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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면 인곡家 사당의 민화(民畵) 벽화예강칼럼(59)/박형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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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4  15: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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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의 그림 전통은 어떠할까? 부산면 내안리 영광김씨 인곡(仁谷 김정채)가옥 사당(祠堂)은 정면1칸 측면1칸의 와가(瓦家)로, 다른 祠堂에서 볼 수 없는 닫집 형식의 장식과 민화(民畵) 벽화가 있다. 장흥군 향토문화유산 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1860년 창건으로 추정되며, 같은 해에 영광김씨 화수정(花樹亭)이 건립되었고, '지운 김경현(1823~1906)'이 쓴 <화수정 상량문>이 남아 있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1860년 최제우의 동학(東學) 창시, 1862년 ‘장흥민란 등 철종민란', 1866년 병인양요 등으로 혼돈시대가 격화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민화(民畵)를 누가 그렸을까? 소박한 솜씨로 보아 인근의 수인사(修因寺) 화승(畵僧)은 아닐 것이다. (1888년 통도사 벽화, 19세기 초 대흥사 천불전 송학도는 전문화공이 그렸다.) 아니면 영광김씨 내부사람 또는 민초화공(畵工)이 그렸을까? 질 좋은 안료의 부족 때문인지, 토벽(土壁)과 대들보에 사용한 '흑, 적, 청, 록, 황' 물감은 넉넉하게 발색(發色)되지 못했다. 대체적으로 간결하며, 전문화사(畵師)의 작품으로 보기 어렵고, 문인 산수화 기법은 물론 아니나, 문인화적 풍취도 엿보인다. (仁谷 집안에 다른 民畵 작품은 없다한다) 그림 주제는 선조에의 존숭추복(尊崇追福)과 후손발복(發福)을 연결하는 '가효(家孝)', 그 사친이효(事親以孝)에 관한 의례성과 장식성을 겸했다. 병풍과 '문자도(文字圖)'를 대신하여 '龍, 쌍봉(雙鳳), 쌍학(雙鶴)' 등과 여러 花草木이 상징적으로 배열되었다. 民畵의 전형성에 부합하는 '매화, 난초, 국화, 죽순, 소나무, 연꽃, 석류, 포도, 모란, 작약, 파초, 여뀌, 인동초' 등이다. 꽃과 잎의 분별이 어려운 초목에서는 격식을 비껴난 민화의 활달 분방함이 느껴진다. '매, 란, 국'은 선조에의 추념(追念), '죽순'은 孝竹, '석류, 포도, 여뀌, 모란, 파초'는 자손들의 번성 發福을 말해준다. '바위, 소나무, 학'이 어울려 장생(長生)을 기원하나 십장생도(十長生圖)는 아니며, 사엽문(四葉紋) 문양과 연꽃도 나오지만 불교적 그림은 아니다.

돌이켜, “군자지사 친효(君子之事 親孝)” 가통(家統)의 영광김씨 천제동파(派) 집안은 그 선조 은암 김몽룡(隱巖 金夢龍,1708~1788)과 손자 김열(1786~1856)이 <장흥읍지>에 孝子로 나온다. 은암 선생은 1747년 생원으로 <원림(園林)화분(花賁) 각종吟 12수> 詩에 松,竹, 梅, 鞠, 桃, 柳, 橘, 杏, 枾, 栗, 榴, 桑(송,죽,매,국,도,유,귤,행,시,율,류,상) 12종 花果木을 읊었다. 사당 창건자 '김복현(金馥鉉,1824~1886)'은 향교색장(1860)과 장의(1874)를 역임했고, 1895년에 사당을 인수한 '김용현(金用鉉,1850~1919)'은 색장과 부산면 집강 등을 지냈다. 그 아들 '김한각(金漢珏, 1875~1949)'은 1924년 장의, 그 손자가 '仁谷 김정채'였다. 인곡 사당은 龍, 鳳, 鶴, 花, 木, 果가 어울려 위로와 소망을 간구하는 낙원으로 평정(平靜)한 공간일 뿐이며 달리 요란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仁谷사당 民畵 벽화의 의의는 어떠할까? 먼저 1860년경 장흥 향촌(鄕村) 사회상을 말해준다.

왕실 궁중의 상징이던 '용, 봉황'이 민간 사당 벽화로 하강하였으며, 향촌 유자(儒者) 사당에도 의례(儀禮)적이고 장식적인 민화(民畵)가 본격 수용된 사정을 알려준 데서 그 민화사적(民畵史的) 의의가 대단하다고 판단한다. 문자(文字)를 대체한 수단으로서 그림 民畵가 사당 벽화로 등장한 것. 또한 단순한 흑백대비가 아닌, '적, 청, 록, 황' 다양한 색상의 적극적 선택을 말해준다. 1860년경 향촌 사당에 民畵 벽화가 남아있음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이제 꽤 탈색(脫色)이 진행된 상태라서 장흥그림 전통의 역사적(歷史的) 현장에 대한 보존조치가 시급해 보인다. 거듭 말씀드리면, 仁谷가옥 사당벽화의 民畵史的 의의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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