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흥지명 사례를 본다. 그 시절 우리는 ‘길다’를 ‘질다’로, ‘형님’을 ‘성님’으로 불렀다. 그렇다면 그때 장흥읍 성안 “진골, 진골목” 명칭 유래는 어떠할까? ‘긴 골목’이었을까? ‘땅이 질은 골목’이었을까? 그 ‘진골’을 <정묘지, 부내방>는 ‘니동(泥洞)’으로 표기했고, 泥洞에 거주하는 姓氏는 기록하지 않았다. 서울의 달동네 골목처럼, 길고 길었던 옛 ‘진 골목’은 십여년 전 소방도로 개설로 그 원래 풍경과 정취는 사라져버렸다. 필자는 장흥초등 2학년 가을에 그 ‘진골목’에서 건산(동교)로 이사를 했다.

-‘흥 진골목’ 유래. ‘길다’에서 온 진골목으로 ‘대구 진골목’도 그러하다. ‘길다(長)’가 구개음화되면 ‘질다’로 바뀌는데, 그 ‘질다’ 음가에 맞추어 한자어 ‘진(珍), 니(泥)’로 받은 데서 혼선이 시작되었다. ‘진골, 진골목, 진고샅, 진고개, 진뫼’ 등 ‘길다’에 연원한 ‘질다’ 사례는 전국적으로 꽤 된다. ‘장흥읍 진골, 대관령 옆 진고개, 대구 진골목, 임실 진뫼’ 등인데, 시인 김용택의 고향 ‘진뫼(진미)’는 한자어 長山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 속에 ‘길다’의 변음 ‘질다’를 잊고서 이제는 그저 ‘니동(泥洞), 니현(泥峴)’의 한자 훈(訓)을 뜻대로 풀어 ‘진흙 동네, 진흙 고개’로 단정해버린다. ‘서울 명동 진(珍)고개’도 그런 오해를 받고 있다. 비가 올 때 일시적으로 질어진 정도라면 그 질은 상태를 지목하여 굳이 그 지명으로 삼을 리 없다. 또한 하수도가 없던 옛날이야 어디 질은 땅, 진탕 저지대가 한 두 곳이었을까? 반면에 ‘길게(질게) 늘어진 지형’은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이기에 그런 영속적 특징에 착안한 작명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할 것. 이하, “길다, long, 長”의 뜻을 갖는, 즉 ‘길다 <질다’ 유형의 장흥지방 지명을 모아본다.

ㆍ진고샅, 진몰랑이, 진배미, 진잔등, 진뫼, 진밭등, 진떨너설, 진방천, 진개웅, 진목, 진곡, 진골, 진등고랑, 진고랑 등.
ㆍ진골목(장흥읍 동동리 진골목, 회진성 서구리 장방터 진골목(진고샅)/대구시 진골목)

몇 지명사례를 더 살펴본다.
-‘회진 진목(眞木)’, ‘진뫼<장산(長山), 진골짜기 <장곡(長谷)’이야 쉽게 이해되는데, ‘긴(長)목’에서 유래한 ‘진목’을 한자어 ‘진목(眞木)’으로 옮긴데서 ‘참나무 동네’로 오해한다. <조선지지>는 ‘마장(馬場)터’를 ‘기목(其木) 후등'으로 표기하였다. ‘노루목’을 장항(獐項)으로 옮긴 경우는 그 오해가 줄어든다.

-‘용산 장전(長田)’ 이때는 ‘길다’보다는 ‘묵은 밭, 묵정밭’을 가리키는 ‘진전(陳田)’에서 왔을 가능성도 크다. 陳田은 ‘토지대장에 잡혀 있으나, 실제는 경작을 않는 황무지’로 장평 珍山 마을은 <정묘지>에서 陳田이었다. 長田은 또 ‘역장전(驛長田)’의 長田일 수 있다. 과연 ‘긴 밭인지, 묵은 밭인지, 묵은 밭이면서 긴 밭인지, 역장전인지’는 그 지세 지형과 역사적 내력을 종합해야 한다.

-장동 봉동의 ‘진곡(珍谷), 장곡(長谷)’ ‘진실, 장실’로 부르기도 하며, ‘진고랑(골)’이 있다. 습기 차고 질은 땅이라기보다는 ‘길다’에서 온 ‘긴 골짜기(진곡,장곡)’이겠다.
이하, 덧붙인다. 앞의 “泥洞(니동), 泥峴(니현)”처럼, 한자 훈(訓,뜻) 풀이를 고집한데서 우리말 유래를 망각한 사례이다.

-덕리(德里) 혹자는 ‘德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동네'라고 풀이한다. 아니다. ‘큰德’의 ‘큰(大)’을 ‘德’으로 받아 ‘큰 동네’ 또는 ‘지대가 높은 덕(더기) 지형’을 말한다. ‘큰 나루, 德津’도 그러하다

-月落坪(월락평) 혹자는 ‘달이 떨어진 명당’이라 풀이한다. 아니다. ‘다락들<달(月)락(落)들(坪)/ 다랭이들’을 한자어로 옮긴 표기이다.

- 羅馬谷(나마곡), 南文谷(남문곡)?. 혹자는 ‘羅氏 馬氏 또는 南氏 文氏 골짜기’로 풀이한다. 아니다. ‘넘어가는 넘이 谷, 넘은 골’을 소리(음가)가 비슷한 한자음으로 받아 표기한 것이다.

- 栗里(율리) 혹자는 ‘밤나무 동네 또는 중국 도연명의 栗里에서 온 것’으로 풀이한다. 아니다. 우리말 ‘(논)배미’에서 온 ‘뱀, 밤’을 ‘밤栗’로 받아 표기한 것이다. 이때 밤(栗)은 ‘밤야(夜), 뱀사(蛇), 범호(虎)’의 ‘밤, 뱀, 범’과 같은 음가(音價)사례이다. 예컨대 ‘대야(大夜)里’는 ‘넓은 논, 큰 배미’가 있는 大野 들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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