貧女吟(빈여음)[1]/허난설헌
맵시가 떨어지랴 솜씨가 못할 손가
가난에 자란 것이 탓이라면 탓이지
중매에 모든 할머니 누가 나를 몰라주네.
豈是乏容色    工緘復工織
기시핍용색    공함복공직
少小長寒門    良媒不相識
소소장한문    양매불상식

나이 연만한 남녀가 결혼하려는 심사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노총각은 장가를 가려는 생각에 그렇게 안달을 부리고, 과년(過年)한 노처녀는 시집을 가지 못해 밤잠을 설쳐가면서 애를 태웠던 모양이다. 바느질 김쌈에 모두가 다 좋겠지만 그것은 임시로 하는 행위일 뿐 오직 가난함을 탓하면서 중매 할멈을 꾸짖는 모습을 본다. 바느질에 길쌈 솜씨 또한 모두가 좋건만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것이 탓이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중매 할매들 모두가 나를 몰라주네요(貧女吟)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배율 첫째수다. 작가는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으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선조 때 활동한 여류시인으로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다.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고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얼굴 맵시야 어찌 남에게 떨어지랴 만은 / 바느질에 길쌈이며 솜씨 또한 모두가 잘 하건만 // 오직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것이 탓인지 / 중매 할매들 모두가 나를 몰라주네요]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가난한 여인의 노래1]로 번역된다. 보릿고개란 말은 최근세사에 생겨난 말이겠다. 문헌에 의하면 우리 선현들의 생활은 대체적으로 가난했다. 양반과 서인의 구별이 엄격한 사회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지만 사실은 그러했다. 사대부들은 사랑방이나 누각에 앉아 풍류를 음영했던데 반하여 서인들은 생활 자체가 노동이고 품앗이였다. 여자는 바느질이요, 남자는 머슴살이를 하면서 연명하는 삶이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 속에 쓰여 진 작품이다.
시인은 새우잠을 자면서 삯바느질로 연명해 가는 처지를 여과 없이 나타내고 있다. 남의 처자 바느질도 지겨웠겠지만 해마다 바느질로 새우잠을 자는 자기의 처지를 비관하며 시집갈 날을 기다리는 심회까지 담고 있다. 옷 한 벌도 아껴야 한다는 암시적인 메시지도 무르 녹아있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작품이겠지만 작자 자신이 시적 화자가 되었을 것이란 짐작은 쉽게 하게 되는 작품이다. 허균 일가가 거의 몰락하다시피 가난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시인은 시집도 가지 못하고 해마다 남의 처자 길쌈만 하면서 새우잠을 잤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얼굴 맵시 떨어지랴 김쌈 솜씨 좋건만은, 가난한 집 자란 탓에 중매 할매 몰라주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豈: 어찌. 是: ~이다. 乏: 떨어지다. 궁핍하다. 容色: 얼굴 생김새. 맵씨. 工緘: 바느질 솜씨. 復: 또한. ‘다시 말할 것 없이 좋다’는 뜻. 工織: 길쌈 솜씨. // 少小: ~이 작다. 가난하다. 長: 자라다.  寒門: 가난한 집. 한미한 집. 良: 좋게 하다. 중매하다. 媒: 중매 할매. 不相識: 알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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