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妓(증기)/형양 정습명
천 길 바위 꼭대기 천 년을 묵은 절
앞에는 강물 보고 뒤로는 산에 기대
절집에 솟은 누각은 한 칸이나 되는구나.
千刃岩頭千古寺    前臨江水後依山
천인암두천고사    전임강수후의산
上摩星斗屋三角    半出虛空樓一間
상마성두옥삼각    반출허공루일간

선비들의 시문을 보면 기녀들과 얽힌 작품이 상당히 있다. 주색이라고 했던가. 예나 이제나 술은 인간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기녀와 대좌하여 이야기하면 마음속으로 빠져 들어와 생각을 같이하고 때로는 깊은 시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본다. 일필휘지라 했듯이 붓 가는 대로 시를 써서 여인에게 전달했다. 곧 증기贈妓다. 수많은 꽃들 중에 맑고도 고운 저 얼굴을 보니 오릉공자인들 가슴에 품은 한 만은 끝이 없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홀연히 미친 바람을 입어 붉음만을 덜었네(贈妓)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형양(滎陽) 정습명(鄭襲明:?~1151)으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향공으로 문과에 급제해 내시에 보임되었다. 1140년 김부식·임원애·최자 등과 함께 시폐10조를 올렸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언을 좇지 않는다며 홀로 사직하였다. 파직되었으나 곧 예부시랑에 승진되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수많은 꽃들 중에 맑고도 고운 저 얼굴을 보니 / 홀연히 미친 바람을 입어 붉음만을 덜었구려 // 수달피의 골수로도 예쁜 옥 같던 뺨을 고치지 못하겠거늘 / 오릉공자인들 가슴에 품은 한 만은 끝이 없겠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기녀에게 줌 혹은 서러운 기녀]로 번역된다. 사대부들이 기방妓房에 드나드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아리따운 기녀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시문을 주고받을 양이면 시정을 주채하지를 못했을 것이다. 상대인 기녀를 꽃이며, 바람이며, 선녀 등으로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싯줄이라도 하는 기녀 또한 그에 상응하는 시문으로 화답하면서 지필묵의 신세를 지기도 했으리라. 어느 고을 수령이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서 아리따운 기녀 얼굴을 촛불로 지졌다는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 시적인 배경이다.

시인의 면전에 상대로 두고 있는 기녀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수많은 꽃들 중에 맑고도 고운 저 얼굴은 홀연히 미친 바람을 입어 붉음을 덜어주었다고 생각했다. 미친 바람이란 세태의 어두움 속에서 혼자만이 아름다운 교태를 뽐내고 있다는 시상으로 생각된다.
화자는 앞에서 갸름한 교태를 부리는 기녀의 찬사를 더 이상은 주채하지 못했음을 분명하게 보인다. 하물며 수달피의 골수로도 옥 같던 뺨을 다 고치지 못하겠거늘, 오릉공자인들 그 한만은 끝이 없겠구나라고 했다. 오릉공자는 호협한 사람을 가리킨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꽃 중에서 고운 얼굴 붉음만을 더했구려, 옥과 같던 뺨 못 고쳐 가슴 품은 한만 남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百花: 수 많은 꽃. 叢裏: 떨기 가운데. 淡?容: 맑고 고운 자태. 忽: 홀연히. 被: 입다. 狂風: 미친 바람. 뜻밖의 불행. 感却紅: 문득 붉음을 느끼다. // 獺髓: 수달피의 골수. 未能: 능히 ~할 수 없다. 醫玉頰: 옥 같은 뺨을 고치다. 五陵公子: 오능 공자. 恨: 한. 無窮: 끝이 없다. 다함이 없다.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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