貧女吟(빈녀음)/허난설헌
손에다 가위 쥐고 옷감을 척척 말아
밤인가 차가워라 열손가락 곱아오네
남의 옷 시집갈 옷만 잠만 자오 나홀로.
手把金剪刀    夜寒十指直
수파김전도    야한십지직
爲人作嫁衣    年年還獨宿
위인작가의    년년환독숙

선현들은 가난한 삶을 살았다. 보릿고개라 하여 늦봄을 지내는 시가가 어려웠고 동지섣달 긴 밤 보내기는 더욱 힘들었다. 우리 선현들은 그렇게 질곡(桎梏)의 시간을 보내면서 살았다. 처자들이 삯바느질하고, 총각들이 머슴살이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여기에선 나이 연만한 처녀가 부잣집 처자 삯바느질하는 것으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자기의 딱한 처지를 시문으로 읊고 있다. 하루같이 새우잠 자는 안타까운 처자 자신의 모습을 읊었던 시를 번안해 본다.

해마다 나는 이렇게 홀로 잠만 잔다오(貧女吟)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배율 넷째수다. 작가는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으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허난설헌은 첫째는 자신이 중국이 아닌 조선에서 태어난 것, 둘째는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난 것, 셋째는 이백이나 두목지 같이 출중한 남편을 만나지 못한 것 등 세 가지가 한이라고 하였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손에다 가위 쥐고 옷감은 척척 마르면서도 / 밤도 차가워서 열손가락이 곱아온다오 // (날마다) 남을 위해 시집갈 옷을 짓지만 / 해마다 나는 (시집가지 못하고) 홀로 잠만 잔다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가난한 여인의 노래4]로 번역된다. 가난한 집의 처자라고 시집가지 못하란 법은 없다. 오직 가난이 죄라고 하면 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집가지 못한 여인이 마음속으로 간직할 수는 있었겠지만, 자기의 심회를 글로 표현다거나 밤마다 홀로 잔다는 식의 표현을 하기란 쉽지 않는 사회 관습적인 시대였다.

그렇지만 시인은 자기의 심회를 거침없이 표출해 냈다. 시집가지 못하고 남의 길쌈만 하는 자기의 처지를 가감없는 시상 주머니에 담아냈다. 한 손에다 가위 쥐고 다른 손으론 옷감은 척척 마르면서도, 동지섣달 기나 긴 밤이 그리도 차가워서 열손가락이 곱아와 호호 입김을 분다고 했다. 선경에 의한 현재 처한 자기의 입장을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화자는 이어지는 후정에서는 현재의 처지와 심회를 길게 읊었다. 날마다 남을 위해 시집갈 옷을 짓고 있지만, 해마다 나는 시집도 가지 못하고 밤마다 홀로 잠만 자고 있다고도 했다. 조선 여인이 밤이면 홀로 잠잔다거나, 시집을 가지 못해 안달을 내는 것은 용서치 못을지라도 시문으로 이런 심정을 표출하는 건 허용할 수 밖에는 없었지 않았을까.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옷감 쥐고 마르면서 열손가락 곱아오네, 남을 위한 시집갈 옷 나는 홀로 잠만 자고’ 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手把金: 손으로 가위를 잡다, 剪刀: 칼(가위)로 자르다. 夜寒: 추운 밤에. 十指: 열손 가락. 直: 바르게 펴서 입김으로 불다. // 爲人: 다른 사람을 위하여. 作嫁衣: 남의 처자 시집갈 옷을 깁다(만들다). 年年: 해마다. 還: 새우잠 자는 것이 돌아오다. 獨宿: 시집가지 못한 신세 홀로 자다.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