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지,1747> 안양방에 나온, '8장사(壯士)'가 늘 궁금했다. 누가 언제 어떻게 ‘8장사’를 선정했을까? 임진왜란前에는 ‘기산 8문장’이요, 왜란後에는 ‘비동 8장사’라 줄여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안양 사자(어병)산록 일대는 크게 ‘기산, 비동’ 마을의 양립 형국이기에 서로 간에 인물자랑 겨루기도 되겠다.

1, 안양 비동(飛東) ‘비래동촌(飛來東村)’은 거슬러 ‘백제 유민들 정착지’였고 ‘조선 초 불복촌(不服村)’이었다한다. 퍽 오래된 마을로 옛 안양향(鄕) 자리로 짐작된다. ‘비천(飛川),동촌(東村), 가장동’으로 삼분되다가, ‘飛川’과 ‘東村’의 통합으로 ‘비동(飛東)’이 되었다. ‘飛川洞(비래동)’ 창촌(創村)에 대해 <정묘지>는 “옛날 공주로부터 서쪽 바닷길로 내려온 이검(李儉)이 그 길기(吉氣)를 보고 정착한데서 공주李씨 선조가 되었다”한다. ‘飛川’ 명칭은 뒷쪽 어병산에서 흐르는 개울을 ‘유천여비(有川如飛)’ 또는 ‘빗내(川)’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데, 암석너덜 경사지를 뜻하는 ‘비럭(래)’등에서 연유할 수도 있겠다. 돌담길과 앵두나무로 유명한 飛東은 성씨(姓氏)의 유입변천이 심했다. ‘비래등’의 ‘飛來’ 때문일까? 마치 ‘외지에서 날아든 유입민’처럼 <정묘지>에 비천동10姓이고, <안양면지,1998>에 19姓 多姓村이다. <안양면지>는 ‘예전에 있던 성씨’로 공주李, 평택林, 초계卞, 보성宣, 창녕曺, 광산金, 김해金, 영광金, 장흥魏, 장흥高, 수원白, 선산林, 남평文’씨 등을 열거했다.

또 ‘지금 없는 5姓氏’로 ‘공주李, 초계卞, 보성宣, 선산林, 남평文’씨를 거명했다. 특히 ‘公州(덕은)李씨’는 선초 토성(土姓)에 해당하고, 초계변씨 ‘변국간’의 모친 성씨인데, 공주李氏와 초계卞氏는 飛東에서 사라졌다.
飛東 인물들로는 1504년 진사 변대손, 정해군 백수장(1469~1543), 7도 병수사 변국간(1527~1591), 1567년 생원 조여흠(1549~1579), 李충무공 측근무장 임영립(1566~1617) 등이다. 왜란 때 활약한 ‘변홍달 4형제’는 변국간 아들들이다. 후기 文人으로 지오재 선시계(1742~1826)가 성자동에 옮겨 살면서 飛川 東村 일대를 ‘榧川 12영’으로 노래했다.

2. 비동(飛東) 8장사(壯士)
<정묘지>가 그 이름을 나열해둔, ‘8장사’의 선정기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임진 이전의 대표적 무반 ‘백수장’과 ‘변국간’이 빠진 것을 보면, ‘비동 8장사’는 임진란과 그 이후 인물들이고, ‘기산 8문장’에 대응한 호칭일 것.(‘기산 8문장’은 ‘김공희’를 뺀, 7분이 왜란 前에 타계하였다.) ‘8장사’ 유적(遺跡)인 ‘8장사 송정 회사장(松亭 會射場)’은 ‘기산 8문장 경연대(慶宴臺)’와 대비될 것이고, ‘입석, 선세강 홍패바위’ 등이 있다. 그 시절 飛東 성씨들인 수원白씨,초계卞씨, 보성宣씨, 창녕曺씨가 포함되고 있다. <정묘지>가 ‘8장사’로 거명한 안양坊人은 다음 같다

-백홍룡(弘龍), 선전관, '정해군 백수장'의 방손
-백봉기(鳳紀), 만호, 첨지중추부사, '백회'의 동생 ‘백순’의 후손
-변홍건(?~1597), 첨사, 형제 순사
-변홍달(1559~?), 무과 갑과2위, 이충무공 최측근, 종성부사, 선무원종훈
-변홍적(?~1597), 봉사, 형제 순사
-선세강(1576~1636), 무과(1603), 안동영장, 병자호란 쌍령 전투 순사, 廣州 쌍령 정충묘에 배향, 안양 포충사 배향
-이희성(李希聖), 첨절제사, 진무원종훈(1624), 혹 ‘공주이씨’일까?
-조계중(曺繼重,~1631), 봉사, ‘동계 백광성’의 세째 사위.

위와 같이 남겨진 ‘8장사’ 이름에도 불구하고, ‘초계변씨 3형제, 매곡 선세강’을 제외한 ‘나머지 4명 무반(武斑)’의 행적은 불상(不詳)인데, 전국적 명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료의 부족이었다지만, ‘비동 8장사’의 선정배경을 제대로 규명 못했음은 유감이다. 한마디 보태면, 마치 八경(景)을 기린 八景詩처럼, ‘기산 八文章’과 ‘비동 八莊士’를 그 시절 나름의 지역적 자랑거리로 삼았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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