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오월이다. 자연의 섭리, 계절의 순환, 그리고 세월은 어느 특정한 날짜를 거르지 않고 우리들의 시간을 메운다. 작년에 오월이 있었듯이 2019년 오월 또한 우리들의 달력을 비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오월은 신록의 계절이고 가정의 달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눈부시고 다감다정하고 풍요롭고 서정스러운 시간들일 수 있다.

그럴 수 도 있다. 담장 너머 긴 가지들을 건강하게 떨치고 혹은 순백의 혹은 보랏빛의 꽃잎을 넘치도록 피어 내는 목련의 꽃 세상을 향유할 수 있다. 갯여울이 소리 내어 흐르고 그 물줄기에 의지 하여 왕성하게 생성 하는 오만가지 생명의 이야기들과 소통하며 아름다운 오월을 심신에 담을 수도 있다. 오월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계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의 행간에서 우리들은 왜 이리도 먹먹하고 부끄러워 지는 것일까.
저리고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40년전의 기억들을 떨쳐 낼 수 없는 모진 가슴앓이로 보듬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세월이 흐르면 40년전의 진상이 규명되고 치유되고 어루만지고 위로하고 그래서 광주의 오월이 우리 역사의 소중한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을 해마다 꿈 꾸워 왔다. 이 민족이 간절하게 염원 하는 통일의 세상 대동의 세상 속에서 광주의 오월이 선명한 이야기들로 담론 할때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오천만 민족이 사는 한반도의 어느 곳에서도 오월은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항쟁으로  망서림 없이  대화 할 수 있는 사실일것으로 인정 하리라 믿었다.
죽어간 사람들과 죽지 못했으나 평생을 분노와 슬픔으로 중음신처럼 고통스러워야 하는 사람들을 싸안고 위로하고 용서를 비는 무리들이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1980년 광주의 오월이 한점 티도 없는 민주의 역사로 찬란하게 승화 될 줄 알았다.
저 연유 모를 폭거에 꽃잎처럼 죽어가던 오월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광주와 전남 사람들과 이 땅의 사람다운 사람들이 간절하게 염원 하던 바람은 진상과 규명과 용서와 화해의 지극히 상식적인 결말이었다.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어디 목련뿐이랴/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 피어/살아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 짓는/우리들 오월의 꽃이/아직도 애처러운 눈빛을 하는데/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 목련이 진들-박용주)

1988년 4월 고흥군의 풍양중 2학년이던 박용주는 이 시로 “오월문학상”을 수상 하였다.
중학교 2학년 소년의 시선에 잡힌 오월은 “아직도 그저 애처러운 눈 빛으로...목련 꽃이 뚜욱뚝 지는 것을 무엇이 그리 슬픈가?” 하는 체념이었을까.
그리고 올해의 오월에도 우리들은 하염없는 체념의 세월이어야 하는 것일까.
지난 40년동안 상식의 세상을 소망하던 올해의 오월에도 목련은 너무나 무심하게 피어 오르고 있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규명되어야 할  진상들은 왜곡되고 기만의 늪에 움츠리고 있고  어느 곳 어느 인간들에선가 망언과 책동의 예리하고 무식한 비수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짓쳐 들어오는 것을 언제까지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오월은 이토록 모진 진통을 겪고 있거니와 분명한 것은 이 고통이 처절하고 힘겨운 만큼이나 “5.18민주항쟁”의  역사는 스러지지 않을 것이며 찬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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