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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콩 다리”를 아시나요?목포경찰서 경무과 서승옥/목포에서 장흥인의 긍지를...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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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31  10: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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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이란 명분으로 항도 목포에 전출온지 벌써 4개월이 흘렀다.
타향에서 사료집을 뒤져 고향의 흔적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멜라콩의 다리’였다.
1960년대 초까지도 목포역 안쪽까지 물이 들어 왔고, 목포역 옆길은 복개되지 않은 넓고 긴 하천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천 건너편 사람들이 기차를 타려면 동명동 어물시장에서 사고판 생선들을 머리에 이고 상당히 먼 길을 돌아서 다녀야 하는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다리를 놓은 장본인이 바로 장흥 출신 멜라콩 ‘박길수’이다. 장애인의 몸으로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 설득하고 성금을 모아서 드디어 1964년에 목포역 주변으로 흐르는 하천위에 다리를 세우는 일에 성공했다. 그 때문에 목포 사람들은 그 다리를 ‘멜라콩 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멜라콩 다리 기념비는 박길수(朴吉洙, 1928~1989) 가 목포역 주변에 세운 다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목포역에서 화물취급소로 돌아가는 우측 길목의 목포역 담장에 박혀진 비. 비의 전면에 ‘멜라콩 다리’라고 새겨져 있고, 우측에 ‘목포역 정모 박길수’라는 이름과 1964년 4월 20일 이라는 건립일이 새겨져 있다.  바로 이 주인공이 장흥인 이라는 것이다.

박길수는 1928년 전남 장흥군(이하 출생지는 알수 없음)에서 박권섭의 3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멜라콩이라는 이름은 태어날때부터 소아마비 장애의 몸을 지녔고 체격까지 작았던 박길수를 주변사람들이 부르던 별명이라고 한다. 중국 영화에 나오는 극중 이름인데, 그 배역의 모습과 박길수의 허약한 몸짓과 하는 행동이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박길수는 목포역 소화물 취급소에서 성실히 근무하면서 48년을 한결같이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데 앞장서, 목포의 명물이자 자랑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필자가 맨 처음 기념비를 확인하러 갔을 때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물어보았더니 자초지종을 내게 설명하는 등 소상히 알고 있었지만 장흥 출신이라는 것은 첨 알았다고 했다.

가난한 장애자의 힘으로 생각지도 못하던 다리가 놓여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력에 감동을 받았다. KBS에서는 그의 봉사적인 삶을 기리기 위해 1989년 멜라콩 박길수의 생애를 극화한 ‘멜라콩을 아시나요?’를 제작하여 전국에 방영하기도 하였다.

비록 지금은 다리가 사라지고 초라한 비석만이 목포역 담장에 남아있지만 목포의 도시발달과정과 목포시민들이 살아온 과정에 대한 향수가 어린 문화유적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비석은 하단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고, 목포역 담장에 박혀 있어 뒷면을 확인 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타향에서 고향 장흥인의 긍지를 느껴보는 소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출처: 목포시사 1권 제5편 목포의 문화유산(58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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