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고운 최치원
첩첩한 바위 사이 봉우리가 울리는데
지척에서 말소리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들릴까 시비 두려워 물을 시켜 온 산을.
狂噴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광분첩석후중만    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상공시비성도이    고교유수진롱산

짐짓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둘러싸게 하네 : 題伽倻山讀書堂 / 고운 최치원
속세의 어두운 소리가 듣기 싫어 산을 찾는 사람이 더러 있다. 흔히들 진세塵世라고 했던가.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산에 가면 물소리 새소리가 진세의 어두운 그늘을 막아주기도 한단다.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들의 또 다른 소망의 소리를 듣는다. 굳이 선도의 길은 아닐지라도 짜증나는 도심이 싫었을 것이니라. 사람의 시비하는 소리가 행여나 귀에 들릴까 두려워서 짐짓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둘러싸도록 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짐짓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둘러싸게 하네(題伽倻山讀書堂)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작가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으로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사시금체부>, <오언칠언금체시>, <잡시부> 등의 시문집을 지었으나, 오늘날에는 전하는 것은 그리 많이 않는다. 876년 선주 율수현 현위로 관직에 올랐으며, 이 무렵에 <중산복궤집>을 저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첩첩한 바위 사이 미친 듯 달려 겹겹의 봉우리 울리니 / 지척의 사람 말소리도 분간하기 어려워라 // 사람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서 / 짐짓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둘러싸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가야산 독서당에 붙여]로 번역된다. 가야산 높이는 1,430미터로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 사이에 있는 산으로 해인사와 황제폭포 등이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서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에 올랐으나 귀국하여 가야산에서 생을 마쳤으며, 가야산에서 등선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래서 그의 서거 년대가 알려지지 않는다.
시인의 상상력을 [첩첩한 바위 사이를 미친 듯이 달려들며 겹겹의 봉우리를 울린다]고 했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그 몸부림과 간절한 소리에 따라 사람의 말소리는 물론 인기척마저 분간하기 어려웠겠다. 사람이 산과 바위에 취해버린 형국이다. 이는 자연에 흠뻑 취하지 않고는 가히 듣기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다.
화자의 상상력은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산과 바위를 울리는 소리가 귀에 들릴까 짐짓 두려워하면서 흐르는 물을 시켜서 온 산을 둘러쌓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예고된 죽음이나 등선登仙의 예감까지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작품의 이면을 본다. 가야산에 있는 독실한 독서당에서 자연을 읊은 서정의 절정을 맛보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봉오리에 올랐더니 분간키도 어려워라. 시비 소리 들릴까봐 물을 시켜 둘러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狂噴: 미친 듯이. 疊石: 첩첩하게 쌓인 바위. 吼: 울리다. 重巒: 겹겹이 겹친 산. 人語: 사람의 말. 難分: 분간하기 어렵다. 咫尺間: 지척의 사이. 가까운 사이 // 常恐: 항상 두렵다. 是非聲: 시비하는 소리. 到耳: 귀에 들리다. 故: 짐짓. 敎: ~으로 하여금. 流水: 흐르는 물. 盡籠山: 온 산.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