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다. 그것이 자연환경일 수도 있겠고, 먹거리 혹은 어느 시장, 마을 어귀 어느 좁은 골목이어도 좋겠다. 그 골목 안에는 보기만 해도 기품이 있는 천연염색 천들이 걸려있거나, 여자 고무신 모양의 가죽 수제화가 진열되어있었다. 신발이라면 눈을 떼지 못하는 나는 당장에 신발을 샀고 지금도 너무 멋져 청바지에 맞춰 신으면 동서양의 조화가 맘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편백나무 가득한 숲 속에서의 하룻밤. 바닷가 어디쯤에서 밤늦도록 석화를 구워먹던 시간들이 마치 정지된 화면마냥 선연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마구 사진을 찍어대던 때가 아니었던듯.

장흥이었다. 우리 일행은 연극 <나는 너다> (대한의군과 안중근 의사의 가족사를 다룬 감동과 품격이 있는 작품)의 무대를 초청받아 20여명의 배우와 스탭들이 난생 처음으로 장흥에 갔던 거다.

한 여름 떠들썩한 물놀이장으로 유명하기도 할 테지만, 정작 내 마음을 빼앗긴 곳은 해동사였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사당이 있었고 우리는 그날 아주 소박한 제물을 올리고 큰 절을 했다. 가슴 뜨겁게 온 마음을 다해 그 분의 넋을 기리는 그 시간은 백번 천번의 절 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극 중에서 나는 조마리아, 안중근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아들의 영전에 깊숙이 절하며 예를 올린다. 내 아들, 천대 만대를 두고라도 자랑스러운 아들 앞에.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미는 살아서 너와 상봉하기를 기망하지 않는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망설이지 말고 죽으라.”
영웅의 어머니는 옥중의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셨다. 극중의 어머니 나는 그 편지를 읽는다. 또 읽는다. 한 자 한 자 마음에 새기면서.

109년 전의 이야기다. 과거일까, 현재일까, 미래일까. 미래라면 더 희망이 있지 않겠나. 남산에 있는 웅장한 안중근 기념관보다 그 후미지고 소박한 곳에서 만난 영웅의 초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 장흥. 바로 거기에 내 뜨거운 추억을 묻는다.

◆박정자
-연극배우, 영화배우
-출생:1942년 3월 12일 (만 77세) 인천
-소속: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예술의
전당 이사
-가족:오빠 박상호
-학력: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언론영상학과  외
1건
-데뷔:1962년 연극 ‘페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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