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탐진강 강 언덕을 따라 봄이 한창이다. 장흥성터 높은 언덕의 숲에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장흥읍에 둥지를 튼 내 눈에 비치는 장흥읍은 벚꽃이 필 무렵의 탐진강변과 장흥읍성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다 못해 고혹적이다. 벚꽃이 만개한 강변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강변 바람이나 봄비에 꽃이 흩날리는 장면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기에 충분하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다면 이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는 한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눈에 보이는 풍경만을 갖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만큼 평화롭고 안락하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지만,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사람들의 느낌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 8년이고, 아버지 돌아 가신지 5년이 되었지만 벚꽃이 만개하고 야산에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는 봄이면 나는 어김없이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워 봄앓이를 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나만이 갖는 독특함이 아닌 우리 모두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른 계절보다도 왜 봄이면 어머니가 더 보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살아 생전에 즐겨 부르시던 노래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노래를 잘 하셨다. ‘봄날은 간다’, ‘정주고 내가 우네’, ‘목포의 눈물’... 이른 아침 마루에서 숯다리미로 아버지 모시적삼과 바지를 다리면서 흥얼거리시던 노래들이다.

그중에서도 ‘봄날은 간다’는 1954년 백설희 선생이 불렀던 노래니까 반백년을 훌쩍 넘어 칠십년이 다 되어 가는 노래인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애창곡이 되어 있는 것일까? 단순히 음표와 가사로 만들어진 그냥 입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들의 저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사 속에는 고향이라는 말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이 노래에서 고향을 빼 버리면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내일을 준비하는 에너지를 얻어 내는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곡의 노래가 삶에 지친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또다시 내일을 기대하고 준비하게 하는 에너지를 주기도 한다. 이것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좋아하는 가수 공연을 보기 위해서 먼 거리를 달려가 비싼 입장료를 내고 공연을 감상한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피땀 흘려서 번 구렁이 알 같은 돈을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내가 받아야 했던 스트레스를 털어 내는데 아낌없이 쓰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예술의 힘이다.

문화가 밥이 된다
몇 년전 우리 부부가 이태리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이태리 남부지방인 아름다운 항구도시인 나폴리를 거쳐 우리에게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로 유명한 소렌토라는 작은 항구도시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식당을 찾았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아담한 레스토랑이었는데 우리 부부가 식당에 들어가자 식당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타를 든 거리의 악사 2명이 우리 테이블로 따라와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우리가 중고등학교 음악시에 배웠던 ‘돌아오라 소렌토로’, ‘오 솔레미오’, ‘아모레 미오?’ 등 우리 귀에 익은 노래 몇 곡이었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어디든지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고, 이럴 때는 감사의 표시로 1~2달러의 팁을 주면 되는 일이다.

아내가 팁을 주려고 지갑을 여는데 50달러 지페를 꺼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지폐와는 달리 미국 지폐는 지폐 색깔과 도안이 비슷하고, 크기도 거의 같아서 헷갈린 아내가 50달러 지폐를 잘못 집었구나 싶어서 50달러 지폐라고 알려 주었다. 평소 아내는 단 한 푼도 헛되이 쓰는 일이 없는 깍쟁이 아닌가. 그런데 아내 대답이 놀라웠다. 50달러 지폐인줄 알고 있노라고 하면서 팁으로 주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아무리 좋은 여행이라도 집 떠난지 10일이 넘다 보니 피곤해 있었던 우리에게 귀에 익은 노래를 불러준 것이 소금쟁이 지갑을 열게 한 것이다. 문화예술은  이런 것이다. 땀 흘려서 번 돈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기위해 아김없이 티켓을 구매하는 것과 아내의 50달러의 팁은 같은 맥락이다.

기업을 유치하고 공장을 불러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돈이 되고 일자리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도 문학도 산업이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해(害)를 미치지 않는 공해없는 산업인데다 다른 산업보다도 경제 파급효과가 월등이 높은 경쟁력이 높은 산업인 것이다. 경남 통영은 통영중앙시장 옆 언덕에 있는 동피랑마을의 골목길에 벽화를 그렸더니 전통시장의 충무김밥과 성게비빔밥과 한치물회를 먹으러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시장이 되었다.

정남진토요시장은 표고버섯과 한우고기와 시골할머니들이 직접 기르거나 들과 산에서 채집한 산나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통시장이라고 자랑할 만큼 유명한 전통시장인데도 왜 시장 안에 상설무대를 만들어 놓고 공연을 하는가? 공연이라는 문화가 시장을 살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토요시장에서 문화예술 공연을 멈추게 된다면 정남진토요시장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정남진토요시장 만의 독특한 문화예술이 있으면 좋겠다.

탐진강 50리길 자전거도로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장흥군이 유치에서 부산면을 거쳐 장흥읍 사인정에 이르는 탐진강 50리길 강둑을 따라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단다. 몇 년 전부터 기회 있을 때 마다 탐진강 자전거길 정비를 역설했던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약 10 여 년 전에 어느 유명한 단체에서 선정한 전국의 아름다운 자전거길 20선에 탐진강 50리길이 선정되기도 했으나 우리지역의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알고 그것을 관리하고 가꾸는 일은 결국 사람의 영역이다. 그런 측면에서 탐진강 50리길 정비는 반갑다. 아마도 그곳은 장흥사람들만이 아니라 광주등 인근 도시민들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그 강둑길에는 새소리와 함께 봄에는 ‘봄날은 간다’는 노래가, 가을에는 가을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얼굴표정부터 다를 것이다. 밝고 맑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지역사회에 밥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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