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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담칼럼/소설과 저항의 큰 길을 걸었던 송기숙작가제12회 “후광학술상 수상”의 나드리를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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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6  17: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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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출신으로 민주화 시대의 저항과 문학의 큰 성취를 남긴 소설가 송기숙이 제12회 “후광학술상” 수상자로 내정 되었다는 소식이 한없이 반갑고 가슴을 울린다. 후광학술상은 전남대학교가 제정 하여 민주ㆍ인권ㆍ평화의 실현을 위해 공헌한 세계 각지의 탁월한 인물과 단체에 수여함으로서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자는 취지로 시작 되었으며  금년으로 열두번째 수상자를 배출 하게 되었다.

작가의 고향 용산면 포곡리 그 곳은 은둔의 마을처럼 고적한 공간이다 .지금이야  길이 뚫리고 포장이 되어 있고 군내 버스가 정기적으로 운행 하지만 예전에는 참으로 아득한 산중 마을이었다.
그 마을을 유난히 사랑 하던 소설가 송기숙은 포곡리 이야기를 시작 하면 유소년 시절의 추억들과 마을의 사물과 사람들의 소식을 들춰내고 목말라 했다.
특히 장흥중ㆍ고 재학시절의 6년간을 걸어 넘어 통학하던 “자푸재”의 사계절과 그 길목을 소설처럼 회상하며 그리워했다.

장편소설“자랏골의 비가”는 그 창작의 현장이 포곡리여서 송기숙의 문학을 연구하는 이들과 독자들이 어김없이 찾아보아야 하는 문학의 명소이기도 한다.
“암태도” “도개비 잔치” “대하장편소설 ”녹두장군“등 주목받는 작품들을 남긴 송기숙의 족적은 그 삶과 소설을 통해 사회 모순을 비판 하고 민주회복과 인권신장의 치열한 활동을 통해”실천하는 지식인“의 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송작가는 1973년부터 2000년까지 전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하면서 후학을 양성 하였다,
30여년간의 교직 생활은 그저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1978년 전남대 교수 10여명과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우리의 교육지표”를 선언 하여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어 1년간 복역 하면서 교수직까지 파면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이어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학생수습위원으로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헌신 하시다가 내란죄를 적용 받아 10개월간 복역 하였다.

작가는 대학 복직 후 1987년 “5,18민중항쟁 사료전집”을 발간하고 같은 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초대 의장,199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1996년 전남대5,18연구소 초대 소장,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국무총리급) 등을 역임하면서 이 땅의 민주화와 문화발전에 헌신하시었다.

송기숙의 이념은 투철하였고 심신은 강철 같았지만 두 번의 옥고를 치르는 동안 상상하기 어려운 고문과 핍박을 당하였을 것으로 유추 된다. 암울했던 그 시대에 송기숙이 격어야 했던 심신의 고초는 인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형극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우리의 송기숙 작가는 근간에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와병 중이시다.
2016년도이던가. 화순읍 둔버리 길 맨 위쪽  적요한 작가의 거처를 찾았을 때 은연중 반겨 하시던 눈빛이 가슴을 울리며 다가왔다. 평생의 반려자였던 김영애 사모의 간병으로 거실에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은 비록 초췌 하였지만 치열하고 당당 했던 문학과 저항의 모습을 찾아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직도 당당 하신 작가의 모습으로 표현 하지만 한 시대의 파수꾼으로 격랑의 행간을 극복해 오신 분에게 구문과 핍박의 후유증으로 운신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이 슬프고 분노스럽다. 송기숙 작가는 필자와 정겨운 인연이 많다.

199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재임 시 창립 회원이었던 필자의 회비가 밀려 있는 것을 아시고는 그 미납 회비를 대납해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었다.
“장흥 후배인 니 회비가 미납 되어 있어야 쓰것냐. 금년 회비까지 완납 해쓴게 인제 니가 내야쓴다잉”

필자가 1981~1983년동안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 전남연합회장을 맡아 민주회복, 5.18 진상규명의 집회와 기도회의 행사에 조우 할 때는 ‘장흥의 후배’라고 유난히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힘을 보태주시었다.

사람은 사람다운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고향과 문단의 후배로 민주화운동의 동지로 존경하고 동행했던 송기숙 선배님을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도리도 다하지 못한 중에 후광학술상의 수상 소식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이 수상이 작가의 오랜만의 나드리가 되어 건강도 회복하고 일상의 교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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