雙島)는 ‘우산도’와 ‘도리도’를 말한다>

 -임씨도(任氏島)
應時天賜姓 시운에 맞춰 하늘은 姓 내려 주시고
效異石爲舟 효이(效異) 신험한 돌배(石爲舟)가 만들어져
漂泊仙山面 천관 선산에 떠내려와 표박 했다가
棲遲孤嶼頭 외로운 해변에 차츰 자리 잡았다네
蟬聯迷世代 계승한 선대 조상님들 아득하여라
源派略春秋 임씨 원파(源派)는 세월에 결략되고
孑孑殘仍過 고단한 혈혈 후손이 찾아 왔다가
悠悠爲小留 유유한 마음으로 잠시 머물렀다네

 -(석가/돌배,石船)
無文戒勿云難神 문헌 없어 못 믿는다 말 마오
匪實緣何說到今 실제 아니면 지금껏 전해 오리
金독石函應一轍 금독 석함 설화가 같은 이치라
神종異蹟( )崇欽 神異한 古蹟에 더 존숭한다네
<주, 금독석함(金독石函)은 ‘김알지 금독’과 ‘박혁거세 석함’ 설화를 빗댄 것>

 - 돌배(石)
天將降大任 하늘이 장차 대임(大任)을 맡기려고
一葉樣波心 일엽편주를 해파(海波)에 맡겼다네
鬼役功何有 귀역(鬼役)의 공로는 어디 있으려나
神通泛亦湛 신통(神通)하여 뜨며 잠기며 왔다네
當時垂裕遠 당시 후손에 수유(垂裕)해준 먼 계책
底處永言沈 선조 영언(永言)은 어디로사라졌나
苗裔傷今古 어제와 오늘에 상심(傷心)한 후손은
躊躇向島吟 任島 향하여 주저(躊躇)하며 읊조리네

2) 석선(石船) 설화
주로 서남해안 일대에 石船 설화가 남아있다.
가야 허황후 石船, 해남 미황사 石船, 영광 불갑사 石船, 완도 금일도 황제도 石船, 장흥 천관산 石船 등이다. 그 石船을 두고 대개는 문자 그대로 풀어 ‘가벼워서 뜨는 돌(浮石)로 만든 돌배(石爲舟)’ 또는 ‘돌을 싣고 온 돌배’ 정도로 풀이하고 만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본다. 그 石船 명칭은 “돌아다니는 배”의 ‘돌다(go around, circle, 돌回)’의 ‘돌’을 ‘돌石’으로 받은 것 아닐까? 예컨대 “돌아가는 모퉁이, 돌모루 마을”을 한자 지명 ‘석우촌(石隅村)’으로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돌石’은 ‘돌回’와도 통할 것. 장흥 임씨들이 도착한 쌍도 중의 ‘도리도’를 보더라도, ‘돌의(突儀)도, 석의(石儀)도, 회도, 돌섬, 원도’ 등으로 불렸다. “돌다”에서 ‘돌石, 돌回, 돌圓’이 상통함을 알 수 있다. 앞서의 여러 石船 사례들은 ‘외지에서 도래한 무역선(trade ship), 回船(돌아가는 배)’으로 중국 강남에서 장흥 任氏들을 실어오고 또한 불교를 전래해준 배일 수 있다. 앞 설화의 石船들은 한결같이 “도착지에 그대로 정착하지 않고 출발지로 되돌아간다(돌아다닌다)”는 공통점이 있다. 곡성 성덕산 심청傳 설화에도 그런 石船이 나온다. 그렇게 해로(海路)로 돌아다니는 ‘石船, 石가, 回船, 무역선’을 통하여 남방의 문물이 한반도 서남해안으로 유입했을 것. 그 石船은 불상 석불(釋佛)을 싣고 온 ‘석(釋)船’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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