薄酒三盃(박주삼배)/매헌 윤봉길
흘러가는 세월이 어찌 그리 빠른지
봄바람이 지나고 여름 장마 개었네
나그네 술 삼배하고 한 곡조를 부른다.
歷歷光陰何大忽    春風已過夏霖晴
력력광음하대홀    춘풍이과하림청
禮靑洪客多情席    薄酒三盃一詠聲
예청홍객다정석    박주삼배일영성

질곡의 시대에 태어나 커다란 꿈을 다 피우지 못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얼마나 되었던가. 그들은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면서 외국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데 헌신을 다한다. 값싼 술 한 잔 하고 각처에서 온 젊은이들이 모여 굳은 맹세라고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 장면은 아닐까. 예산, 청양, 홍성 등에서 찾아 온 객이 다정하게 빙 둘러 앉아서, 값싼 술로 삼배하고, 조국을 위한 한 곡조 노래를 힘껏 불러본다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값싼 술로 삼배하고, 한 곡조 노래 부른다(薄酒三盃)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로 일제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다. 19세로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어 야학당을 개설하여 한글 교육 등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백범 김구를 만나 의열 투쟁에 뜻을 모으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흘러가는 세월이 어찌 그렇게도 빠른거냐? / 봄바람도 이미 지났고, 여름 장마가 개었구나 // 예산, 청양, 홍성에서 온 객이 다정하게 앉아 있는데 / 값싼 술로 삼배하고, 한 곡조 노래를 불러본다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값싼 솔로 석잔을 마시다]로 번역된다.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의거 직전인 1931년 일본의 침략 아래 놓인 한·중 양국의 암담한 현실을 읊었던 한시 일부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 상하이시위(市委) 당사자료수집위원회가 1989년 펴낸 ‘상해인민혁명사화책’(上海人民革命史畵冊)에 등장하는 칠언절구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일본 침략기였다. 의사가 읊었던 시가 알려지면서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것은 싯구에 진실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세월이 어찌 그렇게도 빠르냐?라는 의문과 함께 봄바람도 이미 지나고, 여름 장마가 개었구나 라고 했다. 25의 젊은 나이로 미리 큰 일을 도모하고 떳떳하게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결심이 시상 속에 은유적으로 스며있다. 그만큼 시는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고 미래도 예견하고 있음을 본다.

화자는 예산, 청양, 홍성의 객 등 여러 지방 여러 명을 빙 둘러 다정하게 앉았었는데, 값싼 술로 삼배하고 나서 제각기 한 곡조씩 노래를 불렀다는 당시의 세태를 말하고 있다. 음력 보름날의 우리의 풍속과 사는 이야기를 표출하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어찌 세월 빠른 거냐 여름 장마 개었구나, 충남 온객 마주 앉아 삼배 술에 한 곡조씩’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歷歷: 역력히. 분명하게. 光陰: 세월. 何大忽: 어찌 크게 다하다. 春風: 봄 바람. 已過: 이미 지나다. 夏霖晴: 여름 장마가 개다. // 禮靑洪: 지명. 예산. 청양. 홍성. 客: 객(손님). 多情席: 다정하게 앉다. 薄酒: 값이 싼 술. 안주가 엷은 술. 三盃: 석 잔. 一詠聲: 한 번씩 읊어서 노래를 부르다.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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