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11,3경에 고려시대 인물인 '장흥 위씨 위계정(魏繼廷)'을 기린 신도비(神道碑)가 장흥읍 평화리 회주사(懷州祀) 사우 앞에 세워졌다. 고려 '문하시중(門下侍中)' 관직자이다. 조선시대에는 2품 관력이상의 고관에 한하여 그 묘소 묘로(墓路)의 남쪽 방향 길목에 평생 사적을 기록한 神道碑를 세웠다.(예컨대, 조선시대 정2품은 판서 등- 자헌대부/ 종2품은 대사헌, 참판, 관찰사, 절도사 등- 가정대부, 가의대부, 가선대부이다.) 사후 추증(追贈) 2품직에 이르러도 가능하다. 잘된 조상 덕이면 '음직'을 받고, 잘된 후손 덕이면 '증직'을 받게 된다.

충무공 이순신은 신도비 2개로 묘소 부근에 '찬자 김육으로 된 신도비'와 '정조가 찬한 어제(御製)신도비'가 있다. 실직(實職)이든 추증(追贈)이든 2품 요건이 필수적인데, 찬자(撰述者) 명망도 중요하다. 묘소부근 진입로(神道)에 세우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예 멀리 떨어진 신도비도 많은 현실인데, 우리 지역 신도비들도 그러하다. 장흥 지방에 세워진 神道碑를 현황 그대로 간략하게 소개한다.
- 청주 김씨, 동촌 김린(1338~1410)
고려 참찬, 부산면 호계리 동백정 옆

- 영광 김씨, 설암 김필(1426~1470)
'사인(舍人,정4품)'이 아닌, ‘경기관찰사’ 관력이기에 신도비가 세워진 것, 장흥읍 송암리 사인정 앞

- 수원 백씨, 정해군 백수장(1481~1543)
공조판서, 안양면 여암리 / 찬자, 면암 최익현

- 남평 문씨, 풍암 문위세(1534~1600)
追贈 병조참판, 유치면 강성서원
(1729년 신도비는 1728년 이인좌 난(亂) 무렵의 서인과 갈등으로 매몰되었다가, 1812년 신도비로 세워졌다. 남평 문씨는 ‘해남윤씨, 진원박씨'와 더불어 퇴계의 도산서원을 출입한 남인에 속했다) /찬자, 갈암 이현일, 황경원, (묘갈명 채제공)

- 영광 정씨, 반곡 정경달(1542~1602)
함경도 관찰사, 장동면 반계사

- 수원 백씨, 술고당 백민수(1577~1615)
追贈 자헌대부이조판서, 안양면 풍암리 대로변
(나주영장,안동영장,부사를 역임했던 손자 백한상에 힘입어 추은된 것)

- 장흥 위씨 위덕화(1551~1598)
追贈 자헌대부호조판서(1631년 추증), 1936년 건립, 관산읍 방촌유물관 앞
(병조참판공 아들 위정철의 ‘진무일등훈’에 힘입어 추증된 것)

기타 신도비로, 옛 장흥부 회령방 모원 출신인 ‘마천목(1358~1431)’ 신도비가 곡성군 석곡면 사당, 마천목 묘소 부근에 있다. 역시 옛 장흥부 회령방 모원 출신인 ‘석담 백한남(1567~1637)’ 신도비가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에 있다.

한편 장차 神道碑 입비 관력요건에 해당하는 장흥출신 고관들은 다음 같다.
(장흥 임씨의 고려조 일부 선조 분들도 해당될 수 있을 것.)
-광산 노씨, 긍재 노자형(1414~1490). 대사헌
-영광 김씨, 월봉 김광원(1478~1550), 追贈 이조참판
-초계 변씨, 월산헌 변국간(1527~1591), 병마절도사
-영광 김씨, 헌헌헌 김여중(1566~1630), 贈 좌찬성
-함평 노씨, 관암 노홍(1566~1617), 追贈 자헌대부호조판서
-보성 선씨, 매곡 선세강(1576~1636), 追贈 병조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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